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나의 죽음에 동의합니다>, 진 마모레오, 김희정, 위즈덤하우스, 2024)

“나는 이 일을 생명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291)

  HBO 텔레비전 영화 <유 돈 노우 잭>을 흥미롭게 관람한 바 있다. 유명배우 알 파치노가 ‘잭 케보키언’ 역을 맡은 작품이다. 등장인물 이름의 ‘잭’을 따서, 잭에 대해서 당신은 알지 못한다는 제목이 붙었다. 기실, ‘유 돈 노우 잭’은 “당신은 쥐뿔도 모른다”는 비격식 관용어라고 하더라. 제목이 아주 절묘했다. 잭 케보키언은 법제화되기 이전부터, 위법적으로 의료조력사망(의사조력자살)을 시행했던 논란의 인물이었다. <유 돈 노우 잭>은 그가 어떤 이들에게 의료조력사망을 시행했는지, 법적으로 어떤 공방을 주고받았는지 등 일련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영화다.

  진 마모레오는 캐나다에서 의료조력사망이 입법된 후 최초로 시행한 의사다. <기꺼이 나의 죽음에 동의합니다>는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의료조력사망을 시행하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술회한다. 누군가에게는 미숙했고,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을 얻게 되었다는 자전적인 이야기와 더불어서 의료조력사망에 있어서 논쟁이 되는 지점과 그것을 돌파할 새로운 법조항이 어떻게 개정되었는지에 대해서 보도하는 책이다.

  의료조력사망의 쟁점은 기준이다. 위중하고 치료불가능한 이들을 어떻게 구분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신체능력의 퇴행, 고통완화불가상태, 가장 논란이 되는 준거점은 ‘어느 정도 가까운 시일 내에 자연사를 할 것이라는 합리적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으로, RFND(reasonably foreseeable natural death)라고 부른다. 최근 캐나다 C-7법안이 통과되어 RFND의 기준이 완화되어 일각에서는 반기는 분위기다. 

“누군가의 돌봄에 의존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근심을 해소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는 환자가 있을 수 있다. 어떤 환자는 기억을 잃어가다가 결국 사랑하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삶의 질은 바닥에 떨어진 채 영혼도 없이 기저귀를 찬 껍질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더 이상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것은 의사들도 치료할 수 없는 문제다.”(71)

  어떤 통계에 따르면, 질병이나 인지장애로 몸져눕거나 타자의 돌봄 속에서 살아가는 평균 기간은 남성은 9년, 여성은 12년이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삶의 질은 향상되고 있는 것일까? 진정으로 생명을 존엄하게 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의료조력사망이 삶을 앗아가는 일이 아니라 삶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당사자들이 의료조력사망이 법제화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절망에 덜 허우적거린다는 것, 이것이 핵심이 아닐까. 

“생을 마감하기 위한 도움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자체로도 외롭거나, 수치스럽거나, 혹은 끔찍한 종말을 맞으리라는 두려움을 얼마간 덜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궁극적으로 의료 조력 사망을 선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절망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보루, 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도구, 상황을 장악할 수 있다는 안심,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심지어 희망이 될 수도 있다. … 의료 조력 사망, 다시 말해 인정과 승인을 받고 공개적이며, 가장 중요하게는 제대로 지지를 받으며 맞는 죽음은 평생 의료 혜택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수 있다.”(168)

  여전히, 아니 인류가 생존하는 동안 의료조력사망은 뜨거운 감자로 남을 것이다. 중증장애인들로 하여금 의료조력사망을 부추기지는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의료조력사망에 동의할 정도로 인지능력이 건재하다면 아직 죽을 때가 아닌 것은 아닌가. 양질의 고통 완화 돌봄 시스템을 잘 갖춘다면 의료조력사망 시행은 불필요하지 않을까.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 진심으로 의료조력사망을 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다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