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위기의 일차적 책임은 북한정부에 있다.

남북, 속히 변하지 않으면 함께 망한다②

 


1. 90년대, 험난했던 고난의 행군시기

현재 남북관계 파국의 중요한 한편 책임이 한국정부에 있다면, 또 다른 책임은 당연히 북한정부에 있다. 지금의 위기를 이야기하기 위해 60 여 년 남북분단사 전체를 말할 필요는 없다.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매우 어려운 생존조건에서 유일한 지도자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동구 사회주의권의 잇따른 몰락과 91년 소련 붕괴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갑자기 혼자 힘으로 서야하는 외톨이 신세가 되었다. 계속되는 경제실패로 이미 자력갱생의 부담을 경험하고 있던 터에 닥친 사회주의 혈맹들의 몰락은 독자생존에 부담을 안게 했다. 한국과의 오래고 버거운 체제경쟁으로 발전동력이 상실된 북한은, 마침내 그동안의 명분을 뒤로 하고 한국과의 분단현실을 인정한 채 공존의 큰 발을 내디딘다. 1991년 남북유엔동시가입이다. 이어 기왕에 내디딘 발걸음에 더해 남북의 거침없는 행보는 이어져, 그해 12월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를 타결함으로써 남북 간 모든 부문에 걸친 화해와 교류, 협력을 시도하게 된다. 게다가 1994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까지 합의하는 등 분단 40여 년 만에 남북은 파멸만 부르는 대치상황을 끝내고 본격적 화해와 공존의 길로 들어서는 듯 했다.

바로 그 때 이 모든 작업에 적극 앞장섰던 김일성 주석이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사망한다(1994년 7월). 잘 알다시피 당시 김일성 주석은 북한의 거의 전부였다. 이어 95년 권력서열 2위이던 군부실세 오진우, 김일 등도 잇따라 사망하며, 혁명 1세대들도 급속히 사라진다. 거기에 자연재해까지 이어졌다.

유엔 평가단 보고서에 의하면 95년 7월, 8월에 걸쳐 내린 집중 폭우로 “전 국토의 75%에 해당하는 1백45군과 8개 지방도시가 피해”를 입었으며, “10만 가족” “5백20만 명이 집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기록적인 폭우는 96년에도 이어져, “95년에는 사망·실종자가 68명, 96년에는 116명”, 수재민은 “95년 520만 명, 96년은 327만 명”, 피해액도 95년에는 약 150억 달러, 96년에는 17억 달러에 달하는 재난을 당했다(한겨레 2006년 8월 4일 자 참조).

이러한 계속되는 타격으로 북한경제는 급격히 붕괴되고, 국가는 기초적인 식량조차 공급하기를 포기했다. 북한정부는 이 위기를 항일유격대 정신으로 돌파하자며 ‘고난의 행군’을 선포했지만, 이 기간 동안 2,100만 명 인구 중 10%가 넘는 약 300만 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이러한 위기를 당하여 미국 클린턴, 부시 정부와 한국 김영삼 정부(1993~1998년)는 기본적으로 북한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정책을 펼쳤고, 이는 북한이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는데 큰 제약요인이 된 것이 틀림없다.


2. 그러나 현재 북한 위기의 최대책임은 북한정부에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대내외적 요인들을 이해한다고 해도, 현재 북한이 당하고 있는 위기상황에 대한 최대 책임은 일차적으로 북한정부에 있다.

①결정적인 시기를 놓쳤다.

90년 대 전후 총체적 위기를 당하여 북한정부는 자력갱생의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국가적 명운을 걸고 대외개방과 경제개혁을 통해 재기를 노린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호의적 반응을 신뢰하지 못한 북한은 ‘평화와 체제존속’을 교환하는 수단으로 핵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였다. 북한정부의 ‘벼랑 끝 전술’은 한국,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앉히는데 일정정도 성공하였고,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은 기초적인 화해, 협력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남북은 지금처럼 퇴보하는 정책기조를 막아낼 수 있는 보다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하는데 실패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북한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한대표단 참가 등 한국상황은 보수기득권층도 어쩔 수 없는 급격한 화해분위기로 접어든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 북한 정부는 완전히 판을 깨지는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소극적인 자세로 한국보수층의 의구심을 자극한다. 특히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의 서해교전 도발은 ‘퍼주고, 뺨 맞았다’는 보수기득권층의 논리를 정당화시켰다. 또 2000년 정당회담 당시 약속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끝내 이뤄지지 않아 우호적인 한국정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는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그래도 나타나 1기 때와는 사뭇 다르게, 상대적으로 북미협상에 의지를 보였던 부시 2기 정부 시절에도 북한정부는 더 유리한 조건만을 탐색하다가 시간을 낭비했고, 출범 초 평화의제에 관심을 보였던 현 오바마 정부에서도 상당기간 매우 애매한 태도를 보이며 미국 내 협상파들의 입지를 줄였다.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는 북한이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을 나는 지나친 ‘몸값 올리기’와 ‘김정일 체면 지키기’로 해석한다. 기왕 협상하는 김에 조금 더 몸값을 올리려는 욕심과 한국방문에서 혹시 있을 수도 있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반대시위를 매우 두려워하였다.

