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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우상> 작가 박승희와의 인터뷰
그림손갤러리
Gallery Grimson
http://www.grimson.co.kr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
일시 : 2010년 4월 14일 (수) ~ 27일 (화)
필자는 매월 두 차례 인사동부근에 있는 예수마실교회로 마실을 간다. 마실을 가는 이유는 그 곳에 들리면, 동시에 세 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를 함께하고 코이노이아의 시간을 가질 때, 이제 아흔에 가까운 춘추시지만, 정정하시고 오롯하신 박형규 목사님을 통해서 1960대 이후 대한민국 사에서의 한국교회의 역사를 그 치열한 중심에서 활동하셨던 목사님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고 - 5월 6일 오후 5시에 88세의 박형규 목사님의 삶을 대화록으로 풀은 <자서전출판-창비-기념회>가 종로 YMCA에서 열린다-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동심으로 돌아가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기쁨이 쏠쏠하고, 그리고 예배와 마실을 끝내고 나서, 본격적으로 인사동의 각 전시관들을 돌면서 전시작품들을 통해서 적지 않은 인싸이트를 덤으로 받기 때문이다.
인사동의 전시는 대부분 화가동인들의 그룹전이나, 아주 드물게 외국작가의 주목할 만한 작품을 전시하는 경우 이외에는, 그렇게 독창적인 전시는 의외로 찾기 힘든 편이다. 그런데, 최근에 필자에게 참 신선하게 다가왔던 전시가 있어서 독자들과 함께 그 느낌과 인싸이트를 나누고 싶어서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도록의 파일들을 제공받고 기사를 작성해 보기로하였다. 일단 필자는 전문적인 미술비평을 전공한 평론가는 아니지만, 96년 PC통신시절 활성화되었던 미술동호회(Space And Colar=SAC)의 회원으로 15년 동안 활동하면서 직접전시에 참여도 해보았고, 전시기획준비에도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00년 이후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이후에도, 서양미술사와 한국미술사에서 종교적인 특히 신학적인 테마를 주제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줬던 예술가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항상 카톨릭 신부·수사·수녀분들의 작품은 적지 않게 접할 수 있었지만, 깊이있는 신학적사색이 담겨 있는 개신교화가들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 그동안의 적지 않은 아쉬움이었다. 그런 차에, 드디어 박상희 작가의 <시간과 우상>이라는 전시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일주일 전에 2주간의 전시가 성황리에 마쳐졌다. 비록 모니터상으로 작가의 작품을 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해도, 필자와 함께 어느 신학도는 미술 작품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구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과 서로 공명되기는 부분들은 이런 지점이고, 서로 다르게 보는 지점은 이런 것이구나! 하시면서, 즐겨 주셨으면 한다.
다음은 작가 박상희의 약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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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희 |
박상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서울대강사역임, 중앙대학교 대학원 강사 한국미협, 서울조각회, 현대공간회, 용인 현대조각회. paris 소나무미술가협회 회원2001년-2004년 paris 체류
개인전
2010년 그림손 갤러리 2008년 국립레핀예술대학교 미술관(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Pussia Sankt Peterburg, Repin Academy Museum2007년 아트사이드2006년 인사아트센터2004년주불한국문화원(FRANCE,PARIS)한국관광공사. 대한항공후원2003년오픈스튜디오전(Bd.desArches,Issy-les-Moulineaux, France) 1993년 금호미술관 기획 (송은문화재단 후원) 등 10회
먼저, 그와 4.25(일)전시장에서 함께 한 인터뷰를 싣는다
박운양 : 나이에 비해서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비결을 알려 주실 수 있는가?(인터뷰는 그날 바로 전시관에 전화한 후 성사되어서 작가의 나이만을 짐작하고 아무런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전이해 없이 만남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일단 만나자 마자, 자세히 그의 얼굴을 보면 관록이 느껴지지만, 일단 너무 젊어 보인다는 것이 놀라워서 이 질문을 먼저 던졌다)
박상희 : 일단 타고난 얼굴이 좀 동안이고, 이번 전시의 주제처럼 시간에 대해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매년 달력이 연말에 만들어지고, 해가 바뀌면 그 달력대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나는 모든 개인에게는 두 가지의 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방안에 걸고 있는 달력만이 아니라 내면의 의식 속에서의 달력도 엄연히 존재한다. 종교적으로 특히, 신학적으로도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이 다르듯이, 따라서, 예수는 33년의 생을 살았다고 성서가 기록하고 있고, 부처는 81년을 살았다고 하지만,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는 말미에 이렇게 적지 않았는가?
