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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이족' 소수민족을 찾아서오지마을 순례 길에서 인간주의 문화 속살과 마주하다
류기석  |  yoogise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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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3월 04일 (목) 11:54:53
최종편집 : 2010년 03월 04일 (목) 15:52:26 [조회수 : 3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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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이족' 소수민족을 찾아서...한마디로 꼬불꼬불 덜컹덜컹 산길 따라 펼쳐진 그림같은 계단식 논의 절경에 감탄하면서 싸잉판이라는 분지형 시내에 도착, 얼마 못가서 더 이상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 그곳부터 8키로미터를 걸어서 싼허 이족마을을 찾아 들어갔다.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가 들어간 싼허마을에서는 이족전통방식의 결혼식이 열리고, 신부 집에서 차려낸 맛난 성찬을 즐겼다. 그곳에서 마을의 원형을 보고, 순박한 사람들과 사람냄새 풀풀나는 인간적 속살과 마주하고 돌아왔다.


오지로 떠나는 여행자의 마음

"여행지의 오랜 역사와 문화, 사람까지도 담을 수 있어야 서로 소통하는 문화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다. 조금은 불편하게 실제 여행에서 만나고 손짓 발짓을 넘어 필담까지 나누어가며 가까워진 사람과는 훨씬 친밀해지고 다음에 다시 개별적으로 여행을 온다 해도 서로 얼굴을 기억하여 친구처럼 반가워 할 것이다."

   
▲ 이족마을로 향하는 아름다운 순례길, 어린아이와 엄마가 정겹게 걷다


이번 소수민족 순례 길은 때마침 지인과 가깝게 지내는 쿤밍의 가족들이 이족마을 신부의 결혼식에 초대되어 더불어 참여하게 되었다.

새벽 5시부터 준비하여 칠흑 같은 밤인 6시에 쿤밍을 출발, 북쪽으로 8시간정도 걸리는 이족마을을 향해 달렸다. 중간쯤부터는 비포장 길이라 우려를 많이 한 것 치고는 도로포장과 개발이 많이 진행되어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중간 중간 구름에 떠 있는 소수민족의 마을과 호수, 사람들의 일상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따스한 봄날의 기운이 온 대지와 산천초목 위를 덮을 때 쯤 자동차는 산으로 산으로 끝없이 오르더니 노오란 유채 밭을 만들고, 무 밭, 배추 밭을 만들어 나갔다. 해발고도가 2500m이상 계속되는 높이에도 예술작품 같은 다락논들이 줄지어 만들어져 있었다.

평소 소수민족들이 살아가는 생활문화뿐 아니라 마을의 환경과 그곳 생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나를 훌훌 벗어버리고 이날만은 새로운 에너지로 흠뻑 충전하도록 마음 밭을 활짝 열었다.

중국 소수민족, 문화위기에 빠지다

지금 중국은 13억 이상의 인구와 광활한 영토, 유구한 역사 문화적 바탕위에 급속한 성장과 현대화, 그리고 수준 높은 문명화를 이루기 위한 정열에 온 힘을 쏟고 있는 반면 이에 못지않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건국 이후 60년 동안, 특히 개혁·개방 이후 30년 동안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소비와 에너지 수급부족 또한 경제를 경착륙시키는 문제와 빈부격차, 실업난 등 사회불안 요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 윈난 '이족' 소수민족마을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만난 소녀와 소년

소수민족(少數民族)의 인구비율은 낮지만 영토 비율은 근 60%에 이르며, 인구 90% 이상이 신장과 티베트, 내몽고, 윈난(雲南) 성 지역에 몰려 있어 중국의 경제적 역동성은 오히려 소수민족의 인종적 언어적 분화를 자극하고, 특히 남부와 항구 등 경제발전이 앞선 지역의 어린이들은 헬리콥터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는 반면 중부와 북서부 어린이들은 비탈 밭을 일구느라 학교 갈 꿈도 못 꾸는 빈부격차의 공존이 중국사회의 현실이다.

중국은 전인구의 94%가 한족이며 나머지 6% 정도가 소수민족이라고 한다. 한족에 비하면 인구가 소수인 까닭에 총칭하여 소수민족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들은 대륙 곳곳에 분포하여 있을 뿐 아니라 특히 변강지역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시되고 있다.

중국은 중공정권 수립 후 1961년 한족 이외의 소수민족을 55개 민족으로 확정(지금까지 미확인 상태에 있는 인구 1000명 미만의 소수민족은 포함하지 않음)하고 있지만 이족이나 묘족 중에서도 언어, 의복, 풍습 등에서 특이한 민족이 많은 관계로 중국내의 소수민족은 400여개 이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들이 많다.

