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금에도

구원개념 신앙은 지금도 그 잔재를 완전히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몇 가지를 생각해보겠다.

(a) 이 세상의 임금은 마귀

구원개념 신앙에서는 이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야 구원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다. 그래야 원수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다. 자신을 괴롭히는 자는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고통을 설명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사상도 세상의 임금은 마귀라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마귀가 세상의 임금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분법적인 구조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에게 일어나는 고통을 이해할 길이 없다. 세상의 임금이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자신에게 입혀지는 고통을 고통이며 해(害)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기에게 고통을 입히는 자를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원개념 신앙은 마귀의 입지를 정당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b) 고통을 일으키는 자는 마귀자식

자신을 괴롭히는 자가 하나님의 같은 자녀이며 그들에게도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그에게 당하는 자기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고통을 풀어달라고 말할 수 없으며 그 고통으로부터 구원해달라고 부르짖을 수 없다.

고통을 일으키는 자를 마귀자식으로 말 해야지만 자신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크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지만 자신의 고통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 자신이 당하는 고통은 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괜히 당하는 것이니 자신을 그 원수에게서 구원해달라고 소리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그가 진정으로 형제라면 자신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형제를 고소하는 반 인륜을 모면하는 것이다. 그가 형제인데 자신의 원수라고 소리친다면 그를 하나님 앞에 형제를 고소하는 자가 된다. 은연중에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잘못함이 없으니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풀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황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c) 행복추구, 물질추구, 번영추구

구원개념 신앙에서는 이것들이 당연하다. 하나님은 자신만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과 축복과 번영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구원의 하나님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욕심과 평안과 안락을 위하여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정당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중에서 자신에게 어떤 고통이 있다고 믿으면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그 고통을 풀어달라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지 않겠다고 생떼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고통이라고 느끼는 것들이 하나님의 세심한 사랑의 배려라고 하게 되면 구원해 달라고 부르짓지 못하게 되며 기도하지 못하게 된다.

(d) 행위의 죄에 대한 대속

구원의 개념이 바울에게서 정치적인 면보다는 개인적인 죄의 문제로 귀착된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가장 강하게 이어진 유전이 바로 ｢구원｣과 ｢대속｣개념이다. 구원개념에 대해서는 앞에서 생각해 보았으므로 대속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이 대속개념이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긍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나 하나님을 크게 오해하도록 하게 한 것도 있다. 이 대속의 대상은 행위의 죄들이다. 구체적인 죄를 대상으로 대속의 개념을 적용시키게 된다.

죄의 개념에 문제가 있다. 유대 전통에서의 죄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는 다르다.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옳다. 유대인들은 구원을 말할 때 행위의 죄를 생각하였다(눅1:77). 대속의 교리를 집대성한 바울도 행위의 죄를 대속의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곧 죄란 “나를 믿지 아니함이다”(요16:9)라고 하셨다.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면 당연히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인간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율법을 통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써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율법의 저주를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인간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되는 의를 덧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속에 의한 의 역시 율법적인 방식을 통한 의이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는 것이 죄라고 하신 것은 곧 하나님과 우리 사람은 공로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 신분관계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신분관계로 맺어진 친자(親子)관계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친부(親父)의 사랑을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영원히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자관계는 신분적으로 확인하여야 하는 것이지 공로를 통하여 되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신분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율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획득해 보려 한다. 대속 역시 율법적 개념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의 문제를 대속으로 처리하였기 때문에 율법적으로 하나님 앞에 흠이 없고 죄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영원한 저주를 긍휼히 여기사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의 죄를 완전무결하게 대속하셨으므로 율법적으로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자녀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속의 사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신분관계가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이 강조되어 진다. 비록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덧입은 의로움이지만 공적(功績)의 사상이 근거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대속사상은 하나님과 인간을 근원(根源)상 남남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4복음서를 보면 예수는 하나님은 만인의 아버지이며, 모든 인간은 한 아버지의 자녀로 형제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네 자신과 이웃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지 아니라 함은 아버지와 형제를 오해하고 있음이 곧 죄라고 하시는 것이다.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지 못함이 죄라 하시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지 못함이 죄라 하시는 것이다. 자신이 대속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대속을 통해서만 받아주시는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근원상 하나님과 인간은 남남이었으나 인간을 사랑하심으로 인간을 대속하셨다는 것은 얼핏 들으면 복된 소식 같은데 근원적 문제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심각히 음해된 교리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구원개념은 대속의 교리를 채용하게 됨으로써 엄하신 하나님, 인간을 버리신 하나님, 무능의 하나님, 인간면에서는 저주받은 인간, 버림받은 인간이라는 개념을 생성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을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히 갈라놓게 한다. 율법을 어기는 것과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의 신분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 가장 큰 타락

가장 큰 타락이 무엇일까? 구체적인 범죄행위인가? 대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타난 타락이다. 그 나타난 타락 저면에는 엄청난 타락이 깔려 있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고 하는 것보다 더 큰 타락이 어디 있겠는가? 만인의 아버지를 자신만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큰 타락이 어디에 있겠는가? 형제를 원수로 만드는 것보다 더 큰 타락이 어디에 있겠는가? 엄하신 공포의 하나님, 인간을 버리신 하나님으로 만든 것보다 더 큰 타락이 어디에 있겠는가? 때문에 구원개념의 신앙은 가장 큰 타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