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우상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상징과 우상을 혼동해서는 안 되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런 혼동을 피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 글에서는 상징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아가서 신학자들이 왜 종교적 상징을 중시하는지 그리고 왜 종교적 언어를 상징의 언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모든 상징에는 어느 사물이 지닌 일차적인 의미와 그 사물을 통해서 전달되는 이차적인 의미의 두 가지 층이 있다. 그런데 상징에서 중요한 것은 이차적인 의미다. 예를 들면, 십자가는 일차적으로 나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열십자 모양의 물건을 가리키기도 하도 옛날에 서양에서 죄인들을 매달아 죽인 십자모양의 형틀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 십자가는 단순히 열십자 모양의 물건이나 형틀만을 가리키지 않고 바로 예수님의 수난을 가리킨다. 이 수난은 단순한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고 그 사건에 포함된 죄에 빠진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구속을 의미한다.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수난과 구속이 바로 이차적인 의미, 즉 십자가의 상징적 의미다.

우리는 보통 여기서 말하는 일차적인 의미를 외연적인 의미하고 말하는데, 외연적인 의미는 우리가 어느 단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을 때 거기에 나와 있는 의미를 가리킨다. 장미의 사전적 의미는 ‘장미과의 낙엽 관목으로 높이는 2-3m, 가시가 많으며 오뉴월에 여러 가지 꽃이 핌’이다. 이차적인 의미를 내포적 의미라고 하는데, 어떤 단어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말한다. 장미라고 하면, 가장 먼저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그리고 붉은 장미라고 하면 열정적인 여인의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상징에서는 이 내포적인 의미를 중시한다.

비유와 상징에서는 모두 내포적인 의미를 중시하지만 서로 다르다. ‘당신은 장미와 같습니다’ 혹은 ‘당신은 장미입니다’라고 말하는 비유적 표현에서 앞의 것을 직유라고 하고 뒤의 것을 은유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도 장미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중시한다. 그런데 비유에서는 두 가지 사물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서 직접 비교하지만, 상징은 비교하지 않고 물이나 십자가 같은 한 사물에 내포된 의미를 가리킨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할 때, 이때의 물은 깨끗하게 씻음과 생명을 상징한다.

그리고 상징은 기호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두 가지는 다르다. 교통신호로서 파란 불은 멈춤을 의미하는 빨간 불과 대조되어서 가라는 의미를 지니는 하나의 기호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에 의해 임의적으로 정한 규칙이어서 정하기 나름이다. 파란 불 대신에 자주색 불을 가라는 신호로 쓸 수도 있다. 그리고 기호는 단 하나의 의미만을 나타낸다.

그러나 상징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상징은 일종의 기호지만, 보통의 기호가 의미하는 것 외에 어떤 다른 것을 지시함으로써 확장된 의미를 가진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수난만을 가리키지 않고 예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구속을 나타낸다. 그리고 상징은 집단에 의해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상징도 문화의 차이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는 있지만, 기호와 달리 상징은 임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비유나 기호에는 감정적 반응이 수반되지 않지만 상징은 다르다. 비유에서는 어느 상(image)을 통해서 전달되는 생생한 시각적인 효과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서 은유에서 ‘그녀의 입술은 앵두 같았어요’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빨간 앵두를 떠올려서 단순히 그 입술과 앵두를 일치시킨다. 그리고 교통신호에서 파란 불은 가라는 표시일 뿐 그것에 다른 감정적이거나 정신적인 반응이 전혀 수반되지 않는다.

그러나 상징은 감정적이거나 정신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태극기를 들고 탄핵반대 시위에 참가하는 경우 상징으로서의 태극기는 단순히 한국을 가리키는 기호에 그치지 않고 한국에 대한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십자가는 교인들에게 단순히 예수님의 수난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에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그 십자가 앞에 엎드리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비유와 달리 상징에는 역동적인 힘이 있다.

종교 현상학자 엘리아데에 따르면, 상징은 객관적인 세계를 단순히 묘사하지 않고 그보다 더 깊고 근원적인 어떤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물은 단순히 음료수만을 가리키지 않고 일체의 존재 가능성의 원천이자 저장고다. 물의 상징은 생명과 죽음을 포함한다. 물은 분해하고 형태를 파괴하지만 일면 죄를 씻어서 정화하고 재생과 관계한다. 구약에서처럼 물은 홍수로 세상이 멸망되기도 하지만, 세례식에서 물은 죄 씻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세례식에서 물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재생을 의미한다. 이렇게 상징은 인간의 종교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종교적 인간은 상징을 통해서 영적인 세계, 형이상학적 세계를 파악한다. 상징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특수한 상황을 벗어나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향해 자신을 열게 된다. 초생달이 보름달이 되고 그 달이 그믐에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탄생과 성숙과 죽음의 상징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인은 달의 상징에서 삶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종교적 인간은 상징을 통해서 우주적인 신비에 접근할 수 있다.

그리고 상징은 여러 가지 의미를 동시에 표현하고 그 다의성 안에 역설적인 상황이 포함된다. 십자가는 죽음, 실패, 희생, 사랑, 구속, 은혜, 부활, 승리를 상징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 가운데에는 죽음과 부활, 실패와 승리 같은 역설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상징이 표현하는 역설을 통해서 우리는 상반되는 사실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는 신비를 파악하게 된다.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 죄인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칭의, 죽어야 산다는 것 등은 모두 역설적 상황이다. 이러한 역설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적 상징은 달리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는 인간의 실재와 그 상황을 가리킨다. 상징을 이해하는 사람은 객관적인 세계를 향하여 스스로를 열어 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서 보편적인 우주의 신비를 터득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 결국 상징적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을 보는 영의 눈을 뜨게 되고 그 실재에 도달할 수 있다. 신학자들이 종교적 언어를 상징의 언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