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가 내렸다. 말짱한 봄 하늘이 4월 16일에는 천둥까지 울어대며 비를 뿌렸다. 1주기인 오늘 하루만큼은 봄볕 따듯한  추모를 기대했다가,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비바람, 울음바다가 당연한 것 아닐까? 사람들의 가슴에 고인 눈물샘이 메마르니까 이젠 하늘이 울고 있었다. 고맙게도 저녁에는 맑게 개었다.

  오후에는 광화문에 나가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조급하였다. 아마 서소문 경찰청 앞에서는 기도회가 열렸으리라. 지난 화요일, 개신교인들의 광화문 세월호 추모집회 도중 일곱 명의 신학생과 목회자들이 양천경찰서로 붙잡혀갔다. 요즘 순례 코스가 되다시피 한 청와대 행진을 시도하다가 경찰이 사납게 막아섰고, 이를 피해 인도 아래로 내려온 것이 범죄혐의가 되었다. 용케 사흘 째 저녁에 모두 석방되었다.

  참사 1주년을 맞았지만, 그리 변한 것이 없었다. 국회가 세월호 인양을 결의하였지만, 대통령은 번번이 딱 부러지게 선언하기보다, 에둘러 확답을 피한다. 지난 1년 동안 여론과 언론의 분위기를 살피는 듯하면서도, 기대와 달리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에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용케 여야 합의에 떠밀려 특별법 제정은 성공했지만, 이젠 대통령 시행령에 발목이 잡혀있다. 그 몰상식과 부정의가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서울광장 추모문화제에 참석해 가장 많이들은 당사자의 하소연은 “왜?”였다. 손에 쥐어주는 유인물과 소책자에도 숱한 물음표를 담고 있었다. 가판을 벌리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서명대도 결국 바른 대답을 듣고 싶어서였다. 도대체 “왜!” 유가족은 물론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이다. 그런데 특별법이 찾으려는 질문과 정부가 감추려는 해답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고, 아득하다. 특별법 시행령은 그 꼼수의 결정판이다.

  국민적 공분과 유가족의 분노는 정부의 거짓말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도 모자랄 위로와 신뢰는커녕 그때그때 말을 바꾸고, 부아를 긁어댔고, 상처를 헤집었으며, 판을 깼다. 유가족의 선의를 무시한 채 보상금을 내세워 생명에 대한 존엄을 짓밟았다. 그 결과 더 이상 유가족은 대통령과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 더 이상 기댈 마음이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의 안산합동분향소 방문을 가로막고, 대통령은 ‘나 홀로’ 팽목항에서 추모시위를 해야 했을까? 진정성이 없는 위선에 모두가 돌아서 버렸다.

  결정타는 작년 4월 16일 바로 그 날처럼, 1주기인 어제도 대통령이 국민의 시야로부터 숨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비겁한 선장이 구조를 기다리는 순진한 승객들을 배 안에 가만히 두고 세월호에서 도망친 것처럼, 순진할 만큼 믿기 어려운 컬럼비아 대통령의 간곡한 부탁을 변명하면서 훌쩍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버렸다고 한다. 그 꽁무니가 참 불안해 보인다. 국민의 분노를 이길 권력은 없다.

  추모문화제의 하이라이트는 세월호 인양 퍼포먼스였다. 사람들은 수만 명의 눈앞에서 연출한 세월호 인양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다. 9명의 실종자 가족이 유가족이 되는 슬픈 소원이 곧 이루어지기를 절절이 간구하였다. 또 한 번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적 재난 앞에서 진정성 있는 위로자 역할을 "왜" 외면했을까? 진상규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구하는 일을 "왜" 포기했을까? 그렇게 당당하고 반듯한 길을 포기하고, "왜" 꼬이고 뒤틀린 방식을 선택했을까? 아마 숱한 “왜?”들을 풀어줄 열쇠가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는 가족을 용감한 투사로 만들었다. 누군들 17살짜리 내 아이를 가슴에 묻어둔 채 평온히 잠들 수 있을까? ‘왜, 왜, 왜’라는 의구심과 의심이 계속되는 한 국민의 분노도 결코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분향소에 이르는 그 짧은 추모의 길도 허용하지 못하는 정권의 불안감 역시 오늘도 잠들지 못한다. 깊은 밤, 쟁쟁하게 울리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노래가사가 끝없이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