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자들은 베드로전서의 “왕 같은 제사장”(2:9)을 비롯해서 신약에 명시된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 제사장이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500년 전에 만인제사장주의를 선포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아직도 제사장직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할 의지조차 없는 것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좋은 직책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직을 수행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면 그 직은 우리에게 허울뿐이거나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우리에게 주어진 제사장직을 목회자들에게 헌납하고,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이 사제들의 밑에서 한 것처럼, 그들의 밑에서 그들을 섬기기에 급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개혁자들은 만인제사장이라는 말로 하나님과 신앙인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일면 하나님 앞에서 성직자와 교인들이 평등하다는 것을 말하기도 했다. 말로는 목회자가 교회와 교인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 목회자는 교인들 위에 군림하고 교인들은 목회자를 섬기면서 제사장으로서의 자기들의 직을 포기해버렸다. 지금이라도 왜 우리가 제사장직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제사장직을 수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주는 대로 받아먹는 어린아이

목사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분을 맡고 있다. 퀘이커교 같은 데서는 목사 없이 교회를 유지하지만,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신학을 전공한 목사를 청빙하여 그에게 설교나 성경공부를 담당하게 한다. 성경을 가르치고 신앙적으로 교인들을 양육하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나태해지기 쉽기 때문에 목사가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해서 교인들을 일깨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어린아이처럼 목회자가 주는 대로 받아먹는다. 설교도 목회자가 준비한 대로 듣고, 성경공부도 목회자가 준비한 대로 따라 한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수동적으로 목회자의 취향에 따른다. 이렇게 30년이고 40년이고 먹여주는 것만 받아먹다 보면 우리의 신앙적 지식은 성장하지 않고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갈 4:3)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어 있다. 성경에서는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선생의 지도를 받는 유아적인 신앙상태라고 말하고 있는데, 목회자가 먹여주는 것만을 받아먹는 사람의 신앙 역시 유아적인 신앙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목사의 가르침을 무조건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지극한데다가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르치는 직분을 맡은 목사의 말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때때로 목사가 성경을 잘못 가르치더라도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은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목사에게 의지하게 되고 목사는 교인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 결국 교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목사와 마찬가지로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사실까지도 잊게 된다.

어느 안수집사와 이야기하는 중에 만인제사장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그 안수집사는 목사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복하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라고 주장했다. 그 집사는 수십 년 동안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듣고 성경 공부반에 참석했지만, 기본적인 교회사도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운 모토조차도 모르는 어설픈 개신교인이었다. 한국의 교인들이 대부분 이 집사와 비슷하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제사장직을 수행할 만한 능력을 갖추는 것을 꺼리는 것 아닐까?

제사장직을 위한 준비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집사는 제사장직을 감당할 수가 없다. 중세의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읽히지 않았다.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서 처형했다. 개혁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고서는 우리가 사제들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경을 번역하여 누구나 성경을 읽게 했고 신약에 언급된 대로 교인들을 모두 제사장이라고 선포했다. 그러나 500년이 지난 지금도 교인들은 제사장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들의 신앙적 지식이 유아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혁자들은 성경을 번역했고 교회에서는 성경 읽기를 강조해왔다. 성경은 읽기만 하면 아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상 성경은 그저 읽기만 하면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성경을 옳게 분별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딤후 2:15)고 말했다.

우리교회의 어느 집사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분이 전도회의 회장을 맡아서 예배를 인도하면서 밀과 가라지 비유를 설명할 때 그 의미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다. 그분은 일류대학교의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박사를 취득했고 모연구소에서 요직을 맡았던 분이다. 그분은 학교공부에 최선을 다 하고 직장에서도 모범적으로 근무했지만, 교회에서는 설교와 교회의 성경공부 외에는 전혀 신학에 관련된 서적을 읽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나는 교회에서 이런 분들을 흔히 만난다. 세상 학문을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고 직장에서는 최선을 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모든 것을 목회자에게 맡기고 성경을 읽을 뿐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분별력을 키우는 데에 필요한 책은 전혀 읽지 않는다. 교회에 오랫동안 그리고 열심히 나오는 이런 분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교회에서 성경만 읽으면 되는 것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어릴 때 혹은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는 선생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성년이 되면 우리가 스스로 책을 찾아 읽게 되어 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 외에도 폭넓게 신학서적을 읽어야 한다. 신학자들은 옛날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유아기에 속했다면 현대인의 의식수준은 성인의 수준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해서 현대인을 성인된 인간이라고 말한다. 성인이 된 사람은 세상 경험과 독서를 통해서 성인의 수준에 맞는 폭 넓은 사고를 해야 한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목사에게만 의지하는 유아적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그런데 교인들이 계속 유아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중세의 교인들처럼 사제들의 가르침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면서 굴종하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목회자들은 평신도들 위에 군림하는 제사장의 위치에 오른다. 그러면 평신도나 목회자나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구약시대처럼 제사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신약의 말씀에 역행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목회자들이 제사장 행세를 하는 것은 평신도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점이다. 따라서 목회자들이 제사장처럼 군림하는 것은 목회자의 책임보다도 평신도의 책임이 더 크다.

