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불행했던 과거 36년 동안 정말이지 못된 짓을 참으로 많이 하여 그로 인해 우리가 받은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는데, 그중에서 하나만 골라 말하라면 필자는 우리의 민족정신말살을 들고 싶다. 국토의 지맥을 자름으로 민족정기를 끊겠다며 산줄기 곳곳에 쇠말뚝을 박은 것이야 저희네 정신문화의 미개성을 노정한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언어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성과 이름까지 강탈했으니 저들의 악행이 어떠했다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도 너끈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저들은 우리의 우수성까지 헐뜯으며 자기네의 만행을 합리화하려 했다. 자기네는 아무리해도 우리말을 흉내조차 내기가 힘이 드는데, 우리는 저희 말에 너무 쉽게 능숙해지는 것을 보고 조선은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기에 딱 어울린다 했다. ‘조선인’의 저희 말은 ‘쵸센징(朝鮮人)’인데, 이를 비하하는 의미로 약(略)해서 ‘센징(鮮人)’이라 하여 “센징와 쇼가나이(鮮人はしょうがない; 조선 놈은 어쩔 수 없다)”라고 모욕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저들의 말에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이 그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붕당이나 당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조선시대의 그것은 너무 심했다. 세력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더니, 동인이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고, 북인은 또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져 싸움을 벌였다. 그런가 하면 서인도 뒤질세라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다투었으니 그야말로 진흙탕싸움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싸움이 되었다. 이 또한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나 다 있는 것이고, 나라와 국민보다 당리당략에 따라 설치는 것도 비슷하지만 우리의 정당들은 그게 심해도 너무 심한 것 같다.

사실 보수인 우와 진보인 좌는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모두 소중한 가치이다. 둘 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사상인데 그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보수는 기존의 것을 지키며 점진적이고도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 하는 반면, 진보는 기존의 잘못을 타파하여 보다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가며 좀 더 빠른 발전을 추구하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자는 점진적 발전에 방점이 찍힌다면 후자는 빠른 발전에 역점이 두어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보수도 진정한 진보도 없다는 것이 국민 모두의 거의 일치된 견해인 것 같다. 그렇다고 양자가 똑같다는 건 아니다. 정도에 차이가 있는데, 국가발전이나 성장에 가장 큰 적은 양비론이나 양시론이라는 사실이 그걸 무엇보다도 잘 대변해 준다. 오십보백보요, 그놈이 그놈라고들 하는데, 오십보는 백보의 2분의1밖에 안되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똑같을 수는 결코 없는 일이다.

필자는 보수보다 진보 쪽에 조금은 더 점수를 주는 입장이다. 보수 쪽 사람들은 걸핏하면 상대방을 종북 아니면 좌빨이라 매도하며 목소리를 높이곤 하는데, 그 대상이 국민의 50%를 상회하기도 한다. 아니 그 이상인 경우도 없지 않다. 국민 다대수의 지지를 받은 이번의 촛불집회를 보고도 그랬으니 누구도 아니라고는 못할 것이다.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진즉 그리고 자연스럽게 적화되고 말았어야 할 것이다.

진보는 6.25의 혼란기에 북의 공산당 쪽이었던 좌익과 같은 게 아니다. 지금의 진보 즉 좌파는 보수 쪽 사람들이 말하는 종북이나 좌빨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고한 국민들을 살상했다는 면에서는 그때의 우익도 좌익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나, 그 잔인성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좌익이 우익을 훨씬 능가했다. 그들은 실탄이 아깝다며 죽창을 살상무기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과 지금의 진보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번의 태극기 집회에 그 죽창이 태극기의 깃대로 등장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이러니라고 밖에는 이해할 방법이 따로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보수여야 할까, 진보여야 할까. 우문 중의 우문이다. 크리스천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좌도 우도 아니다. 굳이 어느 쪽인가의 진영을 들어 말을 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하나님의 진영이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보수가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우면 우리의 마음은 그쪽으로 기울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 진보에 가까워도 마찬가지이다. 좌든 우든 아니면 중도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진리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쪽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하나님은 약자의 편도 강자의 편도 아니다. 바른 사람들의 편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길은 강자보다 약자에게 머무는 일이 많고, 강자의 아픔보다 약자의 그것에 더 아파하시며 안타까워하신다.

