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교회의 찬양대에 다시 선다. 따지고 보면 ‘다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억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다. 고등학생 때 처음 교회의 찬양대에 서기 시작해 군에 입대할 때까지는 꾸준히 동참을 했다. 하지만 그 후부터는 주위의 권유가 있으면 마지못해 그것도 몇 개월씩만 서곤 했다. 때로는 ‘아, 이제부터는 교회생활을 착실히 해야지’ 하는 결심으로 찬양대에 서곤 했는데 그런 때에도 몇 개월 밖에 가질 못했다. 더욱이 미국에 와서는 본의 아니게 (정말 본의 아니게) 몇 곳의 교회로 옮겨다니다보니 찬양대는 더욱 멀어지고 말았다. 이처럼 모범적이지 못한 나의 신앙이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바로 찬양대 경력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고백을 했으니, 이번에야말로 몇 개월로 끝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찬양대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악보를 잘 읽지 못한다.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 도레미파... 계명을 못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악보에 적힌 음을 잘 잡아내질 못한다. 그러니 연습을 거듭한 뒤 거의 음을 외워서 노래를 한다. 이러니 악보를 보며 음을 척척 잡아내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그들은 연습에 다소 게으름을 보여도 되지만 나 같은 사람들은 연습에 게을렀다가는 정말이지 입을 벌릴 수도 없다. 이런 형편이니 핑계거리만 있으면 찬양대를 떠나버렸던 것이다.
 
 절대 음감을 갖는 것과 노래 부르기는 다소 다른 면이 있어서 음을 잘 잡아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은,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파악했겠지만, 앞의 글을 읽으며 '음도 잘 못 낸다면서 무슨 찬양대?'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그런 것이다. 이것도 열등감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굳이 밝히자면,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합창반이 제법 유명했는데, 600명 중 30명을 뽑는 (거의 강제로 차출하는) 합창반에 들어가 활동했었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아무튼 나는 어느 모임이든 동참을 했으면 열심히 하는 편이다.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라면 잠잠히 있지만 기왕에 자발적으로 참석하는 자리라면 주도적으로 참여를 하는 편이다. 그야말로 뒤에서 가만히 있어야 할 것 같으면 아예 참여를 하지 않는 그런 성격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찬양대에 동참을 한 후로는 내 자신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자발적으로 동참을 했으니 늘 그랬던 것처럼 주도적으로 참여를 해야 하는데 능력이 모자라 음을 잘 잡는 단원을 따라 부를 수밖에 없으니 왠지 초라해지는 것 같고 자꾸만 존재감도 미미해지는 것 같다. (전에 찬양대에 섰을 때에는 이런 의식이 없었는데.....)
 
 그러다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존재감이란 반드시 주도를 해야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냥 거기에 있음으로도 나타나는 것이다. 오랫동안 무언가 존재감을 나타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참 피곤하게 살아왔다. 이렇게 존재감 없이(?) 살아보니 그것도 참 편안한 것 같다.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여유로움도 느끼게 된다. 그냥 '묻어가는 맛'도 꽤 괜찮은 것 같다. 더구나 합창이라면 말 그대로 조화와 화합을 이루는 것이지 드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 인생길도 그런 것 같다.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소명을 따라 살아가며 다소 앞 서 가는 사람도 있고 뒤처져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조화롭게 화평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시편 52:8)'  오, 존재의 푸르름과 평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