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진지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 막연한 좋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우방이라 한들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며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것이 냉혈한 국제관계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랜 역사적 관계와 6.25 전쟁, 미세먼지나 해양오염과 같은 환경문제, 어업갈등과 이주민 범죄 등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나라 보다 유독 중국에 대한 불호(不好)가 강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되도록 어떤 특정한 나라에 대한 감정 섞인 평가를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덕분에 국가대표 경기를 봐도 남들만큼 재미있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지만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지성인 행세를 하는 것도 별반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중국에 관해서도 때때로 답답한 경우가 많았지만 우리도 급성장의 시대에 겪었던 일들이고 우리와 가깝고 인구도 많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이 부각되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 그 경험을 한 후로는 제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낭만주의와 세상물정 모르는 신앙인의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것이었는지 절절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간의 말 대로 중국의 위력(?)은 직접 당해 봐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는 기억하기도 싫어서인지 그 도시의 이름조차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베트남의 어느 공항에서 겪은 인산인해 중국인들의 안하무인과 무질서와 이기주의를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기만 합니다. 1.4후퇴만큼은 아니겠지만 전쟁을 겪어 보지 못했던 저와 우리 가족에게는 그 만큼 강력한 트라우마로 그날 밤 공항의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중국의 양식장에서 발생하여 우리나라 해안으로 밀려온 괭생이 모자반에 관한 영상을 보았을 때도 바로 그날 밤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게다가 올해 들어 코로나19의 발원지라는 오명과 홍콩보안법과 관련한 반민주적 행태, 그리고 일대일로 정책이 담고 있는 과도한 자만심으로 인하여 중국에 대한 비호감은 세계적으로 더 커져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세상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고 모든 나라의 구원을 위해 오늘도 일하신다는 것은 알겠는데 니느웨를 향한 요나의 마음이 그 보다 더 현실적으로 크게 와 닿고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찬송가 한 곡을 자주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찬송가가 적어도 제 작은 마음에는 세계 평화를 안겨 주었습니다. 바로 513장 ‘헛된 욕망 길을 가며’입니다. 이곡은 중국의 기철생(Gabriel Chi, 紀哲生, 1922-2009) 목사님이 작사 작곡한 중국 찬송가입니다. 같은 5음계지만 우리나라와 미묘하게 다른 중국적 선율 때문에 처음 부를 때는 살포시 웃음이 날 듯 어색했지만 자장면에 버금갈 정도의 중독성을 발휘하는 찬송가입니다. 그 멜로디와 가사가 지금도 제 뇌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1. 헛된욕망 길을가며 방황하는 사람아
   세상쾌락 따라사니 그생명을 어이해

2. 천하얻고 생명잃어 유익함이 무언가
   세상권세 헛되도다 어서 주께 나오라

3. 오직주를 믿은자가 영생얻을 것이요
   그영혼이 은혜입어 평안함을 누리리

[후렴]예수구원 예수생명 우리사망 이겼다
     영원생명 주셨으니 그사랑이 크도다.

마치 진리를 깨달은 고수가 강호를 떠나 높은 산에 올라 세상을 향해서 일갈하듯,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호연지기 자욱한 중국 선율에 실려 강렬하게 와 닿습니다. 단순하지만 신앙의 길과 복음의 정수가 담겨 있는 참으로 좋은 찬송가입니다. 더불어 이 찬송가를 부르노라면 중국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이 더불어 힘차게 박동하는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고 세상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아시며,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생명 다해 사랑하셨으며 이 사람도 그렇게 사랑하셨는데 제가 뭐라고 잠시의 불편함을 마음에 담아두고 얄팍한 민족주의적 감정에 흔들렸는지 부끄럽습니다.

신앙의 불모지라고만 생각했던 중국에서 예수 구원, 예수 생명이 한 음악가에게 임했습니다.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난 기철생 목사님은 평생 동안 상해와 홍콩 등지에서 교회음악에 헌신하셨습니다. 그분의 인생이 참 귀하고 이렇게 좋은 찬송가를 남겨 주셔서 제 좁은 마음에 세계평화를 안겨주시니 참 고맙기만 합니다.

대학 시절, 우리나라 국문학의 큰 스승이셨던 김윤식 교수님께서 한국문학 강의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선시대 이전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다음과 같았다. 그 시절 우리에게 중국은 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였다.’

어쩌면 지금처럼, 민주정치와 국민의식, 보건과 복지, 첨단기술과 축구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을 압도하며 나라대 나라로서 중국과 마주하고 있었던 적이 우리나라 역사가운데 과연 몇 번이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이 세상 모든 민족과 한 사람 한 사람을 동일하게 사랑하심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언젠가 중국의 인민들이 천안문 광장을 가득 채워서 이 찬송가를 진정 중국답게 힘차게 부를 날이 꼭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https://youtu.be/4OLhDSWzg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