“이 밖에도 예수께서는 아주 많은 일을 행하셨다. 그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기록한다면, 그 기록한 책을 다 담아 두기에는 이 세상도 비좁을 것이다”(요한복음 21:25)”
따라서 작가의 입장에서 예수의 실증적인 생애는 부처의 생애에 비해서 반도되지 못하지만, 내면의 달력에서 예수의 생애를 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작가의 실존에서 보자면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작품에 몰두하고 거의 잠을 하루에 2~3시간 정도 밖에 자지 못하고 4~5개월을 보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시간은 전혀 다르게 흐른다. 나는 몰입에 비교적 잘 빠져드는 작가에 속하며, 그 몰입의 무시간성의 체험들이 나를 젊게 보이게 한다고도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운양 : 일단 시간이라는 테마와 우상이라는 테마를 결합시킨 통찰력이 대단하게 다가온다. 사실 이 주제는 내가 공부하고 있는 신학적 테마와 거의 그대로 일치된다. 물론, 박상희 작가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적 오브제도 작품에 도입했기 때문에 오히려 토착화신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시간과 우상> 전시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박상희 작가의 문제의식과 예술적 지평이 <시간과 우상>이라는 전시에 도달하게 된 과정을 간략하게 알고 싶다.
박상희 : 3년 전에 마오를 오브제로 한 작품의 전시를 한 바 있다. 그 이유는 68운동을 통해서 유럽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에게서 엄청난 평가를 받기도 했던 마오지만 그가 문화혁명들을 비롯한 독재자로서의 극악무도한 처신으로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타임즈에서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철저한 독재자의 전형으로 히틀러나 스탈린보다도 마오가 평가받기에 이른 과정에 대한 일정한 학습이 있었고, 그리고 현재 중국의 인민들이 마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주목했다. 현재 중국에서는 마오가 기독교의 예수나 불교의 부처의 아이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권력으로서의 속성이 매우 오버랩되고 있는 지점이 적지 않음을 보고서 놀랐다. 텐안문 광장에 그 엄청난 크기의 마오 초상이 설치된 것은 이를 반증하고도 남는다고 본다.
전 세계의 그 누구도 그만한 크기의 초상화로 표현된 이는 아무도 없다. 아마도, 북한의 역사 속에서 김일성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출발은 순수한 의도로 민족의 해방과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출발했던 이들의 사상이 상당한 세를 얻는 조직으로 권력화하고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과정을 거치면서, 거의 대부분 유사종교형태를 띠게 되어 버리는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 역사 속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보게 되는 인간의 조직과 의식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3년전 마오를 오브제로 발표한 전시에서는 그 핵심이 이데올로기였다면, 이번 전시 <시간과 우상>은 그것을 종교적 차원과 좀 더 밀접하게 결합시킨 것이다. 몇 해 전에 미국의 어느 작가가 미사일을 들고 있는 예수를 조각 작품으로 전시하면서 큰 파장이 있었다. 권투장갑을 끼고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를 통해서 그 빨간색의 글러브가 주는 공격성과 예수가 흘린 피의 무력성을 대비하고자 했다. 상식적으로 기독교사의 우상파괴운동이 담지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항상 철저한 반대는 그 반대의 명분은 타당하다고 해도, 의도하지 않았던 더 큰 난감한 부산물을 형성해 온 것이 인류역사의 질곡이 아닐까? 한다.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의 극단성이나, 프랑스혁명이 반혁명으로 접어들게 된 로베스피에르의 사례도 이를 잘 드러낸다고 본다. 역사는 항상 명분을 쥐고 있는 이들의 폭력적인 극악한 태도에 의해서 오히려 이름없는 민초들은 고통의 한가운데로 더 가까이 가버리는 역설을 표현하고 싶었다
박운양 : 신학적으로 빨강색의 글러브를 끼고 메달려 있는 예수상은 일단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대단히 불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빨강색이 예수가 무력하게 흘렸던 피의 빨강색과 대비된다는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예수를 십자가에 메달아 놓고서, 그 뒤에서 종교권력을 행사하려는 이들의 맹목적인 폭력적 공격성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이런 체험이 있다. 일반대를 다니던 시절, 학교가 가톨릭 예수회재단이어서, 강의실를 비롯한 학교의 모든 공간에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상을 모든 공간의 정면 중앙위에 설치해왔다. 종종 도서관이나 열람실을 이용하려고 모교를 찾곤 하는데, 어느날 관상기도를 30여분 드리고 난 다음, 눈을 떴을 때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상이 매우 불편하게 다가왔다. 고통 받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신성하거나 거룩하다가보다는 그저 나의 신앙이 예수를 항상 고통받게 하는 전제위에서의 신앙이라면, 이것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고, 거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의자를 놓고 그 십자가상을 제거했다.