우리는 세상일에서는 성인으로서 살고 있는데, 신앙생활에서는 목회자의 그늘 안에서 유아적인 행동을 한다. 이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앙이 영생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그렇게 안이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의 신앙의 연조만큼 신앙이 성장해야 한다. 열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열 가지 해석이 나오고 열 개의 교단으로 분립될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가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로 나뉘고 개신교만도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루터교, 성공회, 성결교 등으로 나뉘고 장로교 안에서는 100개에 가까운 교단으로 분리되어서 자기들 나름의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렇게 제각각 나뉘어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교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들 같지 않을까?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너와 나의 제한된 안목을 뛰어 넘어서 전체를 보는 눈을 갖추어야 한다. 어떻게 그런 안목을 갖출 수 있을까? 우리는 일정 기간 동안 학교에서 선생의 지도 밑에서 공부한 다음에는 스스로 책을 읽으며 배우는데, 교인들은 일생동안 목회자 밑에서 학생 노릇을 한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조언한 것처럼, 성경을 분별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능력을 길러서 부끄럽지 않은 교인이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요즘 발견학습을 중시한다. 교사가 가르치는 것을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발견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발견학습이 중요한 것처럼, 성인된 교인들에게도 스스로 찾는 학습이 중요하다. 스스로 찾는 노력 없이 신앙적 안목이 성숙해질 수 없다. 내 나름의 성경을 보는 눈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목회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럴 때에 목회자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어느 한 목회자의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어느 특정 교단에 속하는 교회에 다니면서 그 교단의 신학 안에 갇혀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편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편향적으로 이해하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고 그분의 뜻을 폭넓게 그리고 균형 잡힌 안목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노력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세계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에는 항상 부족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안목이 얼마나 협소하겠는가.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라고 말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찾기 어려운데, 안이하게 목회자에게만 맡겨서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롬 12:2)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이 분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한 목회자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이야기해 보겠다.

어느 부흥강사의 엉뚱한 성경해석

아주 큰 교회에서 시무하는 그리고 미국에서 박사를 취득한 목사가 부흥사경회의 강사로 온다고 해서 어느 부흥집회에 참석한 일이 있다. 그 강사는 첫날 저녁에 사무엘상 15장 1-3절을 본문으로 해서 “먼저 진멸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사무엘상 15장은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아말렉의 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체포했고 좋은 짐승들을 골라서 사로잡아왔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노하신 사건이다.

그 강사는 처음에 사무엘상 15장 11절에 나오는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실상 하나님은 실수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 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후회한다는 표현은 수사법적 표현으로서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속이 상해서 한 말이라고 했다.

물론 이때에 하나님은 사울이 당신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속이 상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후회하노니”는 단순히 속이 상해 있었다는 것 이상을 나타낸다. 후회하신다는 언급 다음에 여호와는 사울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는 기록이 나오기 때문에 여호와는 단순히 속이 상한 것이 아니고 정말로 후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흥강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진실하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주 분명한 문맥을 왜곡하는 우를 범했다. 그런데 교인들은 이 강사의 수사법이라는 말을 받아들여서 고개를 끄덕였다. 강사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서 아멘으로 접수한 것이다.

창세기에서 보면 노아의 시대에 여호와는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6:6)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인간의 죄악에 실망해서 그 주민들을 불로 멸망시키셨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인간을 죽였다는 창세기의 기록에서 여호와는 그들을 만든 것을 후회하셨다는 것과 당신의 실수를 인정하셨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추방시키신 것 역시 인간을 낙원에서 살게 하려던 처음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사울에 대해서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기록은 직설적 표현이다.

그런데 그 기록을 수사법적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속이 상한 것뿐이지 실제로는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다. “후회하노니”를 언급한 문맥에서 그 표현이 수사법적 표현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후회했다는 말 다음에 사울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는 언급이 나오기 때문에 그 말은 단순히 속이 상했다는 표현이 아니고 여호와의 내심을 드러내는 직설적 표현이다. 이 강사처럼 자신의 생각에 맞추기 위해서 성경의 내용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교인들은 그 강사의 말이 억지라는 것을 전혀 간파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때 강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유아적인 태도다.

