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부터 시작된 긴 연휴, 코로나19로 지쳐있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들이를 나왔다고 한다. 제주엔 발 디딜 틈도 없이 여행객들로 북적거려 사회적 거리 운동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들이 있기도 했다. 모쪼록 더 이상 코로나19의 확산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이 연휴를 틈타 넉넉한 마음으로 밭을 일궜다. 마침 비가 온다는 희소식에 마음은 넉넉하게, 손과 발은 부지런히 놀리는 시간이었다. 올해는 농사를 짓는 자신에게 큰 기쁨이 있었다. 그것은 트랙터 운전을 배운 것이다. 겨울 내내 방치(?)했던 밭에 봄풀들이 고개를 내밀며 기지개를 펴더니 어느 순간 방심한 틈을 타서 우후죽순 아예 풀밭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 밭을 언제 갈 수 있을까 끙끙 앓던 차에 ‘안되겠다. 내가 트랙터 운전을 배울 수 밖에.’ 하며 결심을 하고 소속교회의 목사님의 손을 빌어 운전을 배웠다.

트랙터 운전은 작년 시월,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농기계 교육 때 받은 적이 있었다. 충북 시군에서 온 20명 정도의 교육생들과 함께 배웠는데 모두가 남자였고 나만 여자였다. 남자들 대부분은 40대부터 60대까지 이제 갓 농사를 짓기 시작하는 귀농 혹은 귀촌을 결심한 사람들이었는데, 혼자 여자이다 보니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교육생 중에 트랙터가 있는 농가는 나밖에 없어서 관심을 넘어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안다. 농사를 짓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작은 트랙터 혹은 중고 트랙터라도 있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를. 나는 다행히 내가 속한 교회의 목사님과 교우들과 협력하여 공동으로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다. 아직 몇 년은 더 갚아야 할 빚이지만 농사철만 되면 그 빚은 잠시 땅 속에 묻어두고 부담없이 편하게 너른 밭을 갈 수 있어서 좋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여 거의 6시간을 배우고 나니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집에 가면 내 손이 가는대로 밭을 갈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웬걸? 집에 돌아오니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미루고 미룬 것이 어느덧 해를 넘겼다. 하늘을 찌른 자신감은 땅 속으로 꺼졌다. 사람의 일이란 것이 마음먹을 때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의 의지는 끊임없이 다음으로 미루도록 유혹한다. 괜찮아, 내일도 있잖아.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 다시 배우면 되지. 네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돼.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되며 자신이 못한 것에 대해 합리화하려 하고 정당화시키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니까. 나도 그랬다. 주어진 일이 많으니까 다음에 하자. 내년 3월에 정리하지. 그러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매년 밭을 갈아주던 동생이 자신의 일로 바빠지면서 내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결국 작년에 배웠던 트랙터 운전을 새로 배우게 되었다. 땅 속에 꺼진 자신감을 일으키느라 무진장 애를 썼다.

소속 교회 목사님의 도움을 얻어 하루 시간을 냈다. 하루라기보다는 딱 30분이었다. 시동을 걸고 그 다음 조작이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시는데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 괜찮다. 쉽다고 격려해주시는데도 내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불안감이 컸나보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트랙터 의자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이런, 열쇠는 돌아가는데 시동은 안켜진다. 내가 뭘 잘못 만져 고장낸 것은 아닌가 또 걱정이 앞섰다. 결론은 내 발바닥이 클러치까지 닿지 않아 깊숙이 밟지 못하여 일어난 짧은 다리 소유자의 비애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트랙터 운전이 이뤄졌다. 처음엔 핸드브레이크를 내리지 않고 경사진 곳을 오르다가 시동이 꺼지기도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사래 긴 밭을 룰루랄라 하며 갈 수 있었다. 서너바퀴 돈 다음에 그 사이 운전법을 잊어버릴까봐 두어 시간 후에 혼자서 다시 트랙터 운전을 시도했다. 처음보다 나아진 자신의 운전 모습을 보면서 혼자 흐믓해하고, 대견해하고, 자신감도 회복되었다. 이웃집 아이 엄마가 나와 언니 대단해! 하며 엄지를 척 올려줄 때 내 어깨는 저절로 으쓱했다. 내년엔 그녀의 밭을 갈아주겠다는 약속을 남발하면서 말이다. 페북에 이 기쁜 소식을 올렸더니 많은 이들이 좋아요를 눌러줬다. 또한번 어깨가 으쓱 솟아올랐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밭의 형태를 따라 운전하는 법도 익혀야 하고, 아직 해보지 못한 후진도 해봐야 하고, 짧은 다리로 클러치를 밟는 고생을 해결해야 하고, 도로에서 운전하는 법도 익혀야 하고, 두둑을 만드는 것도 하고 하다못해 트랙터에 이상이 생겼을 때 그 이상 증세도 챙겨야 한다. 갈 길이 아직 멀다. 그래서 올 한해는 나의 집 뒷밭을 트랙터 운전 연습으로 비워둘까도 했는데 요즘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 이유는 좋은 땅을 놀린다는 것은 농부(?)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참외와 맷돌호박을 심어 열매도 얻고 풀도 잡을까 하는 일석이조를 넘보고 있다. 여하튼 올해의 농사 시작은 트랙터 운전이었다. 하나의 산을 넘었으니, 이제 다음은 심어야 할 차례다. 무엇을 심을까? 무엇을 심었을까? 궁금하죠? 그 이야긴 다음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