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상식과 소통>에 글을 쓰면 그 글을 당당뉴스에서 싣는다. 요즘은 좀 뜸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내가 당당뉴스에 나름의 기여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당뉴스에는 유독 욕을 많이 먹을 만한 글들만 주로 실리는 것 같다. ㅋㅋ 그래도 내 글쓰기의 한계이니 어쩔 수는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고 있다.

어제 쓴 글도 그런 글 중에 하나이다.  역시나 나에 대한 도전적인 댓글들이 달렸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그리고 특히나 어제의 글은 더욱 마음에 걸린다. 내가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이거나 그동안의 목소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 것이 나의 명백한 한계일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의 선의의 2억원은, 정말이지 나에게는 물론이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큰 상처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일각에서는 곽 교육감을 편들고 당당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다. 요즘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나는 꼼수다'에서도 곽 교육감이 혼자 대신 싸워줬던 때를 기억할 것을 주문했나보다. 그런 입장도 이해가 간다. 어제 저녁에는 곽 교육감과 친분이 있는 교육계 저명 인사를 잠시 만나서 내부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한 분은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매우 곤혹스러워 하는 입장이었다.

아무튼 곽 교육감의 처신은 소위 진보를 말하는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러운 상황에 내몬 것은 분명하다. 곤혹스럽다는 표현보다는 참담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얼마나 참담한지 시기 적절할 때 이 일을 확대생산해내는 검찰의 비열하고 치졸한 행태에 대해서조차 대꾸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저 어느 정당 사람들보다 기술이 부족해서 일을 말끔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할 뿐이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진보가 옳은가, 보수가 옳은가?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인가?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진보였다. 진보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진보라는 단어와 진보적 그룹에 얽매였던 것 같다. 물론 진보가 보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한 가치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지만 나는 진보적 가치가 아니라 진보 자체에 천착했었다는 반성이 들었다.

한국사회는 진보와 보수를 칼날같이 양분했다. 그래서 진보인지 보수인지 그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상한 강요가 횡행하는 사회이다. 그러다보니 큰 입장만 정리하면 원하건 원하지 않건, 혹은 자발적이건 등 떠밀려서이건 진보인지 보수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그리고는 진보적 그룹 혹은 보수적 그룹에 동참하는 것이 자신의 진보성 혹은 보수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나는 진보인가?

이제부터 나는 진보주의자를 자처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다고 보수주의자가 되겠다는 말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진보 아니면 보수 밖에 없다지만 나는 진보주의자도 아니고 보수주의자도 아닌 제3의 지역에 서고 싶다. 그것은 휴머니스트의 자리이다. 물론 진보주의자들은 휴머니스트가 곧 진보주의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이것은 어쩌면 한국사회의 비뚤어진 자화상일 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나는 휴머니스트, 휴머니즘의 자리에서 나의 존재를 발견하고 싶다.

휴머니스트는 그 사고의 중심에 인간을 둔다. 인간이 최고로 잘났다는 교만함이 아니라 인간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겨야 한다는 입장을 갖는다는 말이다. 진보주의는 인간을 중심에 둔다. 그러나 인간이라고 해서 다 같은 인간은 아닐 것이다. 참다운 사람됨을 이루는 것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다운 인간은 상식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어떤 일이 일반적인 사고방식에 용납될 것인가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길을 걷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휴머니스트의 길이다.

거기에 나의 종교적 고백을 첨가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의 길이라고 단언한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땅의 한 가운데로 예수가 찾아오신 것은 예수 자신도, 하나님 자신도 인간,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보신다는 증거이다. 사람이 신의 영광을 위한 보조적 무대장치가 아니라 신 자신의 목적이라는 고백이다.

진보건 보수건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일을 할 때라면 언제라도 용납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진보적인 사람도 인간을 보지 못하고 진보적인 가치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보수적인 사람도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그 가치와 정책이 진보주의에서 주창되었느냐 아니면 보수주의에서 주창되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사람을 사람답게, 생명을 살리는 일이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판단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이 없이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 혹은 민노당, 진보신당이냐 더 나아가 사회당이냐 하는 당파적 논리에만 휩싸이다보면 반쪽짜리 진보, 반쪽짜리 보수가 되어 진흙탕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결국 가치 때문에 사람을 놓치게 된다. 사람 없는 진보와 보수는 정치투쟁에는 격렬하지만 정작 사람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진보냐 보수냐라는 명찰에만 집착하지 않고 명찰과 관계 없이 사람을 살리는 일, 사람을 짐승이 아니라 사람답게 하는 모든 시도와 노력들에 마음을 쓰기로 했다. 물론 대부분의 진보주의자는 휴머니스트들이다. 그러나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인간 없이 진보만 진보적 가치만 추종하는 방식은 단호하게 거부하겠다는 의미이다. 진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진보적 가치, 휴머니즘적 가치와 동일시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혹시 내가 정도를 어긋나 또다시 명찰을 따라 가는 발걸음을 걷는다면 단호하게 지적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사족으로 곽노현 교육감은 휴머니즘의 관점으로 볼 때 무상급식을 관철시키는 일에 매우 투쟁적이었고 칭찬할만하지만 적절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처신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 인간 중심의 복지정책에 위해를 줄 여지를 남겼기 때문에 50점밖에는 못 주겠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