이제, 중국의 소수민족문제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은 이데올로기적인 도전이 아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도전으로 시장경제의 도입과 중국의 국제화라고 하는 경제의 개방화가 몰고 온 중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에 기반 한 소수민족 사회의 변화이다.

세계의 변화와 중국의 변화 그리고 그 속에서 중국의 소수민족 사회의 변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소수민족이 이런 변화의 와중에서 근본적인 해체를 경험하면서 중국 사회에 좀 더 통합될지 아니면, 중국정부의 정책이 좀 더 다원적인 성격을 가질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또한, 이런 변화에 대응하면서 진행되는 소수민족 자체의 민족주의에 따라서도 그 방향이 많이 바뀔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의 소수민족문제는 이런 근본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한족 지역과 소수민족 지역의 발전차이를 줄이고, 빈곤문제를 해결하며, 민족 자치 정부의 재정 상태를 개선하고, 민족지구가 위치한 변경 지구의 발전을 위해 서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한족중심의 개발이 문제가 될 듯싶다.

그동안 소수민족들은 오랜 역사의 질곡을 지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지키며 중국 내에서 한 위치를 차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찾아온 현대문명은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까지도 심각하게 해치고 있어 위기다.

벌써부터 도시 집중화와 함께 농촌의 공동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은 우리네 사정과 별반 다름이 없다. 운남성 쿤밍에서 조금만 벗어난 농촌인구도 서서히 감소하는 것은 물론, 도시화 문명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들 나름의 고유한 정체성에서 멀어져가는 것은 흔한 일상이 되어 매우 안타깝다. 그들이 떠나간 빈자리는 이제 중국 최고의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니 우려스럽다.

중국 운남성은 10년 전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 서남부권 개발과 관광정책 덕분에 최고의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운남성의 성도 쿤밍을 벗어나면 소수민족들의 전통가옥과 상점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현재는 본래의 모습을 잃고 어정쩡한 콘크리트 건축물들로 눈과 마음을 거스른다.

   
▲ 이족마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돼지와 거위들은 사람과 한 가족이다


이제 이곳에서 소수민족인 이족을 손쉽게 구별하는 의(衣)식(食)주(住)조차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간신히 개발의 불도저를 모면한 원주민 마을마저도 집집마다 설치한 위성안테나 덕분에 편리한 현대문명에 동화된 젊은이들이 끝없는 자본의 동경심을 가지고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나가고 있다. 이는 엄청난 자본을 등에 진 외지인들과 함께 밀려든 상업주의 때문이라는데 당연히 그들만의 문화적 정체성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고유한 문명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왔던 소수민족은 지금 현대문명의 혜택을 최고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서구 자본주의 문명은 소수민족들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전통 가옥들과 상점들을 하나하나 상업관광지의 카페나 술집으로 변모시켰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젊은이들이 그들의 전통과 지혜로운 문화와는 점점 멀어지고, 오히려 상업적인 자본의 문화에 호감을 갖는데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나마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족마을을 방문해 보는 것은 마치 살아있는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이족마을로 향하는 산골이 정겹게 아른 거린다.

이족마을로 향하는 아름다운 순례길

쿤밍을 출발한지 7시간째가 지난 오후1시쯤 본격적인 이족마을로 들어서니 저마다 전통복장을 단정하고 어디론가 삼삼오오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비포장이라 엉덩이는 고생을 했겠지만 눈은 연신 즐겁다. 도로가에서는 줄지어 소와 돼지를 잡고, 닭을 잡는 풍경이 적나라하게 벌어지고, 산골을 굽이굽이 오르면서 바라다보는 다랑이 논을 품은 산비탈 풍경이 어찌나 앙증스럽던지... 절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 윈난 '이족' 소수민족마을을 찾아가는 지름 길, 산을 두어번 넘어서야 했다


이족들은 해마다 신년초가 되면 소나 돼지를 잡는다. 한 사람도 빠지게 되면 그 자식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돼지를 잡는다는데, 그 이유는 온 가족이 빠짐없이 모여야지만 1년 동안 건강하고 행복을 지낼 수 있다는 고유한 신앙 때문이다. 그 기간은 1월년초부터 2월 설날까지인 듯싶다.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돼지를 잡아 음식을 장만하는 정겨움은 생각만 해도 부럽다.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고원에 들어서니 왁자지껄한 싸잉판시내다. 우리네 60년대 시장모습 그대로다. 쿤밍에서 이곳까지는 완행버스가 다닌단다. 당나귀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 우마차 주차장인데 가끔씩 우마차도 잃어버리는 수가 있다. 천천히 시장을 가로질러 싼허마을로 향하는 삼거리를 찾았다.

