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 2023)

홀로코스트 영화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가장 유명한 절멸수용소인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소장이었던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시종일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았던 회스 일가족의 평온한 일상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단지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하나의 또 다른 현실을 시종일관 ‘들려준다’. 보여주는 것과 들려주는 것, 영화는 이렇게 두 개의 트랙으로 구성되며 진행된다. 들려주는 현실은 바로 수용소 내부에서 유대인들이 겪는 참상이다. 하지만 이 참상은 내내 들려질 뿐 결코 보여지지 않는다. 모르고 감상하면 상영관의 실수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꽤 긴 시작 부분의 암전은 관객의 청각을 민감하게 만드는 동시에 이렇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자, 이 영화는 보는 것만큼이나 듣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영화 내내 회스 가족에게는 그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대한 담으로 수용소 내부와의 사정과는 완전히 괴리된 채, 새로 태어난 아기까지 다섯 명의 자녀와 함께 단아한 저택을 꾸미며 살아가는 회스 부부는 아우슈비츠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아니, 만족 정도가 아니다. 영화 중반 전출 명령을 받았다는 루돌프 회스의 말에 부인 헤트비히는 당신만 떠나라고, 자신과 나머지 가족은 이 행복한 아우슈비츠의 집을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처럼 평온한 회스 가족의 생활 가운데서도 영화 속에서는 끊임없이 유대인들을 학살시켰던 소각장 기계가 밤낮없이 돌아가는 소리가, 독일군들의 총소리와 욕지거리가, 유대인 포로들의 소란스런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영화 밖으로 들려온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사이의 소름끼치는 괴리감과 당혹감,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본질이다. 한 인간이 백만 명 이상의 다른 인간을 소각시키면서 어떻게 이렇게 자신의 삶을 평온하게 영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사람들은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말하곤 한다. 영화에도 그 이름이 언급된 유대인 학살의 최종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지켜봤던 한나 아렌트는 자신은 지시받은 일을 했을 뿐이라며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던 아이히만을 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썼다. 그녀의 책으로부터 유명해진 개념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악은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처음 책의 번역에서 ‘평범성’으로 번역된 banality의 뜻은 ‘평범성’보다는 ‘진부함’ 또는 ‘상투성’에 더 가깝다. 즉, 악은 행할수록 경험할수록 진부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악은 경험되지도 인식되지도 않는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딸 헤트비히를 방문한 그녀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아름다웠던 정원과 집을 보며 딸의 행복에 감사하다가 거대한 소각장 굴뚝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와 소리에 경악하여 마침내 그 집을 서둘러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진부해진 악에 익숙해져버린 회스 일가족에게 임시 방문자를 경악시켰던 악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놀랍게도 관객 역시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이 진부해진 악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소름끼치게 신경을 자극하던 소리들이 점점 더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여 감독은 영화의 사운드를 디자인할 때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소음의 볼륨을 점점 더 키웠다고 한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 감독은 영화 속의 현실이 옛날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도 유효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이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이 현재를 위한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변함없다. 하나의 생명이 폭력이나 억압보다 더 가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폭력이나 억압이 더 많은 폭력과 억압을 낳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자는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폭력에 대한 우리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려 노력 중이다. 홀로코스트는 정부가 주도한 학살 행위지만 실질적인 차원에서는 매우 평범한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범죄가 수행됐다. 이것은 역사의 패턴이다. 인간 본성 안에 폭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폭력으로부터 진화할 수 있다. 내 영화가 언제나 원초적인 지점을 향하고 있는 이유다.” 나의 영화는 현재를 위한 것이라는 자신의 말답게 이 유대인 감독은 한 영화제의 수상 소감에서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일을 비판하여 다른 유대인들로부터 극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원래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독일인들이 아우슈비츠 근교의 시민들을 몰아내고 구축한 경제적 이익(interest)을 위한 구역을 뜻하는 말이었다.하지만 interest는 ‘이익’ 이외에 ‘관심’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 제목은 ‘관심영역’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도 지닐 것이다. 내 주위에 거대한 담을 두르고 내 관심영역에만 머물며 행복하게 지낼 때 우리는 담 밖에서 벌어지는 악에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 내 정원의 꽃들이 담 밖 인간들의 재와 피로 아름답게 꽃피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게 내게 악은 점점 더 진부해지고, 마침내 담 밖의 고통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채로 나는 내 관심영역의 삶 속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된다. 마태복음 25장의 최후의 심판 장면에서 주님께서 심판 받는 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있었을 때 나를 돌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이렇게 변명했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마 25:44) 이 변명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중요한 단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보고도’이다. 그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 관심영역 안에 머물면서 지금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다면, 어쩌면 나는 가장 큰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