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산나물들을 채취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마을에서는 곰취 수확이 한창이라 장로님께서 곰취를 한 상자를 교회로 가져다 주셨습니다. 주일 예배 후에는 “지금 안 따면 다른 사람이 다 따가요.”라는 권사님의 안내에 따라 남편과 제가 두릅을 채취하기 위해서 산을 올랐습니다. 작년에는 두릅이 너무 높이 달려있어 채취가 어려웠는데 “두릅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따세요. 두릅은 뿌리로 번지기 때문에 위를 잘라도 옆으로 다시 나요.”라고 알려주시는 성도님 덕에 단시간에 비교적 많은 두릅을 채취할 수 있었습니다. 벌써 다른 사람들이 두릅을 따기 위해서 두릅나무를 꺾어놓은 흔적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습니다. 채취한 첫 두릅은 살짝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었습니다. 향긋한 두릅 내음이 입안에 가득하니, 하나님 이 곳으로 저희 가족을 보내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했습니다.

   4월 15일 주일날 2층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1층으로 내려오니 4명의 아이들이 교회 마당에서 며칠은 산길을 헤맨 것 같아 보이는 골든리트리버 한 마리와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  몸집이 워낙 큰 종이기는 하지만 아랫마을 목사님 댁에도 골든리트리버가 있어서 자주 접해보았기에 아이들이 두려움 없이 다가간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이 “행복아(그 사이에 아이들은 강아지의 이름도 정했습니다.)”를 연발하며 골든리트리버와 함께 뛰어다녔습니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교우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저희 집 두 아이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행복이 어떻게 해요? 집이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키우면 안돼요?”하고 물었습니다. 유기견 같기는 하지만 주인이 있을지도 모르니 마을에 물어보자고 제가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고, 마을을 돌면서 주인을 찾아보았지만 마을에서 행복이를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일단은 배가 고파 보이는 행복이를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분교에 들러서 냠냠이(분교에서 기르는 진돗개)의 사료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지난주는 저희 가족이 모두 함께 5일간 집을 비우게 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애가 타는 아이들은 행복이가 먹을 사료와 물을 한 가득 담아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습니다.

   집을 떠나서도 “엄마, 행복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우리 집에 있을까요? 행복이가 너무 불쌍해요. 돌아다니면 위험한데.”하면서 아이들의 행복이 걱정은 끝이 없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금요일에 남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행복이가 인근 군부대로 들어가서 보호하고 있는데 저희 교회 강아지인지 물어보는 전화였습니다. 유기견이기는 하지만 모르는 강아지라고 하기는 애매했습니다. 결국 남편은 토요일에 부대 초소 앞으로 행복이를 데리고 나오면 찾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3시에 큰아이와 제가 부대 초소 앞으로 행복이를 데리러 나갔습니다. 행복이는 군인 간부의 차를 타고 초소 앞에 나와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행복이는 저희를 보자마자 차가 오는 위험한 도로를 건너서 큰아이 곁으로 달려왔습니다. 골든리트리버가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이기는 하지만 단 하루를 아이들과 보냈을 뿐인데 마치 오랜 주인을 만난 것처럼 좋아하는 것을 보니 신기했습니다. 일단 집으로 데려왔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쌀밥을 물에 말아서 놓아주고 탁자에 이불을 덮어 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행복이는 그렇게 다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큰아이는 행복이 옆에 의자를 펴고 3시간 동안 책을 읽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행복이가 밤사이 어딘가로 갈까봐 어설픈 목줄을 해서 묶어두었습니다. 주일 아침에 마당에 나가보니 행복이는 목줄을 풀고 전날 큰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앉아 있었던 자리에 있었습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서 졸라대던 아이들은 ‘행복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를 키우며 드는 사료 값과 주사비 등은 큰아이가 1/3, 작은아이가 1/3, 그리고 “엄마가 1/3만 내주세요.”하고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흥정을 했습니다. 저는 내심 ‘교회 안에서는 키울 수 없지만 마당에서 키우는 것은 할 수 있겠지.’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한 번 입양을 하고 나면 파양하지 못하고 계속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것을 해 낼 수 있을까가 걱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유기견 보호소에 신고를 하고 혹시 몸에 칩이 있는지 먼저 확인을 해 본 후, 주인이 없고 찾는 이도 없다면 행복이는 저희가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지어놓은 ‘행복이’라는 이름도 친근하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편과 제 말에도 잘 반응하니 저도 왠지 모르게 행복해집니다. 어느 영화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은 위로가 된다.”라고 했던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행복이도 저희 가족에게 위로가 되고 저희도 행복이에게 위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살아있는 생명을 기르는 것의 책임감도 무겁게 다가오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은 지금껏 부모의 허락을 얻지 못해 강아지를 기르지 못했지만, 허락을 구하지 않고 찾아든 행복이로 인해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찾아든 생명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우연히 찾아든 ‘행복’이 진부령 정상의 저희 가족을 더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계획과 계산대로 살아지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연의 옷을 입고 때때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