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건 반짝이는 거고
고독한 건 고독한 거지만
그대 별의 반짝이는 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나는 반짝인다'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정현종의 시 '그대는 별인가' 중에서)

서울에서 자란 내가 말로만 듣던 밤하늘의 은하수를 처음 실감나게 본 것은 스물한 살, 울릉도에서였다. 군 입대를 한 달 정도 앞둔 나는 여기저기 놀러 다닐 계획을 세웠는데 먼저 뱃멀미를 각오하고 열 시간 넘게 걸린다는 여객선을 탄 것은, 해마다 오징어 철이 되면 울릉도로 건너가 장사하던 고모에게 용돈을 뜯겠다는(?) 일념에서였다. 당시엔 울릉도를 왕래하는 여객선은 포항에서 출발하는 '동해호'와 '청룡호' 두 대 뿐이었는데 일주일에 두 차례씩만 운행을 하고 있었다. 자식이 없었던 고모는 하나뿐인 당신 오빠의, 또한 하나뿐인 아들인 나를 어릴 때부터 유난히 귀여워했다. 네 명이나 있던 조카딸들에게는 무심한 편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울릉도를 방문한 나는 두 밤만 자고 육지로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고모가 섭섭해 하고 뱃멀미에도 금방 자신이 없어 닷새를 더 머물기로 했다. 고모는 나를 위해 하루는 텐트와 음식을 챙겨들고 가게 일을 돕는 정 양, 김 군도 데리고 성인봉 나들이에 나섰다. 우리는 산에서 하루를 머물었는데 봉래폭포도 장관이었지만 그보다 텐트에 누워서 바라보던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의 축제(이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된다)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남아있다.

머리에 닿을 것 같은 혹은 저 멀리 떠 있는 크고 작은 별들이 각각 모양도 밝기도 다름을 나는 새삼 알게 되었다. 어떤 별들은 푸르고 둥근 띠를 두르고 있어 더욱 신비해보였다. 나는 저 먼 하늘 위에 수많은 별들이 마치 폭포수처럼 혹은 거대한 강물처럼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 '아, 저것이 바로 은하수로구나.' 밤이 깊어갈수록 별빛이 더욱 환하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착각일 것이다. 나는 빛과 어둠의 역설을 체험했다.

지난 몇 주 동안 아침에도 밤에도 모국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살았다. 언론마다 특종이요 단독보도라는 이름으로 부정부패 사건들과 온갖 추문들을 들추어냈다. 최순실이라는 한 아낙네가 박근혜 전 대통령(빠른 시일 안에 그렇게 될 것이다)을 등에 업고 재벌들을 압박하여 돈을 뜯고 그 똑똑하다는 고위관료들을 줄줄이 줄 세운 사연들을 들으며 그야말로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에 나 역시 처음엔 분노했고 나중엔 헛웃음과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여기, 내게 새로운 인식을 안겨준 소식들이 또한 있어 분노 중에도 한숨 중에도 나는 희망을 가질 수가 있었다. 주말마다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촛불집회가 바로 그것이다.

손에 손에 촛불을 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별들의 축제, 그 거대한 인파를 보며 나는 그 옛날 우러러보았던 밤하늘의 은하수를 생각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 별이 되어 빛을 발하며 또한 함께 어우러져 거대한 강을 이루는 장관은 한 생을 살아오면서 수시로 자신의 초라한 존재감에 열등감에 기죽어 살아온 내게 각성을 안겨주었다.

별 하나 하나가 개별적으로 모여 은하수를 연출해내듯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국가를 이루는 원리를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단 한 사람, 네가 소중하고 또한 내가 귀중한 이유를 새삼 알게 되었다. 주말이면 들려오는 촛불소식을 들으며 땅의 은하수를 보며 나는 ‘존재의 충만함’을 경험했다.
지난 시대, 자유의 시인 김수영은 ‘이 한국문학사’라는 제목의 시에서 위대한 문학자들의 공로만큼 또한 무명의 문학자들이 있었기에 현대한국문학이 발전할 수 있었다며 자신을 포함한 존재에 대한 긍정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덤핑 출판사의 일을 하는 이 무의식 대중을 웃지 마라
지극히 시시한 이 발견을 웃지 마라
비로소 충만한 이 한국문학사를 웃지 마라
저들의 고요한 숨길을 웃지 마라…’
하늘 은하수, 땅의 은하수는 위대한 영원한 빛에 대한 메타포이다.

백 훈 (소설가, 샌디에고 한인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