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1일 화요일

     아침에 흐렸다 오후에 잠시 맑음

     선한 감동

     어제 모더나 백신을 맞고 밤새도록 감기기운이 있는 것처럼 몸이 으쓱으쓱 춥고 어깨가 쑤시고 아파서 밤새도록 앓느라고 잠을 설쳤다. 얼마 전 봉양천에 새로 생긴 징검다리를 건너보고 머리도 식힐 겸 강변에 산책을 나가다. 징검다리가 없을 적엔 강 건너편 정자에 가려면 멀리 2km는 돌아가야 돼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징검다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마음속으로 기도하였다. 그러고 지방에 볼일이 생겨 4박 5일 동안 다녀 온 사이에 갑자기 징검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도 대충 만든 것이 아니고 포클레인으로 큰 바위들을 옮겨서 육중하고 멋지게 잘 만들었다. 홍수가 나도 끄떡없을 것 같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내가 없던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누가 저렇게 멋진 징검다리를 만들어 놨을까! 여름 내내 만들지 않다가 왜 하필이면 사람들도 별로 다니지 않는 겨울에 갑자기 만들었을까? 마치 하늘의 천사들이 동원되어 만든 것 같다. 내 기도가 응답된 것 같다하면 지나친 비약이나 환상일까? 아니면 원래 하천정비계획에 있었던 사업이라 한 것일까? 어찌되었든 계획에 있었던 일이라도 때맞추어 내가 잠시 없던 사이에 완벽하게 잘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는 내겐 보통 신기하고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스스로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하며 징검다리를 건너니 밤새 앓던 몸이 기분 좋게 다 나은 기분이다.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에서, 80대 노인이 휴지를 주우시다가 옆에 있는 밭에 까지 들어가서 줍는다. 늘 그렇게 좋은 일을 하시어 눈여겨보긴 하였지만 말을 붙여본 적이 없어 오늘은 말을 한 번 걸어보다.

     “연세도 많으신 분이 이 추운 겨울에 남의 밭에까지 들어가시어 그렇게 좋은 일을 하십니까?”

     “플라스틱은 썩질 않아요, 주워 내지 않으면 농사에도 지장이 있어요!”

     “어르신네 밭인가요?”

     “누구 밭인지는 모르지만 환경이 깨끗해야 식물도 잘 자라고 인체를 해롭게 하지도 않아요. 요즈음 환경오염문제로 온 지구촌이 어려움을 많이 겪잖아요. 작은 일이지만 협조해야지요.”

     당신 밭도 아닌데 추운 날 남의 밭에까지 들어가시어 플라스틱 조각을 제거하시다니 참 훌륭한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의 말을 듣다 보니 갑자기 그 정반대로 사시는 나의 친척 노인이 생각난다. 그 분은 80대 중반인데 사업에 실패하고 한 푼도 없이 망하여 자녀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하루하루 간신히 연명해가면서도, 꼬부랑 할머니가 밥 해다 차려 놓으면 늘 “짜니, 다니, 쓰니!”하며 밥투정을 하고 신경질을 내서 그 분 옆에 있기가 민망하다. 그뿐 아니라 텔레비전도 이상한 3류 가짜 뉴스만 틀어 놓고 들으며 그들 장단에 맞추어 매일 태극기 찢어지는 소리만 해서 그 분 만나는 게 늘 부담이 된다. 하여 저렇게 늙으면 가정과 국가와 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 되어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오늘 휴지를 줍는 할아버지를 보니 “저렇게 늙으시면 오래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하니 우리 집 문 앞에 쌀부대가 놓여있다. 지난번에 전화하셨던 충남 보령에 사시는 80이 넘으신 원로장로님이 보내신 쌀이 벌써 도착하였다. 시골에서 농사지은 맛있는 햅쌀을 혼자 먹기 아까워 선교사에게 한 부대 보내신 거다. 나 혼자 먹으면 몇 달은 잘 먹겠다. 늙어도 이렇게 감동을 주고 나누며 살 수 있다면 노인이 많다고 불평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선한감동을 주는 노인들은 오래 사시면 사실수록 우리 마음을 든든하고 따듯하게 한다. 나도 그렇게 이웃들에게 선한 감동을 주며 늙어가고 싶다.

     주포리, 전인치유생명연구소에서 적다.

▲ 봉양천 징검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