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들의 축구 사랑은 대단하다. 이미 2002년 월드컵 때 거리를 점령한 붉은 악마의 응원열풍만 봐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이때 한국 대표팀은 4강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하며 축구사랑의 불길에 휘발유를 쏟아 부었다. 한국축구 참 많이 발전했다!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축구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즐겁다. 결정적인 순간에 실축을 하여 득점찬스를 놓치면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이 말이 아닐까 한다. ‘내가 해도 저것 보다 낫겠다!’ 나름대로 동네 조기축구회에서 갈고닦은 실력이 있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해도 저것 보단 낫겠다’는 야유를 퍼붓는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 최근 한국의 정치인들에게도 똑같이 쏟아내는 야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정치가 그따위 것이라면 내가 해도 당신들 보단 낫겠다!’

나도 ‘내가 해도 그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무지 원칙과 기준이라는 것도 없이 그저 야합과 타협, 되지도 않는 기싸움과 거래로 점철된 것이 작금의 정치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정치인이나 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우세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이 정치이고 그런 사람들이 정치인이라면 정말 아무나 정치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적당한 쇼맨쉽에 적당한 논리력, 가끔 가다 벌어지는 몸싸움을 위한 적당한 체력까지 겸비된다면 정치인으로 자격을 갖춘 것인가?
4-5년 마다 반복되는 선거판도 특이하다. 그 판을 보면 정말 아무나 정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선거판은 결국에는 색깔논쟁으로 끝난다. 무슨 정책이 어떻고 어떤 정책이 이렇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저 놈은 빨갱이이고 저놈은 수구꼴통이라는 규정과 공격, 비난으로 끝난다. 이런 더러운 판, 진흙탕 개싸움에 끼어들 배짱과 자신이 없다면 정치입문에 관심을 끊어야 한다. 이런 판세를 보니 평범한 사람이 정의감 하나로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분명 미친 짓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각해보고 싶다. 정말 정치라는 것, 정치판이라는 것이 기성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판에 끼어드는 것 외에는 달리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없는가 말이다. 이미 정치인들이 구축해 놓은 정치의 ABC, 정치의 논리만이 정치를 하는 이들 혹은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따라야 할 논리인가 궁금하다는 말이다.
내 생각은 결코 그렇지 않다. 정치가 정치인들의 전유물이라면 결코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할 수 없으며 국회는 민의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 정치의 문은 모든 평범함 사람들에게 활짝 열려 있어야 하며 또 실제로 어느 누구라도 포부와 구상을 갖고 있다면 그 문을 두드릴 수 잇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 정치의 궁극을 국민이 직접 정치와 자치, 국정운영에 참여하는 스위스식 민주주의로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의 대선출마는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안철수는 물론 보통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엄청난 존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성 정치인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는 정치인과 대비되는 보통 사람,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정치판에서 굴러 먹던 사람이 아니지만 정치에 관심을 갖고 뛰어드는 것은 모든 국민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정치가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규정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나는 개인적으로 안철수의 지지자는 아님을 밝힌다).
기성 정치인들, 이미 그 자신의 존재감을 선포한 여야의 정치인들은 안철수의 대선출마 가능성에 대해 매우 불편해 한다. 안철수가 기존의 정치판 룰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하룻강아지로 치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책을 출간하고 토크콘서트를 하면서 그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안철수식 선거운동은 공정하지 않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가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다. 거기다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정치인들이 짜놓은 틀을 제시하면서 그 틀과 룰을 따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이야말로 불공정하기 그지없다. 자신들에게는 익숙할지 모르지만 새롭게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그보다 더 불공장한 룰은 없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는데 그것이 비법적이거나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라면 틀이 어디 있고 룰이 어디있나? 룰 운운하는 것은 결국 기득권 지키기와 다름 아니다.

그래서 안철수의 대선행보는 국민들에게 신선하지만 뻔한 장난질을 치는 기성정치인들의 구태는 더욱 부정적으로 돋보인다. 국민들,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인들에게 실망한 것이 사실이다. 선거는 항상 이념논쟁으로 끝난다. 이런 뻔하고 철지난 유행으로 덧칠해진 한국의 정치판에 안철수와 안철수식이라는 새로운 시도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끌기에 충분하고 정치의 벽을 보다 낮추는 민주주의의 진보라고 평가하고 싶다.

동의할 수 없는 관행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하는 안철수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기성 정치인들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아성에 숨어서 국민들이 동의하지 못하는 비아냥과 비난을 일삼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태를 깨고 국민들의 삶의 한 복판으로 나올 것을 촉구한다. 정치는 높은 곳에서 자기들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들 눈높이에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철수가 만드는 돌풍이 기성 정치인들에게 크고 작은 태풍이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