그런데, 그러자 마자, 어느 열람실에 있던 학생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가톨릭교도도 아니었고, 개신교 보수적인 신앙단체 소속의 학생이었는데, 나의 행동을 신앙적으로 불경스러운 행위로 간주했다. 그리고 나서 서로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서로의 의식의 갭을 더 노골적으로 확인하는 것 이외의 대화는 나눌 수 없었다.
박상희 : 충분히, 그 보수적인 신앙단체 소속의 학생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제기하는 <시간과 우상>전시의 의도도 바로 종교가 가지고 있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성의 의미에 대해서 성찰을 해볼 것을 촉구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신성성이라는 것이 획득되게 된 인간의 한계상황을 돌파한 아이콘으로서의 상징성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신성성이 순식간에 우상의 기능으로 전락하는 것을 우리는 현실에서 적지 않게 보고 있다. 과연 4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정신에서, 반야심경을 비롯해서 수없이 많은 경으로 전해지는 부처의 정신에서 보자면 자신을 신성시하면서 우상화하는 그동안 역사적 맥락들은 서로 공명할 수 없다고 본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시간이 다시 말해서 역사가 전제되어지고서 우상이라는 기능이 가능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우상의 역할 자체가 시간을 삼켜 버렸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미디어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재 지구촌의 현실에서 보자면, 우상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유행이 끊임없이 변덕을 부리면서 그래도 계속되듯이, 히트곡을 통해서 한때를 풍미한 가수는 그 다음 유행가를 부른 가수로 인해서, 일정한 시간의 격차의 차이는 있지만, 뒤로 밀려가듯이 우상이 함의하고 있는 시대적 의미와 유행이 함의하고 있는 시대적 의미는 매우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은 자신의 자본주의적 현실에서 계속해서 우상을 필요로 하고 있는 존재라고 파악된다. 블루오션이라는 경제경영학의 개념도 이전의 사고에서 발견하지 못한 엄청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시장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하자면, 알맹이보다는 껍데기에 아니 포장지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보는데, 그 유행이라는 적절한 포장지에 현혹되고, 그리고 계속해서 포장지는 때가 지나면 식상하니 바꿔갈 수밖에 없는 것이 유행에 충실한 것이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의식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아이콘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의 차별점은 근본적으로 시간을 뛰어 넘은 차원에서 압박하는 상징성이다. 물론, 불교도 그렇고 기독교도 역사 속에서 매우 다양한 접근으로 램브란트처럼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종교성을 깊이있게 드러낸 탁월한 예술가들도 있지만, 오히려 종교적 상징성의 특히 신성성의 범접할 수 없는 영역자체가 그 자체의 한계로 우상화되는 지점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성찰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성서의 역사 속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야훼의 계명이 새겨져 있는 돌판을 금송아지 상을 향해서 던진 장면은 특히 의미가 심장하다고 본다. 출애굽전의 이스라엘 민족의 상상으로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하는 것은 현재의 입장에서는 우상이었지만, 당시 이스라엘민족의 역사적 상황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요소가 적지 않다고 본다.
당위적인 해석으로 모세가 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던진 것을 기독교인들은 받아들이지만, 하나의 엄청난 우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렇게 쉽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를 우상파괴의 역사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고도 본다.
