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민 와 처음 몇 년 동안 LA 한인타운에서 살았다. 아이들이 다니는 ‘코행가’ 초등학교 정문 앞의 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교는 평판이 좋아 많은 학부모들이 보내고 싶어 하는 학교였다. 큰애의 경우 3학년 전학이 쉽게 이루어져 실감하질 못했는데 둘째애가 입학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학교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입학서류를 접수하는 바로 전 날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베란다에 나왔던 나는 학교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보곤 깜짝 놀랐다. 저녁 8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 100명은 됨직한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아니 대부분 의자를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담요까지 두르고 있었다. 마침 옆 베란다에 나와 있던 이웃집 남자가 설명을 해주었다.

“내일 아침부터 입학서류를 접수 한다지요. 그래서 줄을 서있는 거예요. 늦게 접수하면 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다른 학교엘 다녀야 하거든요.”

나는 부근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이 학교에 다닐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서둘러 나왔다. 이민 오면서 가지고 온 오리털점퍼를 입고 식탁의자도 하나 들고 그 줄에 합류했다.

온밤을 지새우며 앉아있자니 그야말로 별별 생각들이 다 마음속에 피었다 사라져갔다. 나는 이민을 온 후 초라해진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라면 어떻게든 선을 대서 이런 절차 없이 애를 입학시켰을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위해 긴 줄을 서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항공권이든 귀성 기차표이든 하다못해 스포츠경기 입장권도 관계자를 연결해 특혜를 받았다. 그런 것을 능력이라 생각했고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돌이켜보면, 그날 밤, 나는 일부 한국인들과 동양인 남미인 백인 흑인 들 틈에 끼어 앉아 ‘여기는 미국이야. 이런 사회가 건강한 거야. 지극히 정상적인 거야’를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처음에는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에 대해 분노했지만 그런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들을 짚어가다 보니 정말 어지러웠다. 선박회사와 관련기관의 결탁은 말 그대로 복마전이었다. 얽히고 설킨 부패고리와 사회전반의 안전 불감증, 이기심과 탐욕이 참사의 원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기성세대의 한국인이라면 누가 그 원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희생자에 대한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모두의 가슴에 새겨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고백하자면 내가 반성의 의미로 위의 추억을 떠올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저마다 그 해결책을 말하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에 있어서 누구보다 큰 책임은 관련기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은 관료들이 바로 행동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낡은 배를 들여와 증축을 하고 영업허가를 얻어 운행을 하자면 관련기관의 허가며 지속적인 감독이 있어야만 한다. 배가 승선인원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엄청난 과적을 했어도 현장에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뇌물상납 고리와 부패가 구조화 되어 있어 하위직인 담당자 선에서는 조치를 취할 수도 없었음을 말한다.

따라서 이런 참혹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고위직은 물론 하위직 관료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또한 세월호 회사의 직원들도 급여에 목이 매여 사주들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법을 위반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그래야 이런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가 있으며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청소년들의 희생이 의미를 지닌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울 뿐이다. 우리세대들의 청소년시절엔, 세상 불평등과 불의에 분노하던 이십대 청년시절엔 우리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세상을 이끌게 될 때면 세상이 조금은 더 깨끗해지고 정의로워 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부모들의 시대보다 오히려 인간성은 황폐해지고 사회는 더욱 험악해졌다. 내 가족 내 자식만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들이 들끓는 탐욕의 세상이 되었다. 부모세대 덕에 굶지 않았는데 더 공부도 했는데 현재의 우리세대는 인정도 메마른 더 삭막한 세상을 만들었다. 그 결과 이런 참사를 낳게 되었다.

꽃 같은 나이의 청소년들이 기성세대들의 이기심 때문에 희생당한 사건을 보며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한다. 정말이지 우리 인간들이란 죄 없는 순결한 희생을 보아야만 비로소 정신을 차리는 모양이다. 지금은 진정한 회개와 너와 나 우리의 핏줄에 흐르는 세월호 DNA를 단절시키려는 치열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저 바다에서 청소년들이 짊어진 십자가의 희생을 헛되이 떠내려 보낼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는 탐욕의 기성세대를 향한 마지막 경종의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