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랫동안 인생의 좋은 선배로 생각해온 한 분의 추억담이다.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어머니가 품팔이를 해서 사느라 가난하게만 살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교육열이 남달라 어려운 중에도 그를 고등학교에 진학시켰다. 하루는 소풍을 가는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집에 또 양식이 떨어졌다. 그가 “엄마, 그래도 오늘은 소풍날인데…” 하면서 마당에 망연히 서있는데 방안의 어머니는 내다보지도 않고 한 마디를 던졌다. “사내대장부가 그까짓 점심 한 끼도 해결 못하면 뭐에 쓸꼬.” 그 순간, 그는 깨달은 바가 있어 그대로 학교로 달려갔다. “나는 그날 수저만 들고 다니며 이 친구 저 친구에게서 한두 숟갈씩 맛있는 것만 배부르게 얻어먹었어요.” 그는 이런 어머니 덕분에 훗날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얻을 수가 있었노라고 회상했다. “만약 그 날 어머니가 ‘얘야, 도시락도 못 싸니 소풍은 포기해라’ 하면서 미안해하고 서러워하셨더라면 나도 그냥 주저앉았을 거예요. 내가 맨손으로 집을 떠나 고학으로 대학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어머니가 나를 강하게 훈련시킨 덕분이지요.”
 
여기 다른 한 사람의 사연이 있다. 어느덧 5년이 다 되어 가는, 2011년 1월, 당시 32세의 작가 최고은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굶어죽은 사건이다. 그녀는 명문 한국종합예술학교 출신의 시나리오 작가였다. 재학 중에 단편 ‘격정소나타’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졸업 후의 작품들이 아직 인정을 받질 못했다. 그녀가 이웃집 현관에 ‘창피하지만, 며칠 째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주세요’ 메모를 붙여놓았는데 이것을 본 이웃이 음식을 챙겨 문을 두드리니 이미 죽어있었다고 한다. 이 사연이 알려지자 그녀의 동문들과 예술인들은 그녀의 절박한 사정을 잘 몰랐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 역시 그 사연을 대하며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문득 내 친구인 평론가 권혁준이 오래전에 쓴 ‘예술가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두보도 말년까지 가난과 병고에 시달렸고, 중섭도 평생동안 불운했으며, 슈베르트 또한 짧은 생애를 불행하게 살다 갔다’라는 글이 떠올랐다. 그와 내가 학교 앞 대폿집에서 나누던 이야기도 생각났다. “그러니, 삶과 예술은 각각 다른 사건인지도 몰라.”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산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행복을 느끼는 조건이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돈이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가 하면 명예가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살다보면 배우자가 혹은 자식이 자신의 행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행복을 거는 사람도 있고 자존심에 자신의 외모에 행복을 거는 사람도 있다. 과거 일제식민치하에는 독립에 목숨과 행복을 건 사람도 있었다. 군부독재시절에는 민주주의야 말로 우리 민족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 수 있다 믿고 온몸으로 저항한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여기에 적은 요인들이 두루 균형 있게 갖추어질 때 온전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은 저마다의 성향과 신념에 따라 어느 한 두 가지에 더 비중을 두고 행복을 추구한다.
 
그런데 앞에서는 좀 가볍게 적었는데 돈과 행복의 관계는 다른 요인들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집요하게 얽혀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행복도 사랑도 아니 모든 것이 돈으로 거래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때로는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 사람을 괴물로 돈의 노예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 돈보다 예술에 삶의 목적을 행복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끼니를 굶지 않을 정도의 돈만 있으면 예술적 성취에 행복을 더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의미로 나는 위의 최고은도 육체의 굶주림보다 아마도 예술에의 갈망이 예술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에 실패한 것이 더 큰 고통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최고은의 삶과 죽음이 의미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으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 돈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최고은은 온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맞춤형 치료’라는 말이 있다. 주로 한의사들에게 들었는데, 환자의 증상에 집중하여 치료하는 양방과 비교해 각 환자의 병의 원인을 치료하는 한방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환자가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 양방에서는 두통을 없애주는 약을 주지만 한방에서는 두통의 원인이 혹 위장 장애에 있는지 폐나 신장 등 다른 기관 때문인지 등을 살펴 그 원인을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므로 개인별 맞춤형 치료라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성도들 각 개인에게 다양한 소원을 주시고 이를 추구하는 삶을 통해 행복을 누리게 하신다고 믿는다. 돈이면 된다는 획일화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은 다양함을 차별로 우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뼈에 찌든 비교의식으로 살아간다. '저 사람도 사는데' '저 사람보다는 낫잖아' 하다못해 100년 전에 온갖 호사를 누렸던 그 어떤 부자도 지금의 가난한 사람보다 많은 것을 누리지 못했다는 식의 비교를 하여서라도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다양성의 긍정은 비교의식이 아니다. 모든 창조물의 존재방식은 다양함과 그의 조화에 있다. 사람이란 나는 나로서, 너는 너로서 각자의 존재 자체로 하나님의 귀중한 창조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의 아름다운 조화를 위해 한사람 한사람에게 ‘맞춤형 능력, 맞춤형 행복’을 주신다.

백 훈 (샌디에고, 한인뉴스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