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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젇태준 박사 |
제2장 모스크바 삼상회의
한반도 해방 시 공간은 동상이몽을 분출하고 있었다. 미군정, 소군정, 국내 지도자들은 각자가 자기가 제일인양 따로 놀았다. 그럼에도 새로운 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열정과 야망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거렸다. 질서를 만들기 위해 혼돈의 날들을 이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낮밤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좌와 우의 대립은 물론이거니와 우익들끼리도 ‘나요 나’를 외치고 패거리를 만들어가며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심지어 테러도 서슴지 않은 씁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좌익들도 이에 뒤질세라 자신이 만드는 세상이 최고라고 억지를 부려댔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만이 새 나라 한국의 주인 행세를 하려는 탐욕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줄을 몰랐다. 그랬다. 환희의 해방 시 공간이어야 할 한반도는 추악한 탐욕이 더 우선했고 국민들도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19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모스크바에서 개최한 3국 외상회의에서 미국의 번즈, 소련의 몰로토프, 영국의 베빈은 7개 의제를 협의한 후 그중 하나의 의제인 한반도 문제에 관하여 고무적인 결정문을 이끌어냈다.
1. 한국을 독립국가로 재건설하기 위하여 한국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2. 한국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을 돕기 위하여 미국과 소련의 대표자들로 공동위원회를 설치한다. 미소공동위원회는 한국의 민주주의적 정당 및 사회단체와 협의해야 한다.
3. 미소공동위원회의 임무는 한국 민주주의 임시정부 및 한국의 민주주의 단체들의 참여 하에 한국 민주주의적 자치정부의 발전 및 민족적 독립의 달성을 원조 지원할 방책으로서 최장 5년 기한의 4 대국 신탁통치에 관한 협약을 작성하는 것이다.
4. 2주 내에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한다.
결정문을 압축해서 실체적으로 정리해보자면, 한국 문제 처리에 있어 궁극의 목적은 한국 독립국가 건설이요 건설 과정으로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그 운영 방법은 미. 소. 영. 중 4 대국 5년 신탁통치로 하는 것인데 그 본질은 임시정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고 돕는 것이며 이 모든 과정을 수립하는 주역은 미국과 소련이지만 반드시 한국의 정당과 사회단체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따라서 미. 소공동위원회와 한국의 정당. 사회단체들이 맨 먼저 해야 할 과제는 임시정부 수립이며 이에 따라 신탁통치 방안을 마련하면 되는 것이었다.
마침내 한반도는 운명적인 미래를 맞이할 중차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로따로 날개 짓을 하던 한반도가 좌우 날개를 동시에 퍼득거리며 나는 연습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통일국가를 낳을까? 연방국가를 낳을까? 아니면 각기 전혀 다른 국가들이 탄생할까?
* 가짜 뉴스에 무너지다
그러나 독립국가 건설의 기대와 희망은 단 하루도 가지 못했다.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사달이 나버렸다. 삼상회의가 끝나자마자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 내용을 비틀어버린 소식을 1945년 12월 27일 자 1면 톱기사로 실었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 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
삼상회의의 핵심 결정사항인 ‘한국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핵심은 빠뜨리고 사실은 왜곡했다. 허나 진실은 달랐다. 신탁통치를 주장한 것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소련은 임시정부 수립을 주장했다. 동아일보의 가짜 뉴스는 오매불망 독립국가 건설을 학수고대하던 한국인들에게 청천벽력이었다. 잇따라 조선일보와 서울신문도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데 동참했다. 그 순간에는 가짜 뉴스가 불러올 재앙이 무엇일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김구가 포문을 연 반탁 운동은 결국 온 나라가 반탁과 찬탁으로 쫘악 갈라져 닥치고 대립하는 야만성을 토해내다가 마침내는 쪽박까지 깨뜨려버리는 참상으로 막을 내렸다.
남한의 배타적 정부요 반공이 최우선이라고 공언한 미군정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운형, 이승만, 김구, 그들은 나무도 보고 숲도 볼 줄 알아야 했다. 미국의 실체를 적확하게 파악하고 미군정의 정책도 속속들이 파헤쳐보고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새 나라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한국 지도자들은 대동하고 단결할 줄도 알아야 했다. 한 목소리로 미국과 소련을 상대로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때였다. 자신의 주장은 잠깐 뒤로 미루고 타협과 협력을 도모할 때였다. 그들은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초석으로서 임시정부 수립을 눈앞에 닥친 중차대한 과제로 인식하고 무조건 뭉쳐야 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 유치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지도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서로를 경원시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욕망의 테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벗어날 줄도 몰랐다. 적전분열도 서슴치 않는 옹고집들이었다. 해방 시 공간은 난세를 치세로 만드는 탁월한 지도자가 필요한 시절임에도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의 이념과 세계에 갇힌 채 하릴없는 권력욕만 분출하고 있었다. 스스로 지키고 보호할 힘도 없으면서 억지만 부리고 있었다.
