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오후 6시 청파교회에서는 제15회 한국기독교연구소 월례예수포럼이 열렸다. 이날은 함께여는교회 방인성 목사가 강사로 초청되어 ‘내 인생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되었다. 갑자기 쌀쌀해진 탓인지 별로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못하였지만 강연회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방인성 목사는 집안의 기독교적 내력을 소개하면서 강연을 시작하였다. 방인성 목사는 3대째 목회자를 이어온 가문 출신으로 조부는 산정현교회 담임목사이자 순교자로 유명한 주기철 목사와 나란히 이름이 거명되는 순교자이시다. 신사참배 거부로 6년 반 동안 옥고를 치르고 산정현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다. 1949년 예배당에 인공기를 게양하라는 공산당의 요구를 거부하여 납치되셨는데 후에 집단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런 방인성 목사는 남들이 자기에게 순교자의 피가 흐른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포럼에 모인 청중들에게도 순교자 예수의 피가 흐르지 않느냐고 물었다.
다음은 방인성 목사의 강연내용 요약이다.

‘조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집안 살림이 어려워 부친이 생계를 위해 일하시다가 뒤늦게 목사가 되셨다. 어려운 살림살이로 청소년기부터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청소년기에 보수적인 교회에서 만난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신대를 나오신 여선생님이셨는데 결혼도 하지 않으시고 많은 고아들을 입양하시고 데모로 도망 다니던 학생들을 거두어 뒷바라지를 해주시고 기금을 모금하여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대주시던 분이셨다. 이 선생님을 통해 분단조국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고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린 시절은 보수적이고 엄숙한 분위기의 교회에서 성장하였다. 소위 거룩한 분위기가 압도한 교회였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많았다. 사실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하다가 큰 돌에 발을 찧었다. 한 달 동안 아픈 것을 숨기다가 부모님께 다친 사실을 알리고 병원에 갔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6개월을 병원에 입원하고 세 번이나 큰 수술을 했지만 차도가 없었고 발을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이 울면서 슬퍼하는 것을 보고 왜 슬퍼하느냐, 예수님은 앉은뱅이도 걷게 하시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때부터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퇴원하고 기도처에 들어가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3개월을 기도한 후에 기적처럼 아픈 발이 나았다.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라. 신유의 은사가 전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꼭 기도의 능력이었다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어쨌건 그렇게 병이 나았다. 병이 치유된 후 교인들 앞에서 간증을 하게 되었다. 3-400명이 모인 교회에서 처음 목사가 되겠다고 선언하였다.

성장기를 거치면서 분단조국의 상처를 치유하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83년에 영국으로 유학 갈 기회를 얻었다. 영국에서 만난 한인교회 목사님께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프란시스 쉐퍼의 영향을 받은 목사님은 나에게 뭣하러 목사가 되려고 하느냐, 목사야말로 가장 유혹 받기 쉬운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동안 만났던 ‘거룩한’ 목사들과는 달랐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소탈하고 진솔하며 진심으로 섬길 줄 아는 분이셨다. 그 목사님의 모습을 통해 성공과 야망으로 나선 유학길은 수정되었다.

당시 가장 탄탄한 신학적 교육바탕을 제공하던 킹스칼리지와 옥스퍼드에서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영국국제장로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옥스퍼드 한인교회에서 목회도 하게 되었다.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는 목회를 하고자 하는 나에게 첫 목회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고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옥스퍼드한인교회에는 내로라하는 학벌과 배경을 가진 이들이 유학을 와서 출석하였고 한편으로는 주변의 미공군기지에 잇는 미군 병사들과 결혼한 한인여성들도 출석하였다.

도무지 소통하기 어려운 계층적 구조였다. 그런데 여기서 계층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학벌이나 지식을 자랑하던 이들이 인간미를 배웠고 반면 부족한 환경에 있는 이은도 조건과 환경이 뛰어난 사람들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 죄 많아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음 안에서 하나됨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던 것이다.