예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25:40)이라 하시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45)이라 하셨다. 우리가 어느 쪽에 서야 하고 또 힘을 실어 주어야 할지를 무엇이 이보다 더 확실하게 말해 주겠는가. 재벌을 포함한 사회적 강자보다 사회적 소외계층에 가까운 쪽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는 어떤 진영에든 직접 발을 들여 놓을 필요까지는 없다 해도 조금이라도 나은 쪽에 힘만은 실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 진영의 사람으로 굳어져서는 안 된다. 그리되면 진영논리에 매몰되기 쉽기 때문이다. 자기가 서 있는 진영의 주장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해야 하고, 다른 진영의 것이라 할지라도 잘된 것은 잘되었다 해야 한다. 자기 진영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르지 못한 것은 바르지 못하다 해야 하고, 다른 진영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르다면 지지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자신이 선 진영상의 위치가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우리의 위치도 바르지 못한 쪽에서 바른 쪽으로 옮겨 가야 한다. 진영의 지도급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못을 고쳐 갈 수 있지만, 우리로선 그럴만한 힘이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진영을 향해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쪽으로 옮겨가는 수밖에 없다.

필자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은, 크리스천은 하나님나라에 힘을 기울여야지 정치에 마음을 쓰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하나님께서 돌리시는 것이지 사람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니 정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구상의 그 어디라 할지라도 사람이 사는 데라면 정치가 기능하지 않는 곳은 없다. 깊은 산속 암자의 수도승조차도 크건 작건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도 크리스천이 정치엔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것은 영적 양식인 말씀만으로 족하지 음식물은 따로 섭취할 필요가 없다 하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그 목사님께서는 시위나 집회 같은 것에도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일이 많다. 불순한 동기를 가진 자들의 불법행위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런 걸로는, 그러니까 시위나 집회 같은 것으로는 몇 100, 몇 1000년이 가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군사정권은 독재에 항거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고, 거기에 등장한 것이 화염병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 땅에 민주화를 이만큼이라도 정착케 한 것이다. 민주화가 그렇게 진전되어 옴에 따라 화염병은 촛불로 바뀌었고, 그 촛불은 이번처럼 연인원이 1천5백만을 넘겼는데도 연행자 제로라는 세계적인 기록을 남겼다. 시위나 집회라기보다 문화축제와 같은 평화로움과 경찰 버스에 붙인 스티커를 떼는 것 같은 배려의 장이었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진전시켜 가시지만, 그분께서는 그 일을 인간들에게 맡겨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나라가 됐건 그 국민들이 행복을 누리기 바라시지만, 그 일을 인간들 스스로가 하도록 하신다. 그러니 우리도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데, 그게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기도 하고, 보다 바른 진영에 힘을 실어 주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는 앞에서 보수보다 진보 쪽에 점수를 조금은 더 주는 입장이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자보다 후자가 조금일지라도 더 바르고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보라. 물론 촛불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박․최의 국정농단을 보다 못한 사람들이 국기를 바로잡고자 들고 나왔다. 반면 태극기집회는 친박을 주축으로 하는 사람들의 촛불에 대한 맞불로, 진보 쪽 사람이 그에 참석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촛불집회는 방금 언급한 바와 같은 사례 등으로 세계적인 부러움을 사 국격을 높이는 데에 기여했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는 것은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하는 정치인도 있는데, 정말 그런가. 대통령이라 해서 죄를 지어도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마하고 마는 것이 국격을 손상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법과 원칙에 따라 죗값을 묻는 것이 그런가.

요즘 자칭 보수라고 하는, 국민 전체의 몇 분의 일도 안 되는 친박 세력들이 하는 언행들을 보라. 조폭영화에서나 봄직한 일들, 역사책이나 사극 드라마에서나 접할 법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역사를 조선시대에라도 후퇴시키자는 것인가. 나와 내 아들딸, 손자손녀들이 살고 있고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갈 나라인데 말이다.

지금이야 말로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진영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내려놓고 나라와 민족과 그 미래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경정신에 따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데,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