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다’는 오역이다

한글개역개정성경(1998년)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나라 개신교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한글개역성경(1911-1961년)을 개정한 것이다. 당시 개역개정판(1998년)은 시대와 언어의 변화를 고려하여, 꼭 고쳐야할 부분만을 개정함으로써,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의 번역 성경을 최대한 존중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개역개정판(1998년) 성경이 나온지 약 10년이 경과하면서, 일부 장로교단에서는 개역개정판성경의 보급과 사용의 중단을 촉구하였다. 이 단체는 개역개정판성경을 출판한 대한성서공회와 개정판감수위원들에게 한글개역성경을 제대로 수정‧보완하여 번역하지 않았고, 오히려 개악(改惡)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악된 내용들을 서로 대조하고 예시하면서, 개역성경이 개정판보다 더 낫다고 항변하였다.

성경 번역과 관련하여, 기독교계에서는 ‘개악(改惡)’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개악(改惡)이란 ‘원래보다 더 나쁘게 고침’이란 뜻이다. 이를테면 성경 번역에 있어서, 개악이란 기존에 번역된 내용을 고쳐서 재번역을 하였는데, 이 재번역이 오히려 이전에 번역한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한글개역개정성경의 번역자들이 기존의 한글개역성경을 올바로 재번역하지 않고, 오히려 수많은 부분들을 개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실례를 제시하면서, 그 내용들을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실제로 그러한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구약성경 이사야 38장 15절과 관련하여 개악된 사례를 살펴보자.

- 이사야 38장 15절을 올바로 번역한 성경들은 다음과 같다.

                                                  - 다 음 -

(한글개역성경)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

(현대인의성경)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이 일을 행하셨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 고통을 생각하며 여생을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리라.

(공동번역성서)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무엇이라고 주께 아뢰겠습니까? 주님께서 하신 일인데! 내 마음의 슬픔 때문에 잠도 멀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표준새번역성경)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주님께서 그대로 이루셨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나의 영혼이 번민에 싸여 있으므로, 내가 잠을 이룰 수 없다.

(쉬운말성경) … 남은 시간이나마 삼가 신중히 행할 따름이다.

(우리말성경)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잠도 멀리 달아나고 말았다.

(쉬운성경) … 내 잠마저 모두 달아났다.

(바른성경) … 나는 평생토록 조심스럽게 행하겠습니다.

(가톨릭성경) … 내 잠이 모두 달아나 버렸다네.

(메시지성경) … 번민과 괴로움에 잠을 이룰 수 없네.

(중국어성경) 我可說甚麼呢？他應許我的，已給我成全了；因我的心曾受過苦楚，所以我要謹慎地度我所有的年日。(그래서 나는 나의 모든 세월을 근신하며 보내고 싶다.)

(일본어성경) … 私は 私のすべての 年月 靜かに 步みます(나의 모든 세월을 조용히 보내리라)

(흠정역한글성경)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그 일을 이루셨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 내가 내 혼이 괴로운 가운데 내 모든 햇수를 조심스럽게 보내리로다.

(흠정역영어성경) What shall I say? he hath both spoken unto me, and himself hath done it: I shall go softly all my years(나는 내 모든 세월을 부드럽게 보낼 것이다) in the bitterness of my soul.

(NIV신국제역본 영어성경) But what can I say? He has spoken to me, and he himself has done this. I will walk humbly all my years(나는 내 모든 세월을 겸손하게 걸을 것이다)

(독일어루터성경) Was soll ich reden? Er hat mir's zugesagt und hat's auch getan! Ich werde in Demut wandeln all meine Lebtage(내 모든 생애를 겸손하게 걷게 될 것이다)

(히브리어원어성경 공인본문) מה־אדבר ואמר־לי והוא עשה אדדה כל־שנותי על־מר נפשי׃ (… 내 모든 세월을 근신하며 보내리라)

