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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천상 이야기꾼이시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일러주려면 얼마나 풍성한 상상력이 필요했을까? 그래서 사용하신 비유와 상징은 이야기마다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비유는 평소 사람들의 삶에서 나왔고, 상징 역시 어디서든 눈에 띄고, 금새 눈치챌 만한 것들이다. 씨앗, 어린양, 등불, 올리브나무, 세 개의 못, 소금, 물고기, 열쇠처럼 일상적인 소재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상징은 복잡하거나 비밀스럽지 않다. 무명의 풀에 이름을 불러주어 꽃으로 거듭나듯, 추상적 진리조차 상징화함으로써 사람 곁에 다가와 생명으로 꽃을 피운다. 상징의 얼굴이 단순한 까닭은 가장 짧고, 쉬운 경로로 목적에 이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신들만 통하는 암호가 아니라, 두루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을 지닌 대안 언어임을 자임한다. 폴 리쾨르(1913~2005)는 “상징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고 하였다. 상징을 가리켜 ‘충만한 언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대표적인 상징은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거룩한 이미지와 일상의 소재를 상징화함으로써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김문환 교수(1944~2018)는 십자가 연구에 대해 이런 의미를 붙였다.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이고, 또 상징으로 나타내는 거룩한 작업이다.” 상징에는 그 자체로 생명이 있으며, 생각을 되살려주는 것은 상징의 역할이기도 하다.
본래 십자 형태는 그 자체로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지녔지만, 십자가 안에 상징적 요소를 덧붙여 의미를 더하려는 시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럴 경우 십자가 작가들은 대체로 성경 안에서 소재를 찾는다. 그리하여 세계의 십자가는 십자가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처음 시도는 초대교회의 박해현장인 지하묘지에 새긴 그림들이다. 선한 목자를 비롯해 닻, 물고기, 비둘기 발자국, 생명 나무 등은 고전적인 그리스도교 상징물이다.
십자가 안에 담아낸 고전적인 성경의 상징들은 구원의 구체성을 보여준다. 십자가에 담은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 흐르는 네 줄기 강과 함께 창조질서를 의미한다. 비둘기를 새긴 십자가는 노아의 방주로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온 까닭에 평화의 상징으로 인용된다. 무지개를 품은 십자가는 홍수가 끝난 후 하나님의 언약으로 하늘의 무지개를 상징화한 것이다. ‘닻’은 본래 십자가를 위장한 것인데, 희망의 항구로 인도하는 구원을 의미한다.
십자가에 자주 사용되는 꽃은 장미, 수선화, 백합 등이다. 백장미는 마틴 루터의 십자가로 사용되고, 붉은 장미는 유럽에서 기독교사회운동의 심벌이다. 그리고 수선화는 당당히 부활의 꽃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백합과 수선화가 부활의 꽃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나팔 모양이란 특징 때문이다. 루마니아 꽃 십자가는 십자가 중심에 꽃을 두었다. 루마니아 정교회가 만든 여러 가지 ‘꽃 십자가’ 시리즈는 열 가지를 넘는다. 일찍이 예수님은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9)고 하시며 꽃의 명예를 높여주셨다.
벌써 20년 가까운 일이다. 감리회본부에서 기획 업무를 하면서 맨 처음 디자인한 것이 ‘하나님의 손’이었다.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위로부터 오는 손 모양을 떠올렸다. 희망은 하나님의 손을 잡을 때 가능하다는 메시지였다. 중세 시대에 십자가 후광 한가운데에 손을 그려 넣어 하나님의 손을 의미하였다.
같은 아이템을 이용해 ‘손 십자가’를 만들었다. 십자가 한가운데에 손 심벌을 새겨 넣은 손 십자가는 손에 쥐고 기도하도록 고안한 것이다. 손은 사랑의 앙가주망(Engagement)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심벌이다. 나 홀로 움켜쥔 손은 하나님의 손을 잡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미신다.
기도하는 손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일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일처럼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그런 손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덥석 잡아 주는 손, 아무 말 없이 그냥 꼭 잡는 두 손, 빈손 가득 나누어 주는 친절한 손들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앙가주망이다. 십자가는 온 세상, 모든 현실에 다 통하는 예수님의 사랑, 그 자신이며 또한 상징적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