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도 대통령 후보자를 공식적으로 냈다. 새누리당은 이미 한달여 전에 박근혜 후보를 공식 후보로 선출하였고 이미 대선행보를 시작하였다. 박 후보는 과거는 잊고 넘어가자, 그러나 필요하면 만나겠다는 발상으로 지난 역사로부터 소외되고 탄압 받았던 주체들을 찾아다니는 행보를 이어왔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휘호 여사 등이었다. 다행히 이 두 곳을 방문해서는 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응대를 받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에 불거졌다. 전태일 재단을 방문한 박 후보는 노동자들의 격렬한 항의와 저지를 당했고 이후 그의 국민대통합 행보는 삐그덕거렸다. 거기에 최근 인혁당 두 개의 판결 발언으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인민혁명당 재건위 의혹으로 재판을 받은 후 만 18시간 만에 사형을 당한 여덟 명에 대해 과거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정이 정당하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두고 유가족들은 울분을 토했다. 박 후보는 필요하다면 유가족을 만나겠다고는 말했지만 자기 아버지의 독재적 행위에 대해 사과할 뜻이 있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는 과거 박 전대통령의 독재로 인하여 발생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고 필요하다면 사과하겠다, 역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역사가 판결하게 해야 한다는 둥 시대정신과 동떨어진 발언을 일삼았다. 그의 심중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외면적으로 보이는 현상은 박 전 대통령의 독재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겠다는 옹고집으로 보인다. 게다가 박 후보의 공보단장이라는 사람은 박 후보가 피해 당사자가 아닌 그의 가족들에게 사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망발까지 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망발에 새누리당 내부에서 조차 '그렇다면 조선을 강제합병한 일본도 그 후손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는 것이냐'고 했다니 뭔가 잘못 돼도 아주 많이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 물론 그의 행보에 대한 결과 역시 국민이나 역사가 판단할 몫일 것이다.

나는 국민대통합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행보를 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 관련 기사를 보고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진심을 담은 화해와 상생의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이미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보니 부질없는 짓이었던 것 같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행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추스리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 없이 그저 찾아가서 몇 마디 나누고 사진이나 몇 장 찍는다고 대통합이 이뤄지지는 않느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5.16은 긍정적인 효과가 일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쿠데타로 규정하였고 수없이 많은 당사자는 물론 그 일로 피해를 입은 가족들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고난의 시대를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사과하지 않는 국민대통합은 말장난,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인간으로 태어나서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가족사에 국한된다. 사회적으로나 국가적, 역사적으로 볼 때는 다르다. 아무리 존경스러운 부모라 하더라도 역사의 판단이 그렇지 않다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공과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것도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개인적 가족사를 역사나 사회적 인식보다 더 우위에 놓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이 국가를 경영할 능력과 자질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아니면 국가를 개인적 혹은 가족사적인 소유물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거나!

비록 그 자신이 벌인 일도 아니라지만 사회적으로 여전히 논쟁꺼리로 남아 있는 사안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과정이 빠진다면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을 대동하고 화려한 행보를 한다 해도 결코 수용될 수 없다. 기껏해야 지지자들만을 위한 쑈맨쉽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심어린 회심의 단계가 없이 그의 국민대통합 행보는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심각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의 회심은 개인적인 회심이 아니라 역사적 회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것이어야 한다.

예수께서 길을 가다가 자신을 보기 위해 뽕나무 위에 올라간 키 작은 세금징수원 삭개오를 보셨다. 그리고는 삭개오에게 하룻밤 묵어가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삭개오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회심의 사건이다. 영어로 회심을 가리키는 단어인 conversion은 '모두 함께(con)'와 '바꾸다(vertere)'라는 뜻의 단어가 합성된 것이다. 즉 모든 것이 완전히 뒤집어지고 바뀐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삭개오를 지배했던 모든 가치관과 삶의 목적, 역사까지도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놓고 부당하게 착복한 것이 있다면 네 배로 변상하겠다는 회심의 선언을 한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공분을 사던 삭개오는 이웃의 자리 한 가운데로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성서의 이 이야기가 박 후보의 정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삭개오가 그의 부친의 죄를 대신 속죄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회심의 사건은 중요한 질문을 박근혜 후보에게 던진다. 국민을 통합하겠다면 그 자신이 국민의 정서, 국민의 자리 한 가운데로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자기 희생, 자기가 가진 것을 내던지는, 그러면서도 그 자신을 가두고 있는 가족사라는 개인적 가치관과 역사까지도 기꺼이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찾아가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대통합이 이뤄지기에는 한국현대사가 너무나 꼬여버렸다. 그 정점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와 그의 수하 전두환, 노태우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그들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강요당하면서 한 평생을 산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이 있다. 그들의 자리로 내려와 그들의 마음에 동화되는 회심의 과정이 없다면 그의 대통합 행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속셈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국민들이 어리석지 않다. 한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진심을 갖기 바란다. 그것이 박근혜에게는 없지만 다른 두 명의 실질적 대통령 후보에게는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