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B.C. /Before Christ 와 A.D. /Anno Domini (In the year of the Lord)로 나눕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굳이 기원전 혹은 기원후라 칭하지만 예수님 이전과 예수님 이후로 역사를 나눈다는 말입니다. 많은 설교에서 그 사실을 근거로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냐 라고 역설하지만 그런 이유로 예수님이 위대하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낯부끄러운 일입니다. A.D.란 말은 1582년 그레고리 13세의 개혁 때부터 로마의 율리우스력을 대신해서 강제적으로 쓰인 것으로 교황의 권력이 세속적으로 하늘을 찌를 때였기에 쓰일 수 있었던 용어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세상권력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이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세상 높은 곳에 이르는 힘이 아니라 겸손하게 낮아지는 힘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힘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의 참 존재를 발견하는 힘입니다. 자신의 영광을 높이는 힘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회개하고 다시 태어나게 하는 거듭남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부활신앙의 당당함으로 세상을 마주하며 세상과는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능력이 바로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개인 신앙 여정에서는 B.C.와 A.D.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B.C. 는 예수님을 몰랐을 때를 의미하고 A.D.는 ‘내가 주를 처음 만났을 때’ 이후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내가 주를 처음 만났을 때’는 언제였습니까?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외롭고도 쓸쓸한 모습
말없이 홀로 걸어가신 길은 영광을 다 버린 나그네
정녕 그 분이 내 형제 구원했나 나의 영혼도 구원하려나
의심 많은 도마처럼 물었네 내가 주를 처음 만난 날
-김석균 곡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中
이 노래는 1절부터 2절과 3절을 거쳐 가면서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마지막에는 ‘할렐루야 주를 만난 이 기쁨 영광의 찬송을 돌리리!’라는 고백으로 끝납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복음성가중의 한 곡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1절에 등장하는 도마입니다.
갈릴리 마을 어딘가에서 도마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것입니다. 그 후로 3년 동안을 매일 예수님과 동고동락 했습니다. 요한복음 11:16에서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에게 가자고 하실 때,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긴 했지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가자’라고 용기 있게 말하는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도마가 주님이 가시는 길을 물었고, 그의 질문은 너무나도 귀한 말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를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마에게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깊은 고민이 있습니다. 부디, 제가 오늘 그의 오랜 근심을 덜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노래의 가사처럼 도마는 ‘의심 많은 도마’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 믿음이 부족한 도마라는 별명은 지금까지 꼬리표처럼 그의 뒤를 따라다닙니다. 그 이야기는 주일학교 설교의 단골 소재입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교회를 조금이라도 다닌 사람들은 도마하면 ‘의심 많은 도마’를 떠올립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찬양도 그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5절에서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서 주님의 손과 허리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해야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도마는 의심 많은 도마가 아니라 ‘솔직하고 용감한 도마’입니다. 성경을 잘 보면 도마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날의 8일 전으로 가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0절을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주님을 보고서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도마만 첫 만남의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로 ‘의심 많은 도마’라는 낙인이 찍혀 버렸습니다. 오히려 도마는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믿음 있는 척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믿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 믿은 후에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도마는 현대적 신앙인의 모범, 솔직하고 지성적이며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러나 2천년 가까이 도마는 ‘의심 많은 도마’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할까요?
중요한 것은 도마가 자신의 믿음 수준을 솔직히 드러내어 질문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했을 때 우리 주님이 여드레 후에 도마를 직접 찾아와 주셨고 그에게 믿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도마는 그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주님을 진정으로 만난 날은 3년 전 갈릴리에서의 어느 날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부활하신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으로 예수님을 다시 만난 그 날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서는 모습이 좋은 신앙인이 되는 길입니다. 올바른 믿음은 우리 신앙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버겁거나 잘못된 믿음으로 자신을 억누르면 신앙과 삶이 왜곡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선 하나님 앞에 솔직히 서는 것이 좋습니다. 믿음은 솔직함의 다음 단계입니다. 그리고 믿음 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 이후의 삶입니다. 도마는 베드로의 신앙고백보다 더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고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인도로 가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친절하고 인자하신 분입니다. 솔직하다고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솔직한 이야기를 다 들어 주시려 막힌 담을 넘어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의 주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