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령은 두 주째 구름속입니다. 오전에 해가 난다 싶어 빨래를 하면 오후엔 어김없이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립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비가 많이 내리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제는 비가 그쳐야 무를 비롯한 채소 모종을 심을 수 있다고 마을 주민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지난주간 저희 집에 친정 언니들과 조카들이 휴가를 왔습니다. 첫날은 수영장, 이후 이틀은 바닷가, 마지막 날은 집에서 물놀이 풀을 만들어서 놀았습니다. 반짝 해가 난 날에는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맞으며 물총놀이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지칠 줄을 모르고 노는데 어른들만 얼굴이 야위어 갔습니다. 집은 벌집처럼 정리가 되지 않고 큰언니는 가족들의 삼시세끼 식사와 간식을 챙기느라 쉴 틈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틀은 휴가를 받았지만 나머지 날들은 출근을 해야 했고, 작은언니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9개월 된 셋째를 돌보았으며, 남편은 대가족의 이동을 책임지는 운전사가 되어주었습니다.
저희 세 자매의 꿈은 나이가 들면 한 곳에 집을 세 채 지어서 이웃하며 함께 사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서로 의지하면서 노년을 보내고 싶습니다. 학창시절에도 각자 친구들이 있고 자기 생활에 바빴지만 옷을 산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힘든 일이 있다든지 할 때는 서로의 가장 편안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 동행했습니다. 물론 싸우기도 많이 했습니다. 어린 시절 싸우다가 아버지께 혼날 때는 누가 잘못을 하든지 세 명이 함께 혼이 났습니다. 차별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쓰신 방법이었는데, 종아리나 손바닥을 체벌할 때 항상 큰언니가 제일 먼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혼이 나는 저는 큰언니가 혼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울기 시작해서 제 차례가 되면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더 이상 체벌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가 되곤 했습니다. 종아리를 맞은 날은 세 자매가 밤에 서로의 종아리에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면서 울었습니다. 그때부터 의리가 싹튼 것이 아닌가 하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남편은 언니들과 저를 ‘의리의 자매들’이라고 부릅니다.
어린 시절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함께 놀면 귀찮은 저를 두고 나가기 위해 첩보전처럼 밥을 먹고 사라진 날들이 생각납니다. 부산에 있는 큰집에 세자매가 놀러갔다가 큰집 언니와 싸우고 ‘우리집에 간다.’하고 나와서는 길을 잃고 경찰 손에 이끌려 큰집으로 돌아간 기억도 납니다. 큰언니가 업어준다며 개울 다리 난간에 저를 세웠는데 그만 제가 눈을 감고 올라서서 개울로 떨어졌습니다. 아버지가 알면 혼날까봐 둘이서 쉬쉬하다가 제가 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하품을 하는 통에 턱 밑에 난 상처가 들통이 나서 큰언니가 심하게 야단을 맞은 일도 있었습니다.
해마다 모이는 자매들의 여름휴가는 끝이 났습니다. 심하게 피곤하지만 그만큼 즐거운 추억이 될 휴가를 일 년에 한 번씩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울고 웃던 어린 시절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떠오르지만 실은 이미 30년도 더 된 일들입니다. 추억할 것이 많은 가족들이 있어서 세상살이 지치고 고단할 때 힘이 됩니다. 슬퍼할 일이 있을 때 위로해 주고,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저보다 더 격하게 성토해 주고, 좋은 일이 있을 때 함께 할 미래가 더 밝아졌다고 생각해 주는 의리의 자매들은 삶의 선물입니다.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는 ‘쥐 공원 실험’에서 폐쇄된 좁은 공간에 있는 쥐는 마약과 물 중에 마약을 선택하지만 쾌적한 환경에서 동료 쥐들과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에 있는 쥐는 마약이 있어도 섭취하지 않고 물을 선택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타인과의 관계가 풍부하고 만족스러우며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스무 살이 넘으면서 고향을 떠났고 자주 이사를 다니게 되어 어린 시절의 친구는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게 되면 곧 또 이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찾아와 주는 언니들이 있고 함께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원하면 만날 수 있고 어디에 있든지 찾아갈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광복 72주년 기념일을 맞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삶의 선물이었던 가족을 잃어야했던 독립유공자의 자녀들과 엄혹한 시절에 멀리 사할린과 일본에 유배되어 돌아오지 못한 이들, 남북으로 갈라져 아직도 가족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들의 희생과 용기에 감사하며 저도 이 시대의 ‘잃어버린 자들’의 선한 이웃이 되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