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다스리기’라는 좋은 표현이 있음에도 제목을 영어의 우리말 표기로 적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영어를 영어로 적지 않고 한국어로 적어 놓으면 화를 해석 차원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두 언어, 즉 화와 앵거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으로 인해 화를 다스리기도 조금은 쉬워지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사람 사이지만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하기보다 ‘아이 러브 유’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 조금 더 쉽고 ‘당신을 보고 싶어’ 하기보다는 ‘아이 미쓰 유’라고 말하는 것이 덜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이치이다.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 살고 있는 한 소수민족은 자살률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언어학 측면에서 연구해보니 그들의 말에는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밝혀졌다. 슬픈 감정이 북받쳐 올 때 슬프다는 말을 할 수 있으면 그 감정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을 터인데 이 사람들의 경우엔 슬픈 감정을 어떻게도 처리 할 수가 없으니 심하면 자살을 하고 만다는 것이었다.

대학시절에 ‘일반의미론’이라는 과목을 배웠다. 언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것으로 위에 든 사례 외에도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를 수도 없이 반복하다보면 정말로 믿게 된다든가 ‘나는(너는) 바보야’를 반복해서 읊조리다보면 정말로 바보가 되고 마는 이치를 설명한 것인데 일상생활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언어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배움으로 남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젊은 시절엔 자신도 쉽게 화를 내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경우 지레짐작을 했거나 사실이 아닌데도 오해를 해서 화를 내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후 화나는 상황이 닥치면 ‘좀 더 알아보고 화를 내야지’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와 심리적 거리를 둠으로써 화를 다스리는, 화를 하나의 실체인양 여기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 결과 인생의 트러블이 꽤 줄었고 싸움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그 대상은 화뿐만이 아니다. 슬픔, 절망의 경우에도 이런 감정이 생겼을 때 바로 반응을 하지 말고 ‘이 슬픔은 어떤 것인가’ ‘이 절망은 말이 되나’ 하는 식으로 잠시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면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기가 쉽다.

작가들 중에는 자주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데, 그러면서도 별 문제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감정을 관찰하는 일이 거의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로 자극을 받아 절망감에 허우적거리다보면 ‘아, 이것도 좋은 소설 거리가 되겠네.’ ‘이것을 쓰면 뭔가 스토리가 되겠네....’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앞에서 말한 거리두기가 시작되는 것인데 이로써 자가 치료가 되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다보니 어떤 이들은 글을 쓰기 위해 우울증을 그리워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예술혼이라고 해야 할지 자학이라고 해야 할지 나 역시도 가름이 잘 안 된다.

앵거 매니지먼트는 이 풍진세상을 다소나마 속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화를 피하라는 것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대로 ‘이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해’라고 확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화를 내면 된다. 요즘 아침산책길에 자주 만나는 예쁜 백인 여자가 있다. 데리고 다니는 개가 잔디밭에 똥을 싸도 도무지 치우질 않으니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정말이지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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