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사람들은 제철 음식을 찾습니다. 미각과 온 몸으로 봄을 맞이하는 나름의 성례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봄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고 봄에 유난히 맛있는 음식도 있습니다. 달래와 냉이 두릅 등 봄나물이나 여린 쑥에 쌀가루를 묻혀서 만든 쑥버무리, 그리고 봄 도다리에 쑥을 넣어 끓인 도다리 쑥국도 봄을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독일 사람들의 봄철 음식은 단연코 슈파겔(Spargel)입니다. 슈파겔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스파라거스로 알려져 있는데 4~5월 독일 슈퍼마켓 앞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을철 김장 배추를 쌓아 놓듯이 슈파겔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독일 사람들은 광합성을 억제시켜 재배한 하얀색 슈파겔을 즐겨 먹는데, 빛을 지향할 수 없는 슈파겔은 수직적 생장이 억제되어 녹색 슈파겔보다 통통하고 그 식감 또한 더욱 부드럽습니다. 음식에도 겉치레가 없고 본질을 중요시 하는 독일 사람들은 슈파겔을 삶아서 홀랜디쉬 소스에 곁들여 먹거나 스프로 만들어 간단하게 먹습니다. 유난히 길고 습하고 어두웠던 독일의 겨울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저 또한 이 계절에 슈파겔을 먹으며 제 몸에 봄의 생기가 퍼져 나감을 만끽하곤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저마다의 방법으로 봄을 맞이합니다. 목사가 된 후로 어느새, 저에게 봄은 사순절과 마태수난곡, 십자가와 부활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들어야만 하는 ‘제철음악’도 있습니다. 2년 전에 출판한 40일 여정의 마태수난곡 묵상집을 책상에 올려놓고 올해도 그 길을 걷고 있는데 그 감동은 여전하고도 더 깊어지기만 합니다.     

마태수난곡 보다는 작품적 무게감은 덜 하지만 그 감동의 무게만큼은 만만치 않은 또 다른 곡이 있습니다. 해마다 이 계절이 되면 저는 이 노래를 듣거나 성가대 찬양으로 부릅니다. 내 몸에 봄을 알리는 슈파겔 처럼, 내 영에 십자가의 사랑을 일깨워 주는 노래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차분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사랑하는 제자들과 보냈던 마지막 그날 밤의 이야기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 음 한 음 주님의 고통과 외로움과 슬픔이 느껴지면서도 사랑하는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에 끝내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마태수난곡과 마찬가지로 저는 이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가장 깊은 눈물을 이끌어 내는 마태 수난곡과 달리 이 노래는 눈물 속에서도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해 줍니다. 이 곡은 데보라 가버너가 작사 작곡한 ‘기억하라/Remember me’입니다. 

예수께서 팔리시던 밤에
제자들 불러 모으시고
떡을 떼어 저들에게 주시고
잔을 채워 저들에게 주시며
나의 몸과 나의 피니
기억하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괴롬에 싸여 기도하셨네
이 잔을 지나가게 하소서
이 고통 거두어 주소서
나의 아버지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의심과 고뇌에 빠진 밤에
내 맘에 주님 찾아 오셔서
주의 몸과 피를 내게 주시며
겟세마네 기도 들려주시니
주가 항상 함께 하심을 기억하라
주님 기억하라

앞서 말씀 드렸듯이 이 노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느 날 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1절과 2절의 밤은 주님의 마지막 밤, 같은 밤이지만 3절의 밤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밤입니다. 의심과 고뇌에 빠져 있는 지금 우리들의 밤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그 외롭고 고통스런 밤을 보내셨던 주님은 우리의 밤에 우리의 마음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원곡 가사를 보면 1절, 2절, 3절 모두 ‘기억하라(Remember me)’라는 가사로 끝납니다. 곡의 제목도 ‘기억하라’입니다. 그러나 그 ‘기억하라’는 각 절마다 다른 의미입니다.  

1절은 우리가 아는 바대로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입니다. 2절은 “(나의 이 어둠의 시간에 너희는 나를 기억해 줄 수 있겠니?) 내 곁에서 깨어 나를 위해 기도해 다오"이며 3절은 의심과 고뇌에 빠진 밤에 나를 잊지 않고 찾아오신 주님께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구하는 의미입니다. ‘Remember me’라는 같은 가사가 이렇게 저마다 다른 뜻으로 쓰이며 주님의 마지막 밤을 우리들의 이야기로 연결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으로만 산다면 슈파겔 같은 ‘제철음식’이면 족할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영혼과 감성이 있기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따른 ‘절기음악’이 필요합니다. 이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더욱 깊은 사순절의 은혜 속으로 침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하여 의심과 고뇌에 빠져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살과 피, 그리고 겟세마네의 기도소리가 전해지기를, 그리고 우리를 위해 그 어두운 밤을 보내시고 우리의 밤에 우리를 기억하사 다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https://youtu.be/4CCXo8vIiQ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