보수적인 신앙은 개인적인 신앙으로 진화한다. 개인구원에만 관심하다보니 사회적 구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된다. 나는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는, 우리 삶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의 구조는 하나님 나라를 닮아있는가 고민하였다.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닮게 하는 것이 교회개혁인데 나는 교회개혁을 넘어 사회개혁으로까지 이어지 목회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한국의 성터교회(재건파에 속한 교회로 성터교회라는 이름은 방 목사 부임 이후 변경한 이름이다)에서 나를 담임자로 초빙하기로 하였다. 재건교회는 신사참배 등의 과오가 있는 예배당은 다 헐고 새로 지어야 한다(재건)고 믿는 극단적 보수의 길을 걷는 교회이다. 오염된 한국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순교자 집안이고 영국에서 안수를 받은 내가 초빙된 것이다.

여기서 목사가 제왕이 되는 구조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인본주의(통상적 휴머니즘과 다른)는 독재로 귀착된다. 신본위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신본위를 이해하고 사례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가장 가까운 형태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교회는 가장 민주주의적이어야 하고 지도자는 반드시 복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교회는 모든 일처리가 투명해야 한다. 정직하게 자기를 열고 소통하는 것이 교회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장로를 교회 당회장에 세웠다.

오늘날 사회에서 독재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공직자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다. 그들이 그처럼 독재적인 것은 그들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행태를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된 크리스챤 지도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교회구조를 바꾼 후에는 지역사회를 섬기게 하였다.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조사하게 하고 그들을 섬기게 하였다.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이 돌았다. 교회개혁은 반드시 사회개혁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바로 사회적 하나님 나라이다.

10년을 넘게 섬겼던 성터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사회참여 때문이다. 교회개혁은 지지하지만 사회개혁운동을 하면 빨갱이로 몰린다. 그러나 공산당에게 조부를 잃은 내가 빨갱이라니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아무튼 성터교회에서 나와 함께여는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지금 함께여는교회에서의 2년 목회는 행복하다.

한국교회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독교라는 종교적 형태는 신을 이용하고 인간의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거기에 발맞추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바울이 경계한 다른 복음이다. 인간의 환심을 사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교회가 된 것은 타락이다. 성공과 물질주의, 건물, 숫자, 힘자랑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다른 복음을 숭배하는 교회가 지배하고 있다. 인간이 왕노릇하고 충족해주는 것이 바로 다른 복음이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고 떠들어대지만 사울과 바울은 같은 이름의 아람어와 그리이스어 차이일 뿐이다. 사울이었을 때에도 그는 성실하고 충직하며 신에게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개종한 후 바울로 불리게 되었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변화된 것은 생각과 가치관이다. 자기만족이 하나님 만족으로 바뀐 것이다. 한국교회는 다른 복음을 버리고 복음을 회복해야 한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이 사회에서 교회가 순교의 영성을 회복하면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소위 에큐메니컬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진다. 에큐메니컬 진영은 NCC에 가입한 중도 혹은 개혁적 교단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말하고 복음주의 진영은 NCC에 가입하지 않은 보수적 교단에서 활동하는 진보적 활동단체를 포괄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물론 진보운동의 역사는 에큐메니컬 진영에 비해 복음주의진영이 짧다. 그러나 요즘 추세를 보면 오히려 더욱 활발하고 역동적으로 개혁운동에 앞장서는 게 복음주의진영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음적 순수성을 기반으로 추진하는 개혁운동이라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열정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심에 방인성 목사가 서있다.

촛불교회와 각종시국문제를 통해 나와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많았던 방인성 목사는 소위 외국물 먹은 사람답지 않게 겸손함이 있고 소탈하며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면이 있다. 부당하게 몰아붙이는 경찰들과의 대립에서 가끔은 과격하기도 하다. 참 특이한 분이라고 많이 생각했었는데 알면 알수록 정감이 가고 가깝게 만나고픈 분이시다. 같은 방씨이지만 나와 친척인지는 잘 모르겠다. 방인성 목사는 성터교회 50년 희년을 맞아 교인에게 신장을 기증한 일도 있다. 좀처럼 찾아보기 쉽지 않은 목회자이다.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언제나 방인성 목사가 있어 미래는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