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연약함으로 선 인간상象을 읽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 열화당)

 조각상, 흙이나 흙의 응집인 암석을 이용해 형상을 빚는 일은 창조의 때를 모방하려는 인간의 본능 같아 보인다. 최근 특별전시를 이어가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품 중에 많은 조각상들은 그 생생함과 리얼리티에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오히려 수년 전 보았던 자코메티의 전시와 이 책을 다시 읽게끔 만들었다. 근사한 전신상의 반질반질한 포면이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윤택해 보여서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이다. 진짜 사람의 모습을 담아 낸, 사람의 성질을 담아내는 조각상을 읽고 싶었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는 그야말로 작가인 장 주네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를 드나들며 나누었던 교류를 바탕으로 저술한 에세이격의 책이다. 릴케가 로댕의 화실을 드나들며 미학서적을 쓴 것처럼 동시대의 각 분야 예술가들의 교류로 저술된 책들은 굉장히 다양한 미학적, 철학적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두고두고 읽어도 많은 깨달음을 준다. 

 자코메티는 작가 장 주네, 그리고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 사진작가 앙리 까르티에 브레숑과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며 경험한 수많은 죽음과 삶과 또 인간에 대한 심각한 관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아마 사르트르나 장 주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특히 뼈대만 남은 것처럼 가느다란 자코메티의 작업은 세상 모든 존재들의 소외와 고통, 고독을 주목했던 작가 장 주네에게 경의를 불러 일으킬만한 것이었다. 풍족했던 시기의 윤택한 석상이 아닌 가장 최소한의 인간, 인간의 실존과 현존과 형체를 담아낸 작품이 즐비했던 아틀리에에서 두 명의 예술가의 생각을 담은 짧은 분량의 책은 마치 자코메티의 작품처럼 얇지만 견고하고 어디론가 곧게 뻗어 과거와 현재를 잇듯이 우뚝 선 형상으로 쓰였다. 

  ‘누구라도 자신의 추함 어리석음, 악의를 넘어서서 사랑받을 수 있다.‘ 는 생각이 든 것이다. ... 그리고 사람은 그 추함이나 악의를 넘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이 사실은, 바로 그 추함이나 악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한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생각이 자비가 아니라 하나의 인식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22-23p)

 장 주네와 자코메티는 둘 다 도처에 있는 냄새나고 불안정해 보이는 인물들을 사랑했다. 장 주네는 자코메티의 작품에서  본 ‘인간을 향한 시선’을 길에서 본 추한 인물을 관찰하며 느낀다. 누구라도 추함, 어리석은, 악의를 넘어서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인류애적 관점은 과연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가? 더군다나 자비가 아니라 하나의 인식의 문제라는 저 미적 관점은 문둥병자를 고치고 혈루병 걸린 여인과 삭개오와 눈 먼 자를 매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을 떠올리게 했다. 기적을 행하기 전, 우리의 시각으로는 불우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향한 관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자비의 영역보다 더 큰 것이었을 것이다. 

 예술, 특히 형상을 만져내는 일은 과연 창조자와 우리가 아주 긴밀한 관계에 있으며 창작을 모방하는 피조물로서의 성질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는 상처를 보는 눈이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6-7p)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약함을 부인하지 않는 자들이다. 원죄를 인정해 죄인을 자처하고 시험에 들기도 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간구하여야 하는 나약함을 자부하는 자들이다. 장 주네와 자코메티식으로 말하자면 ‘상처’를 드러냄으로서, 연약함을 자발적으로 시인함으로서 강하게 되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형상일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존재를 우리는 감히 아름답지 않게 바라볼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 존재의 각별함이 획득된다.
 
자코메티가 자주 반복하는 생각 : ‘가치 있게 해야 한다...’ 그가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살아 있는 존재나 사물을 하찮은 시선으로 보아 넘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바라보는 하나하나는 각자의 가장 소중한 고독 속에서 드러나게 된다. (48p)
내가 말하는 고독은 인간의 비참한 조건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밀스러운 존엄성, 뿌리 깊이 단절되어 있어 서로 교류할 수 없고 감히 침범할 수도 없는 개별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어렴풋한 인식을 의미한다. (26p)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모두 하나씩 우뚝 서 있다. 여러 조각상들을 한꺼번에 진열해 놓아도 군중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공동체에 속하긴 하나 모두 저마다의 육신과 삶을 책임지는 개별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신 앞에 던져진 단독자’라 칭한 키에르 케고르와도 상통하는 두 예술가의 고독에 대한 해석은 한편으로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홀로 새벽기도에 무릎꿇어 기도하는 고독, 연약함을 드러내며 단독자로서 우뚝 서는 인간에게, 결코 뒤섞일 수 없는 하나의 상象에 경탄을 보낸다. 자코메티가 그랬고 그의 아틀리에를 보며 이 책을 써내려간 장 주네가 그렇듯이. 

박창수 목사 (인천 성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