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바라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누구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정말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니 표정도 밝아지고 삶도 행복해집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을 주는 한 마리 파랑새는 그렇게 내 안에 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딱 두 부류의 사람들, 생각 보다 자주 조우하면서도 그럴 때마다 얼굴이 찌푸려지며 발걸음 네비게이션을 급히 수정하여 피하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담배를 피며 걸어가는 사람들과 등산로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담배를 피더라도 한군데에서 피게 되면 알아서 피해 갈 수 있을 텐데 보행 중에 피우는 담배, 특히 내 쪽으로 마주 걸어오며 피는 담배연기는 참 난감합니다. 돌아설 수도, 멈출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저의 행동이 그분들을 향한 혐오적인 표현으로 보일까 최대한 불쾌함을 숨긴 뒤 호흡 연습하는 셈 치고 숨을 참은 다음 한참을 지나가서야 숨을 들이킵니다.

 산길을 걸을 때 본인이 좋아 하는 음악을 스피커로 틀어 놓고 다니시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대부분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트로트 음악을 틀어 놓고 다니시는데 가장 최신 음악으로는 김광석의 노래까지 들어봤던 것 같습니다.

 그 누구 보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산길을 걸을 때는 되도록 숲이 주는 고요함과 고독을 더 깊이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주로 비오는 날 산을 찾아갑니다. 또한 숲속에도 수많은 음악 소리가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새소리, 시냇물소리, 꽃들의 노랫소리를 듣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회장에 온 듯한 느낌마저 들곤 합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저만의 성사를 질투하는지 때가 뵈면 저 멀리에서 라벨의 볼레로와 같은 한 줄기 작은 소리가 감지되고 점점 크게, 점점 크게 저를 향해 다가옵니다. 아! 이번에도 어김없이 트로트입니다. 모든 음악 장르를 존중하는 의미로 이 말 만은 쓰지 않으려 했는데 그 상황에서 만큼은 전문 음악용어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뽕짝’ 소리는 점점 커지고 커져서 결국 저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납니다. 그 분들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꼭 한번 씩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아니, 그분들의 쳐다봄을 나도 보았으니 저도 어지간히 불쾌한 마음을 담아 그분들을 째려 보았나봅니다. 그런데 보통 내공이 아닙니다. 그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 분들은 저를 쳐다보며 들끓는 저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평온한 눈빛으로 이런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자네 왔는가? 이 음악 좋지 않은가?”

 그 내공을 버텨 낼 재간이 없습니다. 저를 앞서 가는 분이라면 길을 멈추고 한참을 앉았다 갑니다. 신나는 두 박자 리듬을 타고 가셔서 걷는 속도가 꽤 빠른데다가 다년간의 경험상 경로를 바꾸어 봤자 또 다른 유닛을 만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지요. 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숨은 참을 수 있고 눈은 감을 수 있으며 입은 다물 수 있지만 우리의 귀는 모든 소리를 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만드셨을까 귀여운 불만을 토로해봅니다.

 저의 아름다운 산행을 더 이상 타의에 의해 망치고 싶지 않기에 저도 산길을 걸을 때 이어폰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뽕짝 등산객이 저를 향해 오는 소리가 감지되면 얼른 이어폰을 꼽습니다.

 지난 사순절 기간 중이었습니다. 어느 이른 아침 제주도 한라산 중턱 숲속 길을 홀로 걸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숲의 적막과 새들의 소리와 바람소리, 노루들의 조심스런 발자국 소리, 그리고 저의 차분하고 깊은 숨소리가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숲이 만들어내는 온갖 소리가 마음속으로 잦아들 즈음 어느 새 습관이 되어 이어폰을 귀에 꽂았습니다. 바흐의 칸타타 54번 ‘죄악에 맞서 싸우라/Widerstehe doch der Sünde’의 전주가 들려옵니다. 고동치는 듯한 리듬은 엄습하는 죄악을 상징하고 함께 울리는 세븐코드 불협화음은 죄악 가운데 분투하는 인간의 불안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얹혀 있는 선율은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이 선율은 죄악에 당당히 맞서는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바흐의 음악 중에서 제가 사랑하는 곡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핸드폰의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들어보았습니다.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뽕짝을 들으시는 어르신들의 음악적 내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내게는 음악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소음일 수도 있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지만, 자연 속에서 이어폰을 끼고 듣는 것과 스피커를 통해 듣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귀를 막고 들었던’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는 것 말입니다! 말 그대로 열린 귀로 음악을 들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내,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귀를 항상 열어 놓도록 만드셨는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들의 모든 소리와 노래들은 이미 그 자체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목소리만 내고,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강요하고, 귀를 틀어막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모든 행위들이 그 창조 신앙이 깃든 우주의 하모니를 깨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주적 하모니 회복을 위한 위대한 첫 걸음! 당분간은 산 속에서 뽕짝 스피커 소리가 사라질 리는 없으니, 담배 연기까지는 몰라도 월요일 밤 가요무대를 시청하면서 제게 잠재되어 있는 트로트 감성을 깨워야겠습니다. 트로트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지요. 쉽지는 않겠지만 그 음악에 깃든 평범한 이웃들의 목소리를 사랑의 마음으로 들어보려 합니다. 영화 ‘복면달호’에서 임채무가 차태현에게서 끄집어내고자 애썼던 ‘뽕필’을 제 안에서도 끌어 내 보겠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는 우주적 하모니를 위하여!

*안드레아스 숄이 노래하는 바흐 칸타타 54번 “죄악에 맞서 싸우라”
https://youtu.be/HFcS-vND1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