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 장소를 소진시키려는 시도>, 조르주 페렉, 신북스) 

 무언가를 완전히 소진시키기. 최선을 다한다거나,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기진맥진할 때까지 에너지를 다 쓴다거나, 하나만 더,를 외치는 트레이너의 외침에 기필코 아령을 한 번 더 들어 올리는 이런 일에 ‘소진’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 이후로 오래간만에 들은 이 말뜻을 조르주 페렉식으로 생각을 전환시키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기력이 모두 다해버린, 소진되어진 감정의 어두운 면을 벗어나려면 그러나 이 책은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의 ‘파리의 한 장소를 소진시키려는 시도’ 프로젝트에서 하고자 하는 이 수상한 시도는 읽어보면 허무할 정도로 아주 하찮은 텍스트들이다. 1974년 10월, 파리의 쉴피스 광장 주변에서 3일간 이루어진 페렉의 시도에 대한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멀리서 비둘기들의 비행 
보랏빛 망토를 걸친 한 명, 빨간색 2CV 한 대, 사이클 선수 한 명 
생 - 쉴피스 종탑이 소리를 멈춘다
멀리서 두 남자가 뛴다. 
경찰 수송차 한 대가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관성으로 자동차 옆문이 닫힌다. 손 하나가 문을 다시 열고 그 상태를 고정시켜 둔다. 
카페가 꽉 찼다. (68p)

 이 책을 읽을 때엔 위와 같은 하찮은 ‘한 장소’에 대한 기록들에 섣불리 실망하지 말고 촘촘히 상상력을 발휘해 저자가 보고 있는 시선을 재현하고 보고 그 장소를 소지시키려는 시도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해 보기 위해 연습해야 한다. 

 ...대부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많은 것들은 글로 묘사되었고 목록으로 작성되었고 사진으로도 찍혔고 이야기되었거나 기록되었다. 내가 앞으로 채워나갈 페이지들에서 글을 쓰는 목적은 오히려 그 이외의 나머지 것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보통은 언급하지 않는 것들, 주목하지 않는 것들, 중요하지 않은 것들 말이다. 즉 날씨가 변하는 것, 사람들과 자동차들과 구름이 지나가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바로 그 것. (14-15p)

 페렉이 주목하는, 한 장소를 소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랜드마크나 유명하거나 아주 멋드러져서 누구나의 기억에 남아버리는 것들의 제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제외한 사소한 것들, 일상들이다. 버스의 지나가는 현상, 사람들의 가득 찼다가 사라지는 일들, 비둘기떼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것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써버림으로서 소진시키는 이 시도는 결국 ‘한 장소를 존재하게 하는 것, 또는 살아있게 하는 것’의 쟁점이 바로 그것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개의 짖음, 경찰관이 광장을 가로지르는 일, 서서 뭔가를 읽는 일, 어떻게 생긴 여성이 어떤 쇼핑백을 들고 가는 일 같은 사소한 일상이다. 

 페렉의 소진시키기 대상은 데뷔작 『사물들』 이나 740여 페이지의 『인생사용법』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런 것이다. 그의 소진시키기는 무용해 보이는 것, 장면, 장소, 시간, 인물을 세밀하고 집요하게 따라다니듯 써내려가며 그것들이 완전하게 쓰이도록(use/write) 하는 것이다. 결국 페렉이 소진시킨 것은 온전히 텍스트로 남으며 남은 텍스트의 특별함 때문에 유용한 것이 되는 기이한 역설의 글쓰기가 ‘소진시키려는 시도’의 목적이 아닐까.

 이 책은 70페이지가 조금 넘는 작고 적은 책이며 내용 또한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도 그 장소를 ‘읽어 버리지 않으면, 읽어 소진시켜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추천하는 것은 ‘시도’다. 이 프로젝트를 이어서 ‘시도’하기를 바란다. 당신의 하루를 완전히 소진시키기. 완벽하게 다 쓰기(use/write). 

박창수 목사 (인천 성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