이사야 38장은 유다의 13대 왕인 히스기야에 관한 이야기이다. 본장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히스기야 왕의 죽음과 그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왕을 보게 된다. 특히 본장에서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은혜에 감사하는 왕의 노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본문(15절)에서, 히스기야는 병으로부터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께 대한 고백을 나타내고 있다. 즉, 그는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라고 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인간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고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또 그는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하나님께 새로운 자세로 임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한글개역성경은 15절 후반부에서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리이다.’라고 번역했다. 여기서 ‘종신토록’은 ‘평생 동안’을 뜻하며, ‘각근(恪勤)히’는 우리말 사전에 ‘부지런히 힘씀’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은 ‘내가 평생 동안 부지런히 힘쓰며 행하겠다.’는 말씀이다. 즉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부여받은 15년이라는 여생을, 지난 날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엄숙하고도 경건하게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부지런히 힘쓰리라’의 히브리어의 ‘에다데’(אדדה, 스토롱 코드번호 1718)는 엄숙한 행진을 묘사하는 말이다. 그래서 위와 같이 여러 성경들은 개역성경과 유사한 의미로 번역되었다.

- 그러나 다음 성경들은 본문(사38:15)을 잘못 번역하였다.

                                              - 다 음 -

(한글개역개정성경)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내 영혼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

(전수성경) … 내 영혼의 고통으로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

(NASV신미국표준역성경) "What shall I say? For He has spoken to me, and He Himself has done it; I will wander about all my years(나는 내 모든 세월을 방황할 것이다)

위의 성경들은 ‘내가 종신토록 방황하다’라는 의미로 번역하였다. 여기서 ‘방황하다’라는 말은 ‘정처 없이 헤매며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 (NASV신미국표준역성경)에 나오듯이 “I will wander about all my years(나는 내 모든 세월을 방황할 것이다)”라고 번역하였다. 여기 나오는 ‘wander’이라는 단어는, ‘방황하다, 유랑하다, 방랑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글개역개정성경과 전수성경은 영어성경인 NASV성경을 모방하여 ‘방황하다’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성경들은 모두 잘못된 번역들이다. 이 성경들은 ‘방황하리이다’를 ‘부지런히 힘쓰리이다’라는 의미로 고쳐서 번역해야 했다. 히브리어 원어인 ‘에다데’는 ‘부지런히 힘쓰다’ 혹은 ‘조용히 걷다’의 뜻이다. 따라서 여기에 ‘방황하다’라는 의미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로 “조심스럽게 행하여 방황하지 않겠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성경번역전문위원이며 총회신학연구원인 강원주 교수는 그의 저서 〈개역개정판에 대해 말한다,115쪽〉에서, “히브리어 ‘에다데’(אדדה)는 ‘근신하리라, 부지런히 행하리라’는 의미이고, 시리아역에서는 ‘내가 잠이 다 달아났나이다(졸지 않고 경성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따라서 앞서 올바로 번역된 여러 한글 성경들에서는 ‘내가 잠을 이룰 수 없다’라고 번역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한글개역개정성경의 ‘종신토록 방황하리이다.’라고 번역한 것은 원문을 왜곡하고 개악함과 동시에, 내용적으로도 정반대의 의미로 오역을 하여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했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한글개역개정판(1998년) 성경이 나온지 약 10년이 경과하면서 일부 장로교단에서는 개역개정판성경의 보급과 사용의 중단을 촉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미주 한인교회들에서도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수많은 한인교인들이 혼란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미주 한인교회의 숫자는 약 4,000개이며, 국내와 마찬가지로 장로교인들이 개신교 전체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을 전후하여, 국내외의 일부 개신교회들이 몇 년 간 한글개정판성경을 거부하고, 개역한글판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부분적으로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운동은 힘을 잃고, 오늘날에는 한국 개신교의 약 95%의 교회들이, 교회에서 강단용으로 한글개역개정성경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대한성서공회에서는 한국 교회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성경 원문의 뜻을 보다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여러 성서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 현재 사용하는 있는 한글개역개정성경을 2035년까지 재개정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35년까지는 아직 10여년의 세월이 남아 있으므로, 현재까지 드러난 개역개정성경의 잘못된 부분들은 수정‧보완하면서 계속 출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한성서공회는 잘못 번역된 곳을 여전히 수정‧보완하지 않고서 계속 10년 이상 방치하고 있다. 이 글의 본문(사38:15)에 언급한 내용뿐만 아니라, 이 외에도 수많은 오역들을 계속 방치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오역된 성경을 읽게 하고 있는데, 그 피해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독자들에게 오롯이 돌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대한성서공회는 오역된 곳들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조속히 수정‧보완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권영문 / 전 경성대 교직원, 현 기독교 칼럼니스트 / 「성경 번역과 해석 올바른 설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