박운양 : 신학도의 입장에서 해야 할 이야기를 지금 작가가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놀랍다(웃음) 좀 전에 3년전 마오를 오브제로 한 전시를 준비했을 때도 피력했지만,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상당한 학습을 하는 것 같다. 나와 가깝고 박상희 작가의 후배되는 분은 토착화신학자들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다석 유영모 선생님에 관해서 대단히 깊은 폭넓은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면서 무척 놀란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의 서재를 보게되었는데, 다석 유영모 선생님에 관한 국내의 저서들뿐만이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영문저서들도 서재에 꽂혀있는 것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흔히 어떤 직관적인 감각을 더 선호하는 이들이지 학자처럼 언어를 통해서 논리적인 사고나 비평적인 사고에는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라는 선입견이 완전히 깨지는 체험을 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계속해서 느끼는 것이지만, 박상희 작가의 학습력이 대단한 것 같다. 도록을 통해서 보여지는 통찰력있는 시적인 글들이 그래서 더 오롯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박상희 작가에게 있어서 책은 어떤 의미인가?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박상희 : 좀 뜬금없긴 하지만, 나는 먼저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을 살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다석 유영모 선생님도 그렇게 한글을 푸셨지만,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백성들의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보시고서 창제하셨지만, 그래서 언어학적으로는 소리글자라고 규정되지만, 한글의 알파벳자체는 이미 예술적 지평, 다시 말해서 이미지의 놀라운 조화와 패턴의 무한성을 뿌리로 하고 있다.
물론, 이미지로 보면 초정 중성 종성이 결합되는 체계로 인해서, 영어처럼 일련으로 이어지는 알파벳이 아니기 때문에, 문익환 목사님의 평전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만일에 한국어와 영어를 능통하게 사용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영어에 비해 한국어는 가독성이 떨어지는 아주 약간의 단점은 있다. 그러나, 이 단점은 또한 보다 명확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이 걸리게 되는 장점의 역할도 하고 있다.
작가 박상희의 입장에서 언어와 이미지는 분리되어지지 않는다. 분리될래야 분리될 수 없다. 예술가들은 특히 화가들은 감성적이고 직관적이어서 언어적인 사고보다는 이미지적인 사고에 더 정통하다는 관점에 동의할 수 없다. 다만 표현을 시각적인 매체를 통해서 할 뿐이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건성 건성보고서 비평하는 평론을 쓰는 이들을 나는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 물론 주례사비평처럼 그런 글도 신뢰하지 않는다. 다만, 예술가들이 고흐가 테오 동생에게 보낸 편지처럼, 좀 더 치열하고 전위적인 위치에 있을 뿐이라고 본다.
박운양 : 이번 전시가 이전의 다른 전시와 비교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점이 있었는가? 적지 않게 교류하고 있는 화가들의 전언으론, 전시가 성황리에 끝났느냐 보다는, 그 전시를 준비하면서 유독 쉽지 않은 체험의 과정을 거친 전시가 더 또렷한 기억으로 다가온다는 관점을 전제하면서 던지는 질문이다.
박상희 : 참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대답하겠다. 앞으로 신께서 남은 인생을 얼마를 허락하셔서, 더 다양한 어떤 전시를 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시간과 우상>전은 전시를 준비하면서 남다른 체험을 했다. 전시할 작품을 모두 마무리한 날, 새벽 내내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그런데, 솔직히 왜 대성통곡의 오열이 터져서 날이 밝을 때까지 울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참 쉽지 않다.
특히 전시 4개월 동안 매일 2~3시간을 자고 식음을 전폐하면서 작품에 매달렸는데, 이 번 전시는 특히, 몰입이 깊었다. 한 작품을 토해내기 위해서 이틀간 잠을 자지 못했는데, 이틀 48시간이 거의 40분처럼 느껴졌다. 새벽 내내 대성통곡하고 오열하고 나니, 지쳐서 잠들었는데,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뭔가 달라진 나 자신이 느껴졌다. 이런 체험들은 그동안 전시를 준비하고 작품에 몰두하면서 간헐적으로 오긴 했지만, 이번 전시 준비처럼 강렬했던 것은 꽤 드물지 않았나 싶다.