만약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5년 간의 신탁통치를 수용했다면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지도력들이 배출됨으로써 통일국가 건설이 가능했지 않았을까? 설령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1국 2체제 형식의 연방국이 건설되거나 미-영-불-소 점령하에 있던 오스트리아처럼 중립국으로 태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5년 간의 신탁통치가 끝나는 때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발한 1950년이다. 어찌 되었든 전쟁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 됐으면 지금처럼 남이나 북이나 응어리진 가슴을 부여안은 채 살아가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두고두고 통탄할 일이요 두고두고 곱씹어볼 일이다.
제3장 플랜 B
미국은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새로운 패권 구상을 하기에 여념이 없는 중에 한반도를 소련 공산 세력 팽창을 저지하는 선봉대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질 않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두 번에 걸쳐 회합을 가진 미. 소공위는 아무런 성과 없이 문을 닫았고 대안으로 시도했던 좌우합작 운동도 자진해서 철폐해버렸다. 이로 말미암아 삼상회의 결정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으니 미군정과 소군정은 처음처럼 다시 따로 놀기 시작했다.
미국은 마침내 플랜 B를 가동했다. 미국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신탁통치는 물론 친미 반공 통일국가 수립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자 남한 지역 만이라도 친미 반소 반공 세력의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라 여겼다. 해서 1947년 10월 17일 한국 문제를 UN에 일방적으로 이관해버렸다. 미국이 선수를 쳐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로드맵을 펼쳐놓았고 소련은 소련대로 앙큼스러운 음모를 꾸미고 있었으니 해방 한반도는 온전히 해방되지 못한 길을 가야 할 운명에 빠지고 말았다.
1. 대한-민국 탄생
우여곡절 끝에 UN 총회는 미국이 제안한 ‘남북한 대표 선출을 위한 UN한국임시위원단의 설치’ 안을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UN한국임시위원단은 UN 감시하에 남북한을 통한 유일한 합법적 중앙정부로서 한국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총선거를 실시한 후 정부 수립과 동시에 미. 소 양군 철수 임무를 맡게 되었다.
UN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아래 1948년 5월 10일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소련은 UN한국임시위원단의 소군정 관할지역 활동을 거부했으며 그로 인해 북한 지역에서는 총선거를 실시하지 못했고 미군정 관할지역인 남한에서만 200개의 선거구에서 총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실제로는 198개의 선거구만 선거를 치렀는데 그 이유는 2개의 선거구를 가진 제주도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면서 일으킨 4.3 항쟁으로 인해 선거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소련이 총선거를 거부한 것은 북한 지역에서 이미 다른 플랜을 가동하고 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5.10 총선거에서 당선된 198명의 국회의원들은 5월 31일 국회를 구성하여 이승만을 초대 의장으로 선출하고 2년의 임기를 시작하였다. 국회는 정신 차릴 겨를이 없을 정도로 분주하게 돌아갔다. 우선 나라 이름을 정해야 했다. 우파는 ‘대한’, 좌파는 ‘조선’, 중도는 ‘고려’를 주장하면서 격론을 벌였다. 1948년 6월 7일 헌법 기초위원들의 무기명 비밀 투표에서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가 나왔다.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188명 중 찬성 163표 반대 2표로 대한민국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7월 12일 제정한 제헌헌법이 규정한 정부 체제는 내각책임제였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대통령중심제로 수정하도록 강요하였고 결국 그의 뜻대로 개정된 대통령 중심제에 의해 이승만은 7월 20일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나라 이름도 정하고 헌법도 만들고 대통령도 뽑았으니 이제 정식으로 나라의 깃발을 올리는 일만 남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부활의 깃발을 올렸고 1948년 12월 12일 UN 제3차 총회에서 정식 정부 승인을 얻어 마침내 독립국가가 되었다. UN은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정부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임을 선언하는 결의안을 채택함과 동시에 ‘유일한 합법정부’란 선거가 가능한 -사법권이 유효한-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합법정부, 즉 ‘남한’이라고 착실하게 ‘유권’ 해석까지 내려주었다. 한마디로 1948년 8월 15일 수립한 대한민국은 북한 지역까지 모두 아우르는 한반도 통일국가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미국은 처음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전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주장하였지만 UN에서 거부당했다. 대한민국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의가 실행되지 못한 고로 생겨난 우측 날개 국가였다. 미국과 UN이 그려낸 그림에 우리가 오밀조밀하게 색칠한 성과물이었다.
