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달에 결혼할 권사님 아들이 스몰웨딩을 한다며 주례목사 없이 결혼을 한다고 하였다. 부모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인 내게 양해를 구한다며 기도만 해달라는 것이다. 아내는 그런 결혼을 보지 못하였다며, 아무리 스몰웨딩이라도 어떻게 결혼서약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결혼이 가능하냐고 끌탕이었다. 그래도 부부가 권사인 가정이고 결혼할 청년도 어릴 적부터 믿음을 가지고 생활했으며 지금도 직장이 있는 대전 근처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더구나 결혼할 두 사람은 교회에서 만난 커플이란다.
요 몇 년 교인 가정의 자녀결혼 때 가끔 스몰웨딩을 한다며 ‘가족끼리 모였어요,’ ‘양가 아버지들의 덕담으로 주례사를 대신했어요,’ ‘신랑이 축가를 직접 했답니다.’ 하는 얘기들을 듣고 놀랐는데, 이번에는 미리 스몰웨딩을 목사에게 허락을 받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이 문제 때문에 아들하고 심하게 다투었다면서 권사님은 난감해 하면서도 교회에서는 두 번 정도 광고를 하여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갈 수 있었으면 하였다. 일정을 보니 두 주간 외국 가는 기간에 겹쳐서 깊이 양해를 구하고 미리 축복의 기도를 하겠다고 하였다. 사랑하는 권사님 가정인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도대체 오늘날 우리에게 결혼은 무엇인가?
젊은 시절 본회퍼의 일생에 감동해서 읽었던 글을 기억한다. 히틀러 암살음모에 가담했던 본회퍼는 미리 발각되어 체포되는 바람에 옥중에서 사랑하는 조카 레나테의 결혼식 날짜를 지나게 된다. 젊은 나이에 유명한 신학자요 목사로 크게 명성을 떨쳤던 본회퍼는 조카 결혼식에 설교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그의 감시병을 통하여 미리 쓴 설교문을 결혼 선물로 보내준다. 다음은 이 설교의 일부인데, 나는 여기 나와 있는 본회퍼의 결혼관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은(신랑 신부) 당신들의 사랑 속에서 오직 이 세상에 있는 두 사람 자신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속에서는 당신들은 각 세대를 연결해주는 쇠사슬의 한 고리가 됩니다. … 당신들은 당신들의 사랑 속에서 오직 당신 자신들의 하늘밖에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속에서는 당신들은 이 세상과 인류에 대한 책임의 자리에 놓여지게 됩니다. 당신들의 사랑은 당신 자신의 개인적인 소유물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개인적인 것 이상입니다.” 정말 그렇다, 여기서 우리는 연애와 결혼의 차이점을 본다.
“결혼은 하나의 지위이며 직분입니다. 왕을 만들어 주는 것이 단순한 지배 의지가 아니라 왕관(지위와 권위)인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을 하나님과 인간의 눈앞에서 결합시켜 주는 것은 단순히 당신들 서로간의 사랑이 아니라 결혼 그 자체입니다. 당신들이 처음에 결혼반지를 서로 주었다가 다시 목사님의 손으로부터 그 반지를 두 번째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은 당신들에게서 오는 것이지만, 결혼은 천상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결혼을 지탱해주는 것은 당신들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결혼이 당신들의 사랑을 지탱해줍니다.”
물론 나는 너무 허례허식으로 가득 차 있는 결혼예식을 거부한다. 정작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신부는 소외되고 진정한 결혼의 의미는 살리지 못한 채 시끄럽고 복잡한 결혼식,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진정으로 두 사람의 결혼과 예식에 집중하지 못하고 축의금 흰 봉투를 들고 가서 결혼식은 잠깐 체면치레로 보고 한 차례의 화려한 뷔페식당의 점심으로 끝나고 마는 것은 역겹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결혼식이 예배로서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서약도 없고 말씀도 없이 그냥 사람들끼리 만나서 인사하는 자리로 끝나버려서야 되겠는가? 분명히 결혼은 그 이상의 것이 있는, 인생의 대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결혼식, 특히 스몰웨딩 풍조에 대해서는,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경종을 울려주고 싶다. 결혼의 위기, 더 나아가 가정의 위기는 결혼식의 위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지금의 결혼식은 그 중심과 방향을 잃어버렸다. “젊은이들이여, 방황하는 연애와 결혼식에서 돌아와, 하늘의 아버지 앞에서 겸손하게 당신들의 사랑의 열매로서 결혼을 선물로 받으라!” * [박신진 목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