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주말 내내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진부령도 주룩주룩 내리는 비와 산 정상을 뒤덮은 구름으로 시야가 좁았습니다. 기온도 많이 떨어져 주일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은 모두 긴팔 차림이었습니다. 선선한 날씨 덕에 아직 무더위를 모르고 삽니다.

   지난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이었습니다. 피망 첫 수확을 맞아 한 박스의 피망이 교회로 왔습니다. 교인들은 피망농사로 바빠서 예배 참석을 못하시는 분들이 과반입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예배시간을 기억하고 잠시 들러서 쌈채소와 커피믹스를 놓고 가시는 분도 계시고 자녀들 편에 피망을 보내오는 분도 계셨습니다. 바쁜 농번기에는 쌈채소를 뜯는 것도 큰 일거리인데 보내주신 덕분에 점심 애찬에 신선한 쌈채소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 연로하신 집사님 댁에 들렀는데 뜨거운 햇빛을 받아 흠집이 생긴 피망들이 한 쪽에 모아져 있었습니다. 아직 첫 출하도 하기 전인데 잘 자라던 피망이 하루 이틀 불볕더위로 흠이 생겼으니 돌보는 이들에게는 무척 속상한 일입니다. 먹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피망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기면 상품가치가 없어 출하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그 피망을 요긴하게 활용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읍내나 속초의 지인들 중 피망을 많이 사용하는 피자가게나 밑반찬이 많이 나가는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께 무료로 드린다고 합니다. 사실 뜨거운 태양에 흠이 생긴 것을 제외하면 막 딴 싱싱하고 맛 좋은 피망입니다. 농사를 짓는 교인들을 지켜보면 이렇게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도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교인들의 굳건한 믿음이야말로 제가 보고 배워야 할 좋은 신앙의 유산입니다.

   얼마 전 읍내에서 진부령으로 올라오는 길에 큰 트럭이 넘어져서 도로가 통제된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트럭이 무엇을 싣고 가다가 넘어 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장시간 교통통제를 한 것으로 보아 적재물이 꽤 많았을 것이라고 예상이 되었습니다. 요즈음 속초 고성 지역에 개발이 한창이어서 산을 깎아낸 흙이나 돌을 실어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출근할 때는 통제가 없었고 오전에 볼일을 보러 읍내로 내려온 남편에게서 ‘도로를 통제하고 있으니 퇴근 때까지 통제가 풀리지 않으면 우회해서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미 도로 통제가 끝났을 것이라 생각하고 퇴근길에 오른 저는 진부령으로 올라가는 입구부터 경찰의 교통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속초로 돌아서 가라고 저지하는 경찰에게 “저는 마을 사람이고 우회도로를 알고 있으니 그리로 가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경찰은 길을 열어주었고 저는 일단 진부령으로 올라가는 도로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그 ‘우회도로’라는 마을 농로를 알지 못했습니다. 황급히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길을 물어본 뒤 바짝 긴장한 상태로 농로 입구를 찾았습니다.

   남편이 설명해 준 농로 입구를 찾아 들어서자 그곳에도 경찰이 서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를 물어본 후 비포장 1차선 도로이니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운전을 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이 바로 비킬 곳이 없는 좁은 도로를 달리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를 만나는 것인데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설 수도 없는 형편이라 논을 양 옆으로 한 농로에 차를 올렸습니다. 가슴은 조마조마하고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혹시 다시 국도로 나갈 곳을 지나쳐 버릴까 하여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운전을 했습니다. 맞은편에서 트럭 한 대가 오긴 했지만 그 길에 익숙한 분이라 먼저 차를 비켜 세워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무사히 농로를 빠져나와 다시 국도로 올라서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우회도로를 익혔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먼저 가 본 사람의 인도를 따라서 가면 어렵더라도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그네요 처음 길을 걷는 이들입니다. 깨어나 보면 꿈처럼 이 생을 살고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두컴컴해지는 비포장 농로를 달리는 것 같이 두려움이 몰려올 때, 그 모든 길이 예수님이 먼저 가신 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오늘 하루, 좁은 길을 달리는 것을 두려워 말고 목적지를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