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결혼식 주례를 서게 된 일이 있었다. 결혼식이 있기 몇 달 전 내게 주례를 부탁한다는 제자에게 나는 먼저 내 걱정을 전했었다. 아니, 신랑과 신부 측 교회에도 목사님들이 계실 텐데, 양측 부모님들이 다니는 교회도 그렇고, 내가 해도 괜찮은 건가? 그 말에 제자는 그런 건 걱정 마시라고, 모든 순서는 다 신랑 신부 당사자가 알아서 결정한다고 대답했다. 신랑 신부 입장도 동시입장으로 함께 걸어 들어오는 걸로 정했다고도 했다. 이렇게 당사자들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모든 결혼식 비용을 결혼 당사자들이 부담했던 것이었다. 그러기에 정말로 주례를 맡기고 싶은 사람에게 주례를 맡기고 순서도 자신들의 마음에 따라 형편에 맞게 결정하는 그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막 10:7-8)라는 성경의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정신적으로 부모를 떠나 독립된 어른으로 함께 맺어지는 진정한 결혼의 시작이구나 싶었던 결혼식, 그들이 설계했던 결혼식은 작고 아름답고 은혜로웠다.

자유란 언제나 희생과 포기의 대가를 치른 만큼,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만 주어진다. 위의 예처럼 가장 가깝게는 부모로부터의 자유가 그렇다. 자녀로서 삶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은 언제나 부모로부터 받고 있는 금전적 혜택의 포기 정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자유의 성격은 부모로부터의 자유뿐 아니라 모든 자유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자유는 공짜가 아닐 뿐더러 언제나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자유는 얻는 데에만 대가를 치르는 것도 아니다. 자유는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도 지속적이며 상당한 유지비를 요구한다.

자유로운 인간은 매 상황마다 스스로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선택을 남에게 미루고자 한다. 일상의 예로 함께 식사 메뉴를 정할 때 “아무거나.”라는 말은 일견 자신의 주장을 낮추고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귀찮고 어려운 결정을 상대방에게 넘겨버리는 비겁한 말이다. 아무리 사소한 결정이라도 결정은 이렇게 힘겹고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그런데 자유는 이 결정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고 바로 나 스스로가 내리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니 이 자유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매우 번거롭고 힘겨운 대가를 치러야만 겨우 유지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어쩌면 자유는 얻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이려나? 이집트에서는 우리가 참 좋았었는데.”(민 11:18) 과연 노예들이 고기를 즐기면서 살았을까? 그럴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은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있지도 않은 환상을 떠올리며 자신들의 자유를 포기하려고 했다. 거의 죽음과 맞바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대가를 치르고 얻은 자유이건만, 이 자유를 유지하기에 지친 백성들은 다시 노예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킨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바로 이 사실에 대한 신랄한 분석이다. 인간은 실제로는 자유를 그다지 원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자유란 결정의 짐을 져야 하는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교체와 함께 청문회를 비롯한 첨예한 정치 이슈들이 미디어를 달구는 시절, 우리는 이 자유의 성격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을 선출하고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더 이상 정치에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판단과 결정을 미루고 넘겨버리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것은 거의 자유의 포기와도 같지 않을까? 대의민주주의의란 내게 주어진 결정의 자유를 대표자에게 완전히 넘겨버리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들이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신경 쓰고 감시하는 일이다. 마치 자유의 유지비처럼 이것은 귀찮고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하지만 정치에서든, 신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우리는 이 귀찮은 유지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비싼 값을 치르고 선사해 주신 자유를 버리고 다시 노예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