때마침 시멘트포장 중이어서 이곳으로부터 8Km 싼허마을까지는 모든 것을 챙겨 걸어가야 한단다. 설마 했는데 현실이 되었다. 처음엔 어떻게 해서든 차를 몰고 가는 방법으로 중얼거렸지만 헛수고다. 포기하니 마음이 편하다. 너른 들판 길을 따라 지인들과 아이의 엄마, 아빠가 줄지어 걷는 모습이 무척이나 목가적이다.

개천의 물, 새, 당나귀, 돼지, 거위, 개 짓는 소리까지 차안을 벗어나니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흙 내음으로 더욱 봄을 재촉하는 논과 밭에는 미푸르른 풀잎들이 진동을 한다. 그 속에서는 초록의 잎 새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는 오고가는 이들을 마중한다.

   
▲ 오지속에 묻혀 있는 싼허 이족마을의 자연스러운 풍경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이라고 불리는 길은 스페인 북부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걸었던 순례자의 길이다. 매년 세계 곳곳에서 600만 명이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걷는 이 시골길이 한국인에게 새로운 문화코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곳 싼허마을로 가는 길 또한 숨 가쁘게 살아가는 나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마을의 흙집, 옥수수를 주렁주렁 걸어 놓은 처마, 시골길을 걷게 되면 언제나 성찰의 기회가 온다.

같은 길을 가는데도 이족들은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는 말없이 터벅터벅 가던 길을 걷는다. 차가 못 다닌다고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이 길을 걷는 그들을 보고는 자본의 문명으로 깊이 물든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저들에게는 이 길에서 지켜야 할 시간도, 하루에 얼마를 걸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이 자기 생체시계와 체력에 맞춰 그저 걷는 길로 느껴졌다.

시멘트도로를 2Km쯤 걸었을 때 친절하게도 현지주민이 길안내를 자세하게 해준다. 여러 번 묻고 난 연후에야 외진 산길을 넘고, 마을을 지나 습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다음번에 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걷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단지 그 길 위에 발을 올려놓으면 된다는 식의 “올레 길”을 만들어야 겠다고 구상했다.

곤히 잠든 아주 간난아이와 4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아빠와 엄마를 따라 씩씩하게 걷는다. 한참을 가다가 지치면 모두가 낯선 쉼터에서 몸을 푼다.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지닌 채 어찌할 수 없어 이 길을 찾아 걸었던 우리들은 현지인들이 마중을 나온 후에야 이 길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숲속의 나무에서 전해주는 달콤한 공기와 인공을 걸치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의 풍경이 2시간 30분 싼허마을로 향하는 순례길 내내 느껴졌던 최고의 땅 밟기였다. 수많은 세월동안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 이 숲길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이윽고 흙집으로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 시야에 들어오고, 마을 뒷산 아래 풀어놓은 돼지와 오리, 거위들, 소들을 거쳐서야 드디어 싼허마을 이족결혼식 신부 집에 도착했다. 떠들썩한 분위기보다는 진지하게 음식을 만들고, 무언가를 굽기 위해 연기를 피우는 손길이 훈훈해 보였다.

이윽고 집안으로 초대하여 인자한 미소로 맞아준 신부의 아버지, 집안에는 중앙에 불을 피우는 곳이 있고, 그 중심으로 손님들이 들러앉아 따스한 차를 대접 받는다. 한참 주위를 둘러보는데 인기 걸 그룹들의 사진들이 벽면에 가득 메워져 있는 예사롭지 않은 현장을 보았다. 군데군데 한해가 지난 교회달력도 있고, 중앙에 각기 마음과 정성을 들여 모시는 신앙의 대상도 자리한 듯, 그 모습은 흡사 몽골초원위의 게르를 닮았다.

지속가능한 삶으로 살아가는 법

잠시 싼허마을을 산책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각종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을 만났다. 착하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은 이들을 만나는 순간 이들의 눈가에서 전해졌다. 이웃집 어르신께서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내게 차와 과자를 주시고는 기념사진도 서슴없이 오케이다. 이곳도 주렁주렁 돼지고기들이 부위별로 달려있는 모습으로 보아 올해 건강하고 행복한 한해를 보내시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 싼허 이족마을 신부 집 표정, 신부 어머니(좌)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친지들


흙으로 다져 만든 담집에 기와를 얹은 방식의 집들이 남쪽 너른 들판을 향해 자리를 틀고 있었다. 우리들의 감성을 막는 상업시설이나 간판, 조립식 건축물들이 없으니 마음이 평화롭다. 집들은 오래되어 쇄락했지만 마을의 온기는 좋았다. 빨래터 아주머니들의 입담도 듣고, 멀리 밭에서 씨를 뿌리는 움직임마저 평화로워 보인다.

