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다, 로켓 발사다 뭐다 해서 한참 시끄러운 정국이다. 그동안 이래저래 힘들고 무거운 이야기만 써댔는데 오늘은 조금 가벼운 이야기를 좀 써보고자 한다. 아니, 어쩌면 더욱 무거운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벌써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뭔가 꽉 차오르는 느낌이라고 할까? 

요즘 텔레비전에서 하는 드라마 중에 독특한 소재를 다루는 것이 있다. '더킹 투하츠'가 바로 그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설정은 완전 허구다. 우선 한국은 여전히 전제군주국가 아닌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왕이 통치하는 국가이다. 그리고 조선은 여전히 공산국가이다. 그런데 한국과 조선의 사이가 비교적 좋아 서로 왕래를 한다. 이야기는 세계장교대회라는 가상의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과 조선의 장교 여섯 명이 한 팀을 꾸린다는 것으로 풀어나가는데 한국 왕의 동생과 조선의 여장부 장교 사이의 연애담을 잘 버무려 재미도 더해준다.

완전 허구인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막연한 상상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막연한 상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갈증을 불러 일으키고 현실과 약간의 혼동을 느끼게 한다. 우선 조선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매우 비슷하게 그려냈다는 느낌이다. 몇 차례 평양과 개성에 가본 것이 전부이지만 그곳에서 보았던 상황과 매우 흡사했다. 거기에 최고지도자 부자의 사진이 배경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한국 텔레비전에서 이런 모습이 버젓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게다가 여자 주인공의 북쪽 사투리는 정말 그쪽 사람이 구사하는 것처럼 구성지고 맛깔스럽게 들린다. 물론 조선의 어려운 식량사정이나 노후된 건축물들, 낙후된 기반시설 등을 자극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문득문득 이게 허구인지 현실인지 혼란이 오면서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실이 될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도 한다.


엊그제 방영한 부분에서는 남북단일팀 내부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대결구도로 진행되었다. 남북 간에 긴장상황을 조작하여 대결의 국면으로 치닫는데 한국의 왕제(왕의 동생)가 조선여장교 주인공의 가슴에 총을 발사한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내 가슴이 뻥 뚫리는 것같은 착각을 느꼈다. 갑자기 백지영씨의 '총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랫소리라도 들리는듯... 그 한 발의 총성은 남북관계의 파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 우리 남북상황이라는 것이 그처럼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아주 잘 나타내주는 장면이다.

이런 소동이 일어난후 국왕이 단일팀의 해체를 선언하면서 자기 동생의 잘못에 대하여 사과를 한다. 그리고는 동생과 격한 논쟁을 벌이는데 이 대목에서 가슴이 짠해졌다. 이 장면의 대화를 소개해본다.

왕제 : 형이라면 그때 정신 제대로였을 것 같아, 사방에서 총이 날...
왕 : 그러니까 확 돈거지 넌, 생각도 뭣도 없이... 동물처럼
(중략)
왕제 : 적이잖아! 60년동안 적이다 빨갱이다 절대 믿지마라 세뇌시킨게 누군데?
왕 : 그래두... 뛰어넘었어야지, 왕족인데!

맞다! 그래두 뛰어 넘었어야 했다. 왕족이니까, 국가지도자이니까, 아니 동포니까!

비록 공포탄이었지만 총을 맞은 여 주인공은 정말 쿨하게, 너무 쿨해서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넘어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가 만약 공포탄이지만 죽이려는 의도를 갖고 발사한 총탄을 맞았다면 분노로 미쳐 날뛰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주인공은 참았고 이해하려고 했다. 썩 공감가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맞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동포니까, 결국은 하나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니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서로가 여전히 불신이 남아 있고 적대감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서로가 얼굴을 맞대고 부때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갈라져 살아온 날 60여년, 다시 만나서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기 위해 보내야 할 세월은 또 얼마나 될까? 그래도... 그래도 어서 빨리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왜 이 드라마가 이 시점에서 방영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총선 앞두고 방송사와 보수적 언론사들은 조선발 로켓발사 위기를 극대화시키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있는데 무슨 배짱으로 이런 드라마를 방영하는지 솔직히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가 나와서 좋고 기쁘고 재미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런 장면을 보면서 이런 날을 은근히 손꼽아 기다리고 기대하게 만들어서 감사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그 일당이 이 드라마를 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