한편 평생을 독립항쟁에 투신해 온, 그러나 막상 해방 시 공간에서는 갈지자 걸음걸이를 했던, 그럼에도 우직하게 통일 독립국가 건설을 부르짖었던, 반쪽짜리 나라를 만드는 5.10 총선거 참여를 거부하고 이승만의 단독정부에 반대했던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오전 9시경, 신생 대한민국 권력자들의 비호를 받은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총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심장을 멈추게 해 버린 것이다. 여운형의 좌우합작 날개도 꺾이고 김구의 통일국가 염원도 스러지고 이제부터는 온통 극우 노인 이승만의 세상이 도래했다.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탄생
같은 해 9월 9일, 소군정의 북쪽 지역에서는 사회주의체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탄생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이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추진한데 대한 반발로 수립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미 준비는 완전하게 마쳐놓고 미국의 조치 과정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중 출범한 나라였다. 분단국가를 수립했다는 비판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 대한민국 수립보다 시기적으로 늦게 수립했던 것일 뿐이다.
소군정은 조만식을 북조선 5도 행정국 책임자로 임명했는데 조만식이 주도권을 장악하자 오히려 이로 인해 소군정과 갈등을 일으켰다. 조만식이 탁치 반대 입장을 드러내자 소군정은 탁치 찬성 입장을 밝히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런데 조만식이 ncnd 입장을 보이자 소군정은 그를 고려호텔에 연금시킨 후 숙청해 버렸다. 이로써 소군정은 우익과 결별하고 북조선인민위원회 설립을 공포한 후 김일성을 택했다. 소련이 김일성을 택한 이유는 자생 공산주의자였던 박헌영에 비해 세력이 약하고 국내 파벌이 없어 고분고분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이후 남측에서 우측 날개 단독정부 대한-민국을 수립하자 북측도 기다렸다는 듯이 좌측 날개 단독정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던 것이다.
3. 분단체제 출현
결국 통일 민주국가 건설의 꿈은 허망하게 사라졌다. 통일국가가 아니라 1 민족 2 국가가 태어났다. 용을 그리려던 꿈은 두 마리 뱀을 그리고 말았다. 위엄 서린 봉황이 아니라 두 마리 싸움닭을 낳았다. 우측 날개가 먼저 실체를 드러냈고 이어서 좌측 날개도 반쪽짜리 국가로 태어났다. 이왕 태어난 나라라면 두 날개가 나란히 균형을 잡고 퍼득거려야 온전히 날 수 있으련만 시작부터 서로 할퀴고 찌그러뜨리려 안달하면서 따로따로 날개 짓을 해대니 앞날이 아슬아슬한 두 날개들이었다.
대한-민국은 헌법 1조의 영토 조항에서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건국 헌법 제103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부는 서울시다.”라고 명시했다. 서로가 서로의 약점이자 치부를 날카롭게 찔러댔다. 한국 독립국가 건설을 결의한 삼상회의의 결정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마당에 남과 북에서 각각 반쪽짜리 정부를 세울 때에는 상대 영역에 대해서는 언급을 해서는 안되었다. 미국이나 소련이 죽 쑤어 개 줄 일이 있었을까? 김일성을 앞세워 탄탄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진행하던 소련이나 계륵처럼 여기는 이승만을 앞세워 반공국가를 세우려던 미국이 자신의 패권 영역을 상대에게 그냥 넘겨줄 일이 있었을까? 새로운 정부,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부터 각각 내세우는 헌법 조항은 서로 싸우자고 상대를 자극하는 도전장이나 진배없다.
반공 첨병 국가 대한-민국, 지상천국을 꿈꾸는 사회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둘 다 한쪽 날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내팽개친 반쪽짜리 나라였다. 대한이나 조선은 각자 자기 나라가 정통성을 갖는다고 우기고 있었지만 상대를 비난하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아는 일이다. 뭐로부터 법통이고 정통성인가? 신흥 강자들의 팽창 야욕을 넘지 못하고 자칭 지도자들입네 하는 자들의 탐욕을 버리지 못한 처참한 결과물이라고 그냥 고백하는 것이 역사적 용서를 받는 길일 것이다.
갈등과 분쟁의 씨앗을 뿌리면서 시작한 새 나라들은 1민족 1국가 실현을 구실 삼아 전쟁을 시작했고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스러져갔으며 산천초목은 불바다가 되었고 누구도 이기지 못하고 승부 없는 정전으로 38도선은 분단선으로 굳어져 모든 게 초기 상태로 돌아가버렸다. 한반도는 도리없이 분단의 질곡 속에 한스런 역사를 살아가는 운명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골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 하는가?
칼을 들어 한반도를 두 동강 낸 솔로몬은 누구였는가?
한반도가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 둔 가짜 어머니는 누구였는가?
한반도를 살려내려 아등바등 애를 썼던 진짜 어머니는 누구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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