박운양 : 그럼, 가장 궁금한 작품을 보면서 질문을 드리기로 하자. 권투장갑을 끼고 있는 예수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언급을 했으니, 다음 작품 낡은 시계가 새겨져 있는 목각부처상에 대해서 가장 궁금한 질문은 부처와 시간은 어디에서 만나냐는 것이다. 그것이 왜 왼쪽 뺨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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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희/시간의초상-붓다 |
박상희 : 물론, 왼쪽 뺨 뿐만이 아니라, 오른쪽 뺨에도 그보다 적지만 두 개의 시계가 배치되었다. 왼쪽 뺨에 새겨진 시계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4복음서에서 말씀하신, “오른쪽 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쪽 뺨도 돌려 대라”(마태복음 5:38-42)의 정신과 부처의 왼쪽 뺨에 있는 시계는 적지 않은 관련성을 지닌다. 자세히 보면 그 시계의 시간도 적지 않은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부처의 왼쪽 뺨의 소멸해가는 시계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한계를 드러내려는 장치이다.
시간은 결국 인간을 강박으로 몰아가고 결국 인간의 욕망은 순식간에 탐욕으로 드라이브가 걸린다. 그리고 폭력이 출현한다. 시간을 삼켜버린 우상의 기능도 폭력으로 가시화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는 매우 정치한 구조로 이루어진 은폐된 암시적 폭력의 작동기제가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로 포장되는 체계이기 때문에, 폭력은 신체에 유해를 가하는 폭력으로 한정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고, 오히려 저열한 피해자의식을 범죄심리학적으로 규정받을 수 밖에 없는 이들은 폭력을 조장하면서 피해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고 이득을 얻으려한다. <시간과 우상>이라는 전시의 함의는 사실 '암시적 폭력과 가시적 폭력의 탈바꿈'에 관한 성찰이다. 불가의 시간관은 처음과 끝이 없다. 수미산이 학의 날개로 달아 없어지는 세월을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부처는 연기를 논한다. 결국엔 이 연기의 실체는 서양적인 사고 속에서는 관계의 사유로 정리하려하는 강박이 있지만, 어느 정도는 타당한 사유방식이라고 본다. 마르틴부버라는 유태인철학자의 대표적인 저서 Ich und Du에서 그가 불교를 관계성에서 논한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작품을 생산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작품은 완성되어져 있는 미래가 맨 앞에 서고 현재라는 진행형의 위치는 완성된 작품을 가다듬는 것이며, 따라서 과거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과거와 미래는 시계의 동작 속에서 실증적으로 가시화되는 것이지, 사실 엄밀하게 논하자면 미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다.
위대한 신학자라고 일컫는 어거스틴이 시간에 대해서 '영원한 현재'라고 명징하게 드러낸 것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불가의 시간은 니체의 영원회귀와 잇데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연기의 체계의 불가의 원형이나 나선형의 시간관과 알파와 오메가를 전제한 그래서 인류역사의 분깃점을 형성한 예수를 통한 이전과 이후의 기독교를 전제한 서양의 과학사상의 직선적인 시간과의 대립과 충돌과 그리고 화해의 지평융합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한국 불교학자들은 윤회사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서 부처의 핵심통찰인 연기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흐름에 대해서 '反윤회 사상'으로 중지를 모으고 있다. 개신교의 어느 신학자의 '반신학의 미소'와 일맥상통하는 지평이지 않을까? 싶다.
오브제 목각부처의 정수리에 청색보석을 밖은 의도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그냥 어울릴 듯 싶어서 배치했다. 감상하는 이들의 실존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나올 것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으면 한다.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시간을 삼켜버린 우상의 실체적 속성과 색감이 주는 효과를 상상해 보면 재미있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는 이것으로 정리하고, [작가의 노트]를 허락받아서 옮겨본다
보이는 시간과 보이지 않는 시간에 대하여
시간은 그릇이다
그 속에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시인 기형도가 있었고,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가 있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한 예수도 있었다.
배반과 사랑 욕망과 주검, 그리고 전쟁도 있었다.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한 시간의 역사 속에서 나는 십자가의 붉은 풍경을 보았고 무소유의 소유도 보았다.
사랑과 증오, 용서, 또는 별리했던 그 반복의 시간이 존재의 숲이고 나는 그 안에서 사유하고 욕망한다.
그러한 시간이 내겐 오브제이다. 하나의 질료로서 예수와 부처 역시 그러하다.
시간은 역사의 모태이자 역사는 시간의 기록이 아닌가.
나는 그 곳에서 형태를 만들고 색을 입혀보이는 시간과 보이지 않는 시간에 대한 나의 입체적 은유가 하나의 시가 되기를 원한다.
