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히 성금요일(Karfreitag)에 묵상하는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은 주님이 지신 십자가 곁에 보다 생생하고 깊이 있게 머물 수 있게 해 줍니다. 일명 ‘가상칠언(架上七言)’은 네 개의 복음서에 분산 되어 있는데 이를 모아 음악으로 승화시킨 음악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더 깊이 묵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하인리히 쉿츠를 필두로 하여 하이든과 구노, 드보아, 프랑크 등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많은 작곡가들이 이를 음악으로 남겼는데 가사 자체에 스며있는 예술성과 무게감 때문인 듯 저마다 굉장히 훌륭한 작품들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의 영적인 묵상에도 마스크가 씌워진 듯 ‘주님의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 보다는 온갖 모욕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으셨던 ‘고난 중의 주님의 침묵’이 더욱 저를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기준으로 보면, 마태복음 27장 11절에서 빌라도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에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신 말씀을 마지막으로 46절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말씀하시기 까지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만 주목하다가 주님의 침묵으로 관점을 옮기게 되니 십자가의 또 다른 은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주님의 말씀이 기록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침묵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침묵은 ‘온전한 받아들임’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셔도, 빌라도가 재차 물어도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안하셨습니다.(12, 14절) 이제 온 육신으로 십자가를 지시려는 듯 더 이상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이후 예수께서 침묵하시는 그 시간은 그가 육체적으로 고난을 받고 온갖 모욕을 당하는 장면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이리 저리 치이며 모든 조롱과 고난을 다 받아내셨습니다. 27장 26절에서 채찍질 당하신 예수는 로마군인들에게 완전히 건네졌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냉철한 살인 전문가들이었고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넘겨진 이상 예수가 누구인지 여기에 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상상치도 못할 수난을 주님께서는 겪으셨습니다.

하지만, 채찍질로 시작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세워지기 까지 예수께서는 한 마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마치 한 영혼이라도 놓칠 수 없어 우리를 위한 고난을 온 몸으로 다 받아들이려는 처절한 몸부림인 듯 주님은 그 극심한 고통과 모욕 가운데서도 한 마디도 말이 없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고난 중의 침묵’을 깊이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 유명한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를 바라보듯이 십자가의 고난에 앞에 말없이 오래 동안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하게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으로 만들어낸 음악이 있듯이 고난당하시는 주님의 몸을 바라보며 주님의 침묵을 묵상할 수 있는 찬송이 있습니다.

찬송가 145장 ‘오 거룩하신 주님/O Haupt voll Blut und Wunden’입니다. 하슬러(Hans Leo Hassler)가 작곡한 이 곡은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통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바흐는 마태수난곡에서 로마 군병들이 주님을 모욕하고 침 뱉고 희롱하는 장면 다음에 이 찬송을 배치했습니다.

마태수난곡에서는 코랄 원곡의 1절과 2절 가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마치 이젠하임 제단화의 수난 장면을 말없이 오래도록 바라보듯 어떤 신앙적인 해석이나 메시지 없이 수난 당하신 예수의 얼굴만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찬송가의 가사와 사뭇 다른 느낌이지요. 그래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쓰인 가사를 최대한 그대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어떤 말이나 해석 없이 주님의 고난과 주님의 침묵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혹시 부활주일 예배를 준비하느라 벌써 주님의 고난을 건너뛰고 계신 것은 아니신지요? 십자가에 대한 묵상이 깊어질수록 부활의 영광과 기쁨이 커집니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주님의 고난과, 주님의 침묵과, 우리를 위해 상하신 주님의 그 얼굴을 말없이 바라봅시다.

오 피투성이 상처 가득한 그 얼굴
온갖 고통과 모멸을 겪고 계시네
조롱으로 엮어진
가시관 쓰신 그 얼굴
고귀하고 존귀하신 그 얼굴
아름답게 빛나셨던 그 얼굴이
지금 온갖 멸시를 받으시네;
나 당신을 깊이 바라보네!

오 고귀하신 얼굴
놀란 가슴과 두려운 맘으로 바라보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분께서
어찌하여 침 뱉음의 모욕을 당하실수 있을까?
어찌하여 그토록 창백해질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당신의 눈동자를,
그 어떤 빛보다 더 맑고 밝았던 그 눈동자를,
이리도 처참하게 망가뜨려 놨단 말인가?

*음악듣기 : https://youtu.be/kqQtn5-Uzx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