다음날 저녁에는 사무엘상 1장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제사장 엘리와 한나의 대화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여기서 15절에 나오는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라는 한나의 말을 언급하면서 “여호와 앞에”를 ‘여호와와’로 바꾸어 설명했다. 상대와 심정을 통한다는 것은 내가 너의 마음을 알고 네가 나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한나와 여호와의 심정이 서로 통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한나의 마음을 알고 한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고 말하면서,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과 심정이 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나가 “여호와 앞에 심정을” 통했다는 말은 ‘여호와께’ 심정을 토로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나는 일방적으로 여호와에게 자기의 심정을 토로했다. 따라서 ‘여호와 앞에’를 ‘여호와와’로 바꾸어서 양편의 심정이 통했다는 이 강사의 설명은 성경본문을 왜곡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교인들은 강사의 말을 아멘으로 받아들였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면서

나는 집에 돌아오면서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는 분이라거나, 한나가 여호와와 심정을 통했다는 강사의 성경해석이 엉뚱하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이 그들 중에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두 말할 필요 없이 설교는 은혜로워야 한다. 그러나 은혜로운 설교를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설교를 하기 위해서 성경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왜곡하는 것은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다.

아마도 그 강사는 자신이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 강사가 자기가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는 사기꾼이다. 어쩌면 사무엘상 1장에서는 의식적으로 ‘여호와 앞에’를 ‘여호와와’로 바꾸지 않았을까? 그가 사기꾼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대다수의 교인이 목사가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렇게 교인들이 목사에게 맹종할 때, 목사의 권위는 더욱 공고해지고 만인제사장주의는 무색해진다. 이러한 맹종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다시 말해서, 제사장으로서의 각자의 직분을 감당하려면 성경에 대한 무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성경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우리들이 개혁자들의 뜻에 따라서 성경을 자유롭게 읽게 되기는 했지만, 교인들에게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목사가 엉뚱하게 성경을 해석해도 분별하지 못하고 목사들은 여전히 중세의 가톨릭교회에서처럼 성경해석을 독점하고 있다. 분별력이 없는 교인들은 모든 것을 목사들에게 맡기고, 목사들은 무지한 사람들 위에 제사장처럼 군림하고 있다. 결국 한국의 개신교가 중세의 가톨릭교회로 돌아간 셈이다.

이제 교인들은 바울의 말대로 말씀을 올바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관한 지식을 지녀야 한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교회사를 읽어야 하고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그런 책들을 읽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본적으로 교회사 한 권, 성경기록에 관한 책 한 권, 성경해석에 관한 책 한 권, 이렇게 세 권이면 된다. 교회사나 성경기록에 관한 책을 권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인에게 역사의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T. S. 엘리엇은 25세 이후에도 시를 쓰려는 사람은 역사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그의 말은 시인뿐 아니라 신앙인도 귀 기울여야 할 충고다.

이런 책들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왜 교회에서는 그 책들을 읽으라고 말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만하다. 이에 대해서 그런 책들은 참고서적에 해당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알아서 찾아 읽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올 법하다. 그와 달리, 교회에서 그런 책을 천거하지 않는 것은 중세시대에 교인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한 것과 유사하다고 답할 수도 있겠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그 결과 교인들이 성경을 읽어도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분별력이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성경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보조적인 책을 읽는 일은 성경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달리 말하면, 보조적인 책을 읽지 않고 성경만을 읽어서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가 여러 가지 신학적 주장 가운데서 어디에 서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신학적 주장 가운데에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지 그 장단점을 파악할 수도 없다. 성경과 교회에 관한 기본적인 책들은 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그리고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려면 평신도들도 꼭 읽어야 한다.

우리가 왜 교회사를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요즘 당당뉴스에서 칼빈이 이단처형에 관여했는가의 문제가 찬반 양측으로 나뉘어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는데 누구의 말이 옳은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그런데 두 가지 교회사적 사실을 알면 이 공방에서 쉽게 갈피를 잡을 수 있다. 당시 제네바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신정도시였고 제네바에서 교회를 이끈 핵심적인 인물이 칼빈이었다. 그 신정 체제에서 시 의회에서 결정된 이단처형에 칼빈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약 그가 제네바에서의 이단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칼빈이 그 신정도시에서 교회 지도자가 아니었다고 말하거나 당시 제네바가 신정도시가 아니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세상의 지식을 위해서 우리는 아주 많은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그런데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는 데에는 너무도 게을렀던 것이 사실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책들을 한 달에 한 권만 읽어도 세 달이면 된다. 한 해에 한권만 읽어도 삼 년이면 된다. 우리가 20년이나 3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단시간 안에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책을 읽으면 한완상의 『예수 없는 예수교회』나 최근에 나온 내 책 『착각에 빠진 한국교회』를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는 분별력이 생긴다. 그런 분별력이 없으면 목회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목회자에게 굴종할 때 우리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제사장직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설교집이나 간증집만을 읽을 것이 아니라, 교회사나 신학에 관한 책도 읽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