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집을 나서야 만날 수 있는 갯가 식물들은 생태까지 남다르니 들이나 산에서 만나는 꽃들과는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집니다. 어느 해인지 갯메꽃을 만나러 먼 길을 달리는 동안 장대비가 쏟아졌고 도착해서는 비는 그쳤으나 강한 빗줄기에 너덜너덜 해진 꽃잎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날, 고개 누인 갯메꽃이 주는 차분한 느낌은 햇살아래 화려하게 모여 있는 무리들보다 더 진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저 나팔꽃 비슷한 메꽃이겠거니 여기던 이들도 바닷가 모래위에서 마주치면 무언가 다르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잎이 두텁고 반질반질 거리며 하트모양으로 올망졸망 달려있습니다. 나팔꽃이 한해살이이고 메꽃은 여러해살이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일까요. 밥을 ‘메’라고 불렀건 것을 안다면 그 뿌리가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가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갯’이 붙어있으니 사는 곳은 당연히 바닷가이지요. 그렇다고 전국 바닷가는 아닙니다. 온대와 아열대에 속하는 중부이남에서나 볼 수 있어요. 갑자기 갈 수 없는 우리의 반쪽, 북한에는 어떤 꽃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태*평화공원 이야기에 귀가 솔깃합니다. 파도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 갯메꽃처럼요. 오늘은 68년 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날이네요. 오랜 시간이 지나 들꽃 같은 잔잔한 평화가 우리 곁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