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오늘 입은 옷이 참 멋져 보이십니다’(사실은 별로지만)라고 하거나, ‘대접해 주신 음식이 참 맛있었습니다’(음식 맛이 그리 좋지 않았어도)라고 하는 경우이다.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혹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하기 위해서 그런 거짓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의 거짓말은 이런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다.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도 있겠지만, 악의의 거짓말을 밥 먹듯이, 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 문제이다. 나르시시스트에게 거짓말은 숨쉬는 것 만큼이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치 버터가 뜨거운 빵위에서 사르르 녹는 것처럼, 땀구멍에서 땀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처럼, 나르시시스트의 거짓말은 아무 노력 없이도 자동적으로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거짓말은 이들의 그저 또 다른 언어일 뿐이다. 이들은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도 없고 후회도 없다. ‘라마니 더바슐러‘ 박사(Dr. Ramani Duvasula)는 “거짓말은 나르시시스트들의 제2의 천성이다.”라고 말했다.

1. 그렇다면 나르시시스트들은 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나르시시스트 전문가인 ‘’멜라니 토냐 에반스‘(Melanie Tonia Evans)는 이렇게 말했다. “나르시시스트가 병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그들 자체가 허구적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아는 가짜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기가 원하는 망상에 따라 만들어진 신기루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때때로 현실과 완전히 다른 상상 속에서 그것을 진실인 듯 믿으며 살아간다. 물론 그들이 현실 속에 존재하긴 한다. 그렇지만 현실과 망상 간의 경계가 모호해서 확실히 구분하기가 힘들다. 이들의 거짓말이 정말 황당한 것은 눈앞에서 모든 상황을 직접 목격한 사람에게까지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다. 자기 말이 거짓임을 그 사람이 알고 있다는 걸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망상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재창조해 나가는데 자신이 하는 거짓말은 그저 그 대본 속에서 일어나는 ‘진실’일 뿐이다. 나르시시스트의 자아 자체가 이미 거짓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아와 영혼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는 필터가 이들에게는 없다. 거대한 자아를 먹여살리려고 자기애적 공급원을 미치도록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들은 자기애적 상처(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자존감이나 자아 이미지를 위협하는 어떤 사건이나 정보에 직면했을 때 받는 정신적 충격과 수치심)를 입게 되고 이는 나르시시스트의 자아에 끔찍한 타격을 입히게 되므로, 그들은 반드시 거짓말을 한다.”

모든 나르시시트들에게는 허구(fiction)와 사실(fact), 망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섞어 만들어낸 ‘자신만의 세계관’이 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성찰하지 못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이 특별한 재능을 지닌,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대단하고 멋진 존재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가짜세계’에 살고 있다. 이 ‘가짜세계’는 자신은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과장된 자기상을 유지해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자신의 불안정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나르시시스트의 내면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이 ‘가짜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비계(scaffold, 건축공사장의 비계)가 바로 ’거짓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르시시스트는 이런 세계관을 자기 정체성으로까지 삼게 되는데, 이 지경까지 가면 사실과 허구, 현실과 망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망상과 거짓말이 적어도 본인에게만큼은 ’현실‘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라는 스스로의 망상을 위협할만한 그 어떤 것(어떤 사람)도 나르시시스트의 공격대상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이것들을(이 사람들을) 가스라이팅과 심리조종술을 통해 공격하고 제압하려 한다. 그 이유가 있다. ’거짓말‘이라는 ’비계‘를 치워버리면 거짓으로 쌓아올린 나르시시스트의 전 생애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에게 거짓말이란 마치 생존수단과 같아서 절대적이고 불가피한 것이다.

라마니 더바슐러 박사는 나르시시스트가 하는 ‘거짓말’들이 각기 하나의 타일이고, 그 타일들이 모여 마치 모자이크처럼 나르시시스트의 ‘가면’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 가면은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가장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나르시시스트들에겐 ‘보기 좋은 것’이 ‘현실’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멋지게’만 보인다면 세상이 자신에 대해 “저렇게 멋진 사람이니 멋진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라 여길 것으로 생각한다. 이 ’빛좋은 개살구‘같은 가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거짓말‘이기에 나르시시스트들은 무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2. 나르시시스트의 거짓말을 지적했을 때,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라마니 박사는 나르시시스트를 거짓말쟁이라고 지적할 경우 돌아오는 것은 ‘분노, 분노, 더 격한 분노’라고 했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사진, 영상 등 결정적인 온 세상의 모든 증거를 갖다 들이대도 절대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나르시시스트의 거짓말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왜곡된 투사를 하며 오히려 당신에게 망상이 있는 것 아니냐며 비난하고, 지적한 사람에 대한 거짓을 유포하고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한 비방과 인신공격(smear campaign)을 하거나, 자신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죽는 소리를 하거나, 사람들이 자신을 질투해서 깍아내린다고 스스로 착각한다. 순순히 ‘거짓말을 했다’고 인정하는 일 따위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르시시스트에게는 타인을 배려하는 ‘공감능력’이나 자신의 거짓말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통찰력’이 없기 때문이다

3. 나르시시스트의 거짓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라마니 박사는 나르시시스트의 거짓말을 지적해봤자 돌아오는 건 분노와 가스라이팅 뿐이니 그들이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하거나 책임을 질 거라는 생각을 모두 내려놓으라고 조언한다. 그저 당신이 거짓말쟁이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이 내뱉는 말에 상당부분 과장과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을 것을 예상하라고 말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정직해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완전히 믿어서는 안된다. 상대방이 나르시시스트라고 확신했다면 그들의 언어를 믿을 필요도 없고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배설수준인 그들의 말에 너무 깊이 의미부여를 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났을 때 평범한 일반인들이 느끼는 수치심을 나르시시스트들도 동일하게 느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내려놓는게 좋다.

현실적으로 나르시시스트의 거짓말에 대처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방법은 증거물을 남기는 것이다. 물론 증거물이 눈앞에 있어도 끝없이 거짓말을 하는 나르시시스트들도 있다. 녹음과 녹취록을 제시하여 나르시시스트의 거짓말을 입증한 경우에도, 그들은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하기는 커녕 “어떻게 사람이 몰래 녹음을 할 수가 있어? 무서운 사람이네”하며 녹음을 한 사람의 그 행위에 대해 공격을 함으로(당사자와의 대화녹음은 불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프레임을 전환시킨다. 이것은 나르시시스트의 거짓말이 들통났을 때 그들이 대처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물도 없이 당하는 것보다는 확실한 증거물들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해서 조금이라도 진실을 밝히고 억울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늘상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고 증거를 남기려 애써야하는 그런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하나? 그냥 날 좀 존중해주고 서로 인정해주면서 살아가면 안되나?” 등등의 생각이 들고 괴로운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사는 것은 정말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신은 사람 보는 눈이 필요하군요”(크리스텔 프티콜랭)라는 책이 있다. 모두가 선한 이들만 함께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선한 이미지의 가면을 쓰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일삼으며 가스라이팅과 심리조종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망치는 나르시시스트라는 악인들이 있기에 그들을 분별하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을 분별했다면 반드시 떠나라, 떠날 수 없는 가족과 같은 관계라면 최대한 멀리하라. 그것이 유일한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