이러한 실기(기회를 놓침)로 인해 결과적으로 지금 북한은 매우 다급해 졌지만, 그런 약점을 알고 있는 한국과 미국은 갈수록 시간끌기만 하고 있다. ‘통 큰 지도자’(?) 김정일은 결정적인 순간에 외부세계에 대한 소심함과 체면 차리기로 아까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②인민들 스스로의 자력갱생을 막았다.

그러나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은 북한정부가 정권적 기득권이 아닌 자기 인민의 생존을 가장 중요시하는 정부인가 하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북한백성들의 90년대는 실제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통계의 차이는 있지만, 당시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어려운 10세 이하의 어린이 세대가 거의 몰락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계속된 자연재해와 경제난으로 교통망이 붕괴되어 국제구호품들도 구석구석 제때에 잘 공급되지 못하였고, 사회주의사회의 장점이라는 국가기본공급(배급)마저 끊어져 인민들은 생존의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인민들은 자기생존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이전에도 있어왔던 조-중 국경 너머 중국 땅에서의 물자공급, 해외가족들을 통한 반입, 심지어 더 이상 가동되지도 않아 생산품을 공급해 주지도 못하는 공장 및 기업소의 비품이나 기계를 훔쳐 개조, 가공하여 장마당에 내다 파는 일까지 생겨났다. 살려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물론 거기에 국제사회로부터 들어오는 구호품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당연하다.

그게 밑천이 되어,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생존을 위한 자연스런 장마당이 형성된다. 이미 국가 자체가 인민의 생존을 책임지지 못하므로 처음에는 당국에서도 이 불법적 장마당을 허용, 양성화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정정도 국가 및 당기관과 군대까지도 장마당을 통해 자기들의 필요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국제구호품이 포장 채 장마당에 나와 팔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마치 우리나라 도깨비시장에 가면 “비행기와 탱크 말고는 다 구한다”는 말처럼 이젠 장마당에서 없는 것 없이 다 구하고, 먹을 수 있게 될 정도다.

이 정도쯤 되니 당연히 북한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인민들이 실생활에서 당과 정부보다 시장을 믿기 시작하니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10월,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시장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지고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저지하자”는 다음과 같은 지시문을 배포한다.

“…1-1 시장은 인민들에게 생활상 편의를 주는 장소가 아니라 국가 규률과 사회질서를 문란케 하는 장소 또는 장사군들이 상품가격을 올리고 폭리를 얻는 돈벌이 장소이다. 1-2 시장은 반드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비사회주의의 소굴이다.”(류경원/림진강 제2호)

그러나 북한사회는 이미 시장 없이 국가공급만으로는 작동되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포고를 올렸지만 시장을 전면 폐지한 게 아니라, 생계형 보따리 장사들만 단속할 뿐 진짜 기업형 상인이나 당과 군의 음성적 거래는 여전히 묵인하여, 구조만 더 왜곡한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인민생존을 표면적 사회주의 구호만으로 책임지지 못하면서도, 인민들의 자생노력조차 오락가락 허용과 제재만 반복함으로써 더더욱 힘겨운 모습이 지금 북한인민들이다.

③북한식 ‘강성대국’은 정말 인민을 위한 것인가?

앞서 보았듯이 북한 자체의 존립을 위해서 군사부문에 더욱 집착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행하는 체제수호가 정말 인민들을 위한 것인가?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장미 빛 미래’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의심하면서도, 북한정부의 공식 발표들에 대해서는 액면 그대로 믿어버리는 잘못을 범해서도 안 된다.

북한의 당, 정, 군 등에서 공식적인 국가경제 외에 다른 주머니들을 차고 경쟁을 벌이는 기이한 현상도 사회주의 고유의 문화가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위한 ‘비자금’ 마련에 소용되는 것은 이미 공연한 사실이다. 2009년 12월에 행한 실패한 화폐개혁 역시 후계자인 김정은 업적쌓기 차원에서 면밀한 검토없이 단행된 깜짝쇼였다. 그러나 화폐개혁 실패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불만이 터져 나오자 모든 책임을 지고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하는 것으로 서둘러 막을 내렸다. 최고지도자와 로얄 패밀리들을 위해 국가 정책 자체가 춤출 수 있는 사회가 슬프지만 북한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북한사회에 대해 바로 알고 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북한을 ‘망해버려야 할 괴뢰정부’가 아니라, 한반도의 운명을 함께 협의해야할 대화파트너로 인정한다면 한반도 이북의 2,300만 동포들을 책임지는 정부가 되도록 견인해야 할 것이다. 북한정권은 더 이상 미국과 한국 등 외부에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한반도 이북 유일의 정부임을 스스로 책임 있게 증명해야 한다. 살기 위해 국경을 배회하는 불쌍한 인민들을 ‘배신자’로 찍어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은 결코 책임 있는 정부의 모습이 아니다. (계속)

▲ 구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