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필링스: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캐시 박 홍, 노시내 역, 마티 출판사)

2년 전 즈음, 사순절 기간의 어느 토요일 늦은 오후, 주일예배 준비를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뒤였다. 두돌이 아직 되지 않은 힘이 넘치는 아들의 에너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빼내어, 재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하루 종일 사무실과 예배당에서 예배 준비를 하느라 눈이 침침했고, 몸이 찌뿌둥하다고 느끼던 중, 미국 위스콘신의 상쾌한 겨울 공기를 마시면서 가족과 함께 걸으며 소화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아내와 아들 그리고 나는 옷을 챙겨입고 산책을 하러 집을 나섰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한국인을 비롯해 동양인 자체를 보기 힘든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위스콘신의 시골 지역이었기에, 한적한 곳보다는 가로등이 있고 상점들과 우체국 등이 있는 마을의 번화가를 걷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 판단했다. 한국에 비하면 미국의 인구 밀도는 낮은 편인데, 우리 동네는 워낙 인구가 적은 시골지역이라 번화가로 걸아가는 동안 지나가는 차들 외에 사람 구경은 하지 못했다. 걸으면서 내 안에는 감사가 흘러넘쳤다. 동네의 척추병원을 지나 번화가로 접어들면서 이곳으로 우리를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우체국과 사진관을 지나고, 동네의 주점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주점 안에서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유리창을 통해 보였다. 우리 아이는 산책하는 동안 사람 한번 보지 못했는데, 주점 안에 사람들이 있는 것이 신기했는지 걷다가 멈춰서 주점 안의 사람들에게 인사하듯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주점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들에게로 향했는데, 그 때의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가려는 중이었는데, 얼굴이 닭벼슬처럼 붉어지고 눈은 반쯤 풀린 한 중년 남성이 흐느적거리며 문을 열고 나와 문에 기댄 채 비스듬한 자세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때까지도 우리는 그가 우리 아이가 귀여워서 인사라도 한번 건네보려고 나왔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그는 우리에게 물었고, 나는 그에게 “네,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뒤이어 그는 우리에게 “여기에는 어쩐 일이세요?” 라고 물었고, 나는 그에게 “우리는 동네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라고 대답했다.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그는 속사포처럼 우리에게 쏘아 대듯 이렇게 말했다. 

“여긴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야. 너희 나라로 돌아가!!!” 이 말을 마치곤 그는 문을 쾅 닫으며 주점으로 다시 들어갔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처음 겪는 상황이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아내에게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주점에는 마이크와 같은 음향 시설이 있었는지 매우 큰 소리로 아까 그 남성이 “썩 물러가라!” (이것은 내가 매우 순화해서 표현한 것이다.) 라고 욕설과 비웃음과 함께 고래고래 소리치는 소리가 우리의 등 뒤로 울려퍼졌다. 

<마이너 필링스>를 쓴 캐시 박 홍은 소수적 감정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다. 

“소수적 감정은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보기에도 안 좋은 일련의 인종화된 감정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어떤 모욕을 듣고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는데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 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 (82)

그 사건을 겪기 전까지는 내 삶의 모든 것들에 감사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겪은 그 날 저녁 우리의 감정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복잡해졌다. 그 뒤로 몇 일, 몇 주가 지났지만, 그 날의 일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우리를 힘들게 했다. 나는 많은 기도와 고심 끝에 이 일을 교회에 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교회 월간 뉴스레터의 나의 페이지에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뉴스레터가 성도들에게 전달되고, 몇몇 성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위로하였다. 참고로, 나의 성도들은 거의 대부분 백인이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 함구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혹은 나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이런 일을 당하신 적이 처음이신가요?” 분명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인종적 체험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유학생활을 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의 경우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얽히고설켜서 살고 있기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동양인 혹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주의를 경험해 본 적은 없었다.

일부 교인들은 “(비록 목사님이 그런 일을 겪으셨지만) 우리 지역을 비롯해 위스콘신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라며 위스콘신을 옹호하기도 했고, 해가 질 무렵에 산책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고 말하는 성도도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말들을 들을 때, 나는 저자가 소개한 소수적 감정이 내 안에서 발동되고 있었다. 

“나의 경우엔 인종화된 현실을 부정하는 미국식 긍정성을 강요당해 인지 부조화를 겪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 (83)
“우리가 살면서 겪는 구조적 차별은 그들이 착각하는 현실과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보기에 우리의 감정은 과잉반응이다.” (84)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한국에서 인종적 체험을 경험해본 적이 없듯이, 그들 또한 백인들이 대다수인 지역을 벗어나본 적이 없기에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해본 적도 없고 공감 또한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에게 내가 느끼는 소수적 감정은, 한국인으로 “한”을 느끼며 산다는 것은 과잉반응으로 치부되기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종주의가 갖고 있는 수 많은 문제들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인종주의의 한 가지 특징은 아동을 성인처럼 취급하고 성인을 아동처럼 취급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아이처럼 굴욕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수치심을 유발한다. 우리 부모가 백인 성인에게 무시당하거나 놀림당하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109)

바로 그 날 저녁, 우리 아이가 그 주점 안의 사람들을 보며 입가에는 미소를 띄우고 손을 흔들고 있었을 때, 우리 아이는 겨우 두 돌도 지나지 않아 아장아장 걷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는 아기였을 뿐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자극했을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위협받는다고 느끼게 했을까? 그들의 눈에 우리 아이는 무엇으로 보였을까? 그들의 눈에는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아기가 아니라 한 명의 중국인으로 보였을 뿐이었을까? 만약 그들의 자녀 혹은 손주들이었다면 그들 앞에서도 똑같이 험한 말을 배설하며 고래고래 소리쳤을까?

“인종에 관한 글쓰기는 이제까지 우리를 지워버린 백인 자본주의 인프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점에서 격렬한 비판을 담지만, 우리의 내면이 모순들로 뒤엉켜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이기도 하다.” (93)

저자는 소수인 우리가 계속해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백인 자본주의 인프라에 소리내어 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게 미덕이라고 믿으며 가만히 있다보면 가마니가 될 뿐이다. 저자는 시인으로서 글을 쓰며 이 나라의 부조리에 소리내어 저항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소수적 소리를 내어야만 한다. 

“유대인의 자기혐오나 미국 흑인의 자기혐오에 관한 책은 얼마든지 있지만, 아시아인의 자기혐오에 관한 책은 별로 많지 않다. 인종적 자기혐오는 백인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고, 이것은 나를 자신의 최악의 적으로 만든다.” (26)

우리가 비록 타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소수적 감정을 느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지만, 나와 아내는 소수자로 태어나고 자라지는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현재 있는 이 곳이 넓은 세계 속의 지극히 작은 일부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는 우리와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소수자로서 이 세계에 던져졌기에 아이가 앞으로 부딪히게 될 많은 상황들이 벌써부터 염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미국이란 나라에서 소수 인종으로서, 그리고 소수 인종의 부모로서 나는 어떠한 목소리를 내어야 할지 깊은 사유를 해볼 수 있었다. 

민학기 목사(윌로우리버 연합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