[ 박승희의 작가노트]
아래의 글은 전문적인 미술평론가의 작품해석이다. 신학과 미학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작가의 허락을 받고서 게재한다.
우상(偶像)의 시간 또는 시간의 우상
십자고상의 거룩한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양 손에 권투 글로브를 낀 채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를 표현한 박상희의 은 그 형상에 있어서 신성모독으로 비쳐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구원을 위한 고귀한 희생을 상징하는 가시면류관이 두피에 파고드는 가시를 엮어 이마에 씌운 것이 아니라 벌거벗은 여성의 몸들로 구성된 를 보고 신앙심이 깊은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대부분 경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에 대한 그의 모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러시안룰렛이란 위험한 게임 앞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는 남자를 형상화한 <고린도전서 13장 14절>에서 예수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파멸을 앞두고 있는 고독한 승부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인간을 구원할 메시아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 아래 만들어진 하나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콘이 특정대상을 연상시키는 전형(典型)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분명 도발적이다. 그렇다고 그의 이 도발적인 작품들이 반그리스도교를 표방한 것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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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희/몽상의 시(時) |
그는 유사한 맥락에서 현대 중국에서 또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마오쩌둥 시리즈를 제작한 바 있다. 아직까지 중국 현대미술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마오쩌둥의 아이콘은 혁명가이자 현실세계의 정치지도자로서 마오쩌둥을 지시한다기보다 그가 추진했던 문화혁명과 그 유산에 대한 환유(換喩)라고 볼 수 있다.
박상희가 재현한 마오쩌둥의 아이콘이 탈정치적인 것처럼, 권투글로브를 낀 채 공중에 매달려 있거나 여성의 벗은 신체들로 엮은 면류관을 쓰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내기를 걸고 있는 예수의 형상 또한 탈종교적인 것으로 봐야한다.
고린도전서 제13장 14절은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14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가능성의 여백이다. 러시안룰렛 게임을 통해 붉은색으로 칠해진 한 남자가 걸고 있는 내기는 그 여백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맥락에서 사랑의 결과는 구원일 것이다. 인류로 향한 사랑으로 죽음을 받아들인 예수는 따라서 구원의 상징이자 구원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격발 직전의 위기를 표현한 이 작품에서 구원을 말한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자 사실을 부회(府會)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것은 작가가 예수를 통해서 이 시대의 현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세계 여러 곳에서의 자살 폭탄과 테러, 전쟁 등의 시대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기독교 도상학에서 십자가는 수난과 부활, 구원의 상징이었지만 박상희의 작품에서 이 도상들은 과거란 시간을 현재로 호출하는 요소로 차용했다. 즉 인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예수가 남긴 에피소드, 그 에피소드를 현실 속에서 느끼도록 만드는 강한 흡인력을 지닌 상징물들을 견인해냄으로써 그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하나의 오브제로서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사실(史實)의 증거로서가 아니라 시간에 대한 작가 특유의 상상과 사유에 의해 가공된 것이므로 허구이다. 글로브를 낀 예수는 작가로 하여금 그리스도 손에 빨간 글러브를 낀 작품을 하게 한 시대적 배경과 욕망과 성애(性愛)를 암시하는 면류관을 쓴 예수, 도박사인 예수는 신앙의 차원에서 허구를 넘어서서 악마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적(敵)그리스도적 발상으로 비쳐지겠지만 작가가 이것을 통해 인류의 구원을 표방하는 종교란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시간은 모든 존재를 불연속 상태로부터 연속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삶은 유한하다. 이 유한함이 삶의 드라마와 파노라마를 만든다. 예수의 십자가도 그런 점에서 누적된 시간의 한 지점에 위치해 있는 사건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류의 문화유산인 피라미드도 시간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망이 낳은 결과물이며, 영원불멸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영약(靈藥)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사람들을 파견하고 자신의 현실을 무덤 속으로 가져가려 했던 진시황도 결국 죽음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방부제에 의해 부패되지 않은 채 보존되고 있는 마오쩌둥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박상희는 이런 인물을 통해 삶의 유한성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해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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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희/시간의초상-풍경 |