이곳 씬허마을까지 10시간이 넘어 도착했지만 함께한 가족들은 아침 겸 점심을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리는 통에 늦은 오후 5시가 다되어 먹었다. 이곳에서는 귀한 음식임에도 불구하게 불행하게도 입맛에 닿지 않았다. 한쪽에선 신부의 가족들과 신부가 연신 밥을 퍼 그릇에 담아 주는 넉넉함에 흐뭇했고, 마을공동체 모두가 모여 결혼식에 참여하고 밥도 같이 나눈다는 의미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곳에서는 곱게 단장을 하고 신랑을 맞아야 될 신부가 손도 다 부르트고 얼굴도 기초화장은 물론 로션하나 바르지 않아 의외였다. 꾸미는 것을 싫어해서 일까...결혼이바지준비로 많은 날 동안 뜨개질을 해서일까...이러한 신부에게 함께 간 지인들이 선크림이며, 로션을 발라주었다.

   
▲ 이족마을 신부집,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 신부가 아름답다

이번 결혼은 부모들이 신부의 나이(28살)가 많아 이웃동네 총각이랑 억지로 인연을 맺는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신부가 무척 안쓰러워보였다. 점점 이웃집 사람들은 모여들고 잔치 집 분위기는 훨씬 고조되어 갔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집으로 향하는 길이 막혀 고민했다. 차도 없고, 마차도 없는 이날, 신부댁에서는 손님은 무조건 자고가야 한다고 막무가내다. 그러나 항상 스케줄에 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루를 더 묵는 것은 용납지 않는다.

이곳에서 치러지는 결혼식도 하루가 아닌 삼일 동안이나 치른다. 신랑은 마지막 날 신부 집에 찾아오는 모양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은 결혼식 이틀째 날로 주변의 친지나 동료들을 초청하는 잔치 날이다.

반면 현대문명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결혼식은 1시간이다. 느림과 멈춤의 미덕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들의 결혼식이 3일인 이유는 잠시 쉬며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쯤에서 오늘날 현대인의 위기는 다양한 문화가 있지만 우리에게 처한 문화는 인공, 꾸밈, 형식, 가상으로 매스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한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잠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풍요로운 소비와 관능적 쾌락에 젖어들어 인간의 참다운 자기 자각의 정신생활을 도외시한 것이다.

자고나면 눈부시게 변모하는 문명의 발달과 정보혁명은 인간생활의 편리함에서 놀라운 발전을 거두었지만 잃은 것 또한 만만치 않다. 대부분 보이지 않는 정신생활에 기반을 둔 도덕의식, 성숙된 개인의 자아, 다양성에 대한 열려진 의미 등 생태적 공동체적 정신적 영적 영역에서는 오히려 빈곤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하룻밤을 묵을 수가 없어 모두들 오후 6시쯤 자리를 털고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신부의 가족들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긴긴 마중을 나왔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는 숲을 헤치고, 왔던 길을 걷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삼거리까지 별을 보고 와서는 별을 보고 되돌아갔다. 우리들은 태초에 걸으면서 자연과 친구가 된 것같이 사람들도 걸으면서 더욱 친해졌다.

   
▲ 싼허 이족마을 결혼식, 친지와 이웃들을 위한 잔치상이 벌어졌다


요즘 인간의 손을 거치면서 더욱 파괴되어가는 흙, 나무, 식물, 바위, 마을, 공동체가 그립다. 첨단과 특허, 실용과 편리 등을 앞세워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삶의 지혜와 기술이 하루아침에 사장되는 발전과 개발, 경쟁, 속도의 문명에서 제발 벗어나기를 창조주께 기도 드려본다.

세계는 지금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위기를 맞고 있다. 이곳 중국 남부 윈난성도 50년만에 최악의 가뭄피해를 입고 있다. 빗줄기도 보이지 않고 건조한 날들이 이어지자 그곳의 한 주민은 “62년의 세월을 살아온 날들 중에 올해가 가장 가문 해인 것 같다”면서 하소연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문명의 종말은 서서히 우리 앞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 ‘되돌아 봄’과 ‘멈춤’은 그칠 줄을 모르고 있다. 하루속히 이 문명이 성장을 멈추고, 대안을 찾아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이란 자연으로의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도시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잠시 자연의 시계에 맞춰 지내는 순례(여행)의 시간, 나에게 새로운 창조의 기회가 되고 자연에게는 자정의 능력을 배가시켜준다.

아직도 문명의 혜택을 보지 못해 개발이 덜된 이곳도 신비로움과 설렘에서 벗어날 것 같다. 그 이유는 곧 이곳을 지나는 고속도로가 생기고 있어서다. 이족마을을 찾아 과거로부터의 문화를 체험하고 돌아서면서 미래에 대한 보람찬 희망보다는 어두운 두려움이 몰려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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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의 오지 싼허의 이족마을, 신부(좌)와 지인(중), 신부친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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