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근래 2주간 틈틈이 읽었습니다. 인간의 악에 대해서 저자가 연구한 내용을 서술해 놓은 책인데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었습니다. 사례를 들어 악의 근원을 파헤치고 그것을 집단의 악으로 연결시켜 나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악을 이기는 힘은 ‘개인의 변화’를 통해서만 나온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어 빛이 되어줄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 세월호가 인양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세월호 인양을 시작한 날 남편은 종일 뉴스를 들었고 퇴근한 저에게 내용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바쁘게 일하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정작 중요한 것에 관심을 가지거나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악’이라고 말 한 스캇 펙의 말이 저에게 하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명과 연관된 일,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 남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3년 전 세월호가 침몰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꿈을 꾸었었습니다. 물에 잠긴 여객선을 제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꿈이었습니다. 바다는 한 없이 깊었고 저는 두려웠지만 눈길을 떼지도 못하고 바다 속에 잠긴 선체의 옆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묘하게 두렵고 슬프고 모호한 감정이 꿈속에서 저를 휘감았습니다. 세월호의 침몰은 법적으로 저와 제 가족의 일이 아니었지만 심정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바로 저와 제 가족의 일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마치 가해자가 된 듯이 미안했고 동시에 피해자가 된 듯이 화가 나고 슬프고 억울했습니다.

   3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처참한 세월호의 모습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저는 며칠 전 또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익숙한 한 여성과 항상 다니던 길을 가고 있는데 다리가 끊어지고 없었습니다. 그 여성이 먼저 물속에 보이는 돌을 딛고 건너편 끊어진 다리 위로 올라가기 위해 물 속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은 그만 발이 미끄러져 깊은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두려움과 함께 물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그 여성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힘껏 잡아당겨 그녀를 꺼냈습니다. 여성은 숨을 쉬고 있었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잠에서 깼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물을 무서워했습니다. 언니들의 증언에 따르면 제가 3살 때 목욕탕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탕 속의 한 할머니가 건져주었다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깊은 물을 무척 두려워합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물이 깊은 냇가에는 가지도 않거니와 해수욕장에 가서도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 가에 엎드려서 발로 물장구만 칠 뿐 바다에 튜브를 타고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은 생명의 상징입니다. 식물도 동물도 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의 70%가 수분이고, 지구 표면의 71%가 바다입니다. 매일매일 물을 마시고 음식을 만들고 세면을 합니다. 여전히 깊은 물은 무섭지만 이제는 어른이 되어 키가 컸고 함께 놀아주어야 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허리를 조금 넘어서는 깊이 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수영장의 물도 무섭지만 기회가 되면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저도 용감해졌습니다. 고성으로 이사를 와서 여름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닷가에 나가게 되니 밀려오는 파도에도 이전보다 친숙해 졌습니다.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동시에 가장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셨지만 우리가 욕심으로 그것을 오남용하게 되면 생명을 삼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것이든지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물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물질을 삶의 목적과 목표로 삼게 되면 직·간접적으로 생명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세월호 희생자의 한 가족은 “가장 큰 위로를 준 사람도 그리스도인이고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지만 본분을 잊어버리면 길가에 버려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항상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아야겠습니다. 거짓의 사람이 되어 누군가의 눈에 눈물을 뿌리고 상처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깊고 어두운 물속에서 인양된 세월호 침몰의 진상이 빛 가운데 환하게 드러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가슴에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다시 한 번 임할 수 있기를 오늘 하루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