오브제로서의 시간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의 분리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시간은 우주의 빅뱅으로부터 발생하였지만 특정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의 간극이 존재한다. 예컨대 태양이 소멸했을 때 지구에 있는 인간이 그 사실을 자각하는 데는 8분 정도의 시간이 경과해야 한다. 과학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이 간극에 주목하여 시간과 공간을 분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볼 수도 있다. 만약 시간과 공간을 분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마치 둑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시간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희가 추구하고 있는 오브제로서의 시간은 이런 점에서 시간을 장소로부터 떼어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즉 비가시적인 시간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시간을 하나의 오브제로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재하는 오브제를 통해 시간을 압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시간은 비가역적(可逆的)인 것이 아니라 이탈과 비약을 통해 원래상태로부터 분리된다. 이 분리과정에서 예술가 특유의 몽상이 개입한다. 몽상의 결과는 특정한 대상을 지시, 암시, 은유하는 형상을 빌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초현실적 방법을 통해 현실을 가공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몽상의 시(M)>에서 볼 수 있는 조형적 수사(修辭)가 그렇다. 는 예수를 신의 아들이기에 앞서 성적 욕망을 느끼는 한 인간인 남성으로서 표현된 이 작품의 원전 또한 미술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 두드러진 데페이즈망(dépaysment)이란 방법을 주목하여 많은 사람들은 달리(Salvador Dali)를 떠올릴 것이다. 달리(Salvador Dali)의 <기억의 고집>은 그의 ‘편집적 비판’이란 방법에 의해 제작된 작품인데 마치 녹아내린 카망베르 치즈처럼 열에 녹아 늘어진 시계를 통해 시간의 건조함을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것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몽상의 시(時)> 역시 정장을 잘 차려입은 사람의 머리 위로 나뭇가지가 자라고 있고 그 위에 달리의 작품에 특징적인 젤라틴상태 직전의 시계가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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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희/좌탈입망 |
시간에 대한 몽상은 <좌탈입망>---이것도 한문으로 ---에서 멈춰버린 시계로 이루어진 머리를 지닌 참선 중인 인물로까지 발전한다. 시계머리 역시 박상희가 이미 발표한 바 있기 때문에 낯선 것은 아니다. 이 멈춰버린 시계는 시간의 정지, 곧 연속성으로부터 분리된 시간을 상징한다. <좌탈입망>은 자기존재까지 놓아버린 상태에서 시간조차 초월한 절대적인 깨달음을 상징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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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희 /광화문의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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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희 /아내의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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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희 /오 |
문제는 이 수행자의 머리가 온통 시계로 구성되었다는데 있다. 시계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이도록 만들고 측정하도록 고안한 장치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시계를 소유한다는 것은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시간의 무한성에서 존재는 어차피 유한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시계로 만들어진 구체(具體)는 시간을 정복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는 인간의 허망한 욕망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브제로서의 시간을 상징하는 형태는 시계들을 집적한 것으로부터 <광화문의 아침>이나 <아내의 봄>, <오(悟)>에서 볼 수 있듯 거울처럼 투명한 구체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구체야말로 이 인물들의 현존을 비추는 거울이자 또한 그들의 의식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투영하는 마술의 공이자 시간의 추상적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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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희 /불상 |
박상희의 입체작품이 단일한 형태를 통해 의미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것이라면 디지털 편집과정을 거친 사진작업의 경우 서술성이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모스크바의 광장풍경을 촬영한 사진 위에 마치 우주비행물체처럼 상공을 날고 있거나 바닥에 착륙한 듯한 시계를 합성한 이 작품은 시간이 누적된 역사를 돌이키게 만든다. 반면에 고목이 있는 수면에 마치 시계가 부유하는 떠있는 합성사진은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시계야말로 그가 말하고 있는 시간을 담는 그릇일 수도 있다. 한때 시테크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인간들은 경제적인 목적달성과 효율성의 제고를 위해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야 한다는 강박에 종속되기도 했다. 그만큼 시간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이었으며 과학기술의 발달은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역시 사유의 문제이다. 그래서 그는 과학기술이 아니라 명상과 같은 초월적인 방법을 통해 시간에 대해 사유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포획하려는 시간은 물리적인 차원으로서의 시간의 정복이 아니라 주관적인 시각에서 시간을 체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위해 신체는 중요하다. 그가 다른 무엇보다 굳이 인간의 몸의 형태를 통해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최태만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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