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 벽에는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습니다. 네모난 액자에 표구가 잘 된 수묵 담채 그림이었는데 그 여백에는 시편 42편 1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푸른 평원에 듬성듬성 나무가 자라나 있고 가장 돋보이는 부분에 점박이 꽃사슴이 편하게 누워 ‘아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슴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시냇물 건너 저편 멀리에는 뿔이 멋지게 자란 수사슴과 어린 사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이 있는데 주인공 암사슴과 행복한 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걸 누구나 다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목마른 사슴’이란 복음성가의 아름다운 선율과도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 영혼이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갈급하면 하나님이 언제나 어니서나 맑은 물을 공급해 주시고 그야말로 쉴만한 물가에서 편하게 쉴 수 있고 우리 가정도 바로 저런 사슴가족처럼 행복하고 평안해 질 수 있다는 믿음을 이야기 하고 있지요.
하지만 시편 42편 텍스트 속 사슴의 현실은 그 그림과 매우 다릅니다. 하얀 점박이 꽃사슴은 디즈니 만화나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지 이스라엘이 위치한 팔레스타인 지방의 사슴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광야의 색과 같은 보호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굉장히 볼품없고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사슴은 열이 많아서 물을 자주 먹어야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물도 부족하고 그나마 그 물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사람이 살고 있거나 각종 천적들이 물을 먹으러 온 사슴을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낭만적인 사슴의 이미지와 달리 이스라엘 사슴은 늘 목마르고 살아남는 것조차 버거운 동물이었기에 시인은 지금 자신을 사슴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생존 능력이 강한 염소와 목자가 있는 양들이나 살아남았지 이스라엘 지역의 사슴들은 지금 거의 거의 멸종되었다고 합니다. 복음성가 ‘목마른 사슴’ 보다 바로크의 우울함이 서려 있는 헨델의 ‘샨도스 앤섬’의 6번곡이 이 시편의 원래 이미지에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시편 42편의 사슴은 차라리 우리 주변에 있는 고라니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새벽기도를 위해 이른 새벽에 서울을 출발하여 이천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거의 도착할 무렵 한적한 도로 한복판에 작은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서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차를 멈췄습니다. 놀란 것은 저 만이 아니었습니다. 차가 오면 피해야 하는데 고라니는 갑자기 나타난 제 차에 놀라서 온 몸이 얼어붙었는지 꼼짝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더욱 안쓰러웠던 것은 저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딴 곳을 바라보는 척만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차를 피해서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위험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겁에 질린 채로 멈춰서 딴 곳을 바라보는 척 하는 고라니의 모습이 너무 불쌍했습니다. 고라니들이 왜 로드킬 사고를 많이 당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시편 42편의 기자가 그려 내고 있는 사슴은 결코 그 그림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평안하게 물마시며 누워있는 사슴이 아니었습니다. 생존 자체가 위협 받는 척박한 곳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사는 고라니와 같은 사슴이었습니다.
시편기자는 계속 슬퍼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그는 지금 참다운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불안한 곳을 떠도는 자신의 신세를 슬퍼하고 전 존재적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갈급은 예배를 향한 갈급이었습니다. 시인의 상황은 몇 주째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있지 못하는 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우리 또한 온 교인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이 상황을 시편 기자처럼 상한 마음으로 애통해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시편의 42편의 사슴은 적어도 자유로운 사슴이기에 목이 마를 수 있었고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사슴은 목마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모독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길들여져야 되겠습니까? 그들을 이해하고 품어 주며 상식에 있어서는 세상보다 더 상식을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지만 우리의 온전한 예배를 어찌하든 회복하려 몸부림 쳐야 하지 않을까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적어도 이 상황을 슬퍼하며, 타는 목마름으로 예배를 그리워하며, 하나님께 애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고라니와 달리 시편 기자는 자신의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을 직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얼어붙거나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모든 것을 아울러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의 대 전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눈으로 세상과 사람과 환경만을 보았던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하루 속히 한국교회에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이번 일로 인하여 예배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