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소리

장 석 남

깜빡

낮잠 깨어나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복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이

사랑도 꼭 그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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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님;                            

  아, 예전 같으면 지금쯤 산 숲길을 걸으면 뻐꾸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 어느덧 4년째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감리회본부 건물에서 하루해가 저무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제는 산 숲길에서 뻐꾸기 소리를 듣는 일은 이렇게 시인이 쓴 시의 행간을 거닐면서나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시인의 여름은 얼마나 한가하고 무료했을까요? 내게도 그런 시절이 멀지 않게 있었는데…… 한가하고 무료함! 너무나 멀고 멀어 무더운 여름날 시인이 뻐꾸기 소리를 듣는 폼이 참 아득한 옛길처럼 아련하고 포근합니다.

깜빡

낮잠 깨어나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복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이

   하루 온종일 긴장하며 살고 있는 매일 매일이 끝도 없어 보이는데…… 깜빡 깨어나는 낮밤을 자본지가 언제였던가요? 젊은 날들, 젊은 목사라 불리던 날들까지 시골집 창호지가 있는 방에서, 마루에서 때로 달디단 낮잠에서 깜빡 깨어나던 그런 시절이 그립도록 아련하고 아득합니다. 그래서 더욱 “아무 생각 없이 /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은 느낌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고 낯설지 않게 가깝습니다.

사랑도 꼭 그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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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나에게 사랑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입니다. 손 마주 잡고 한 몸처럼 살거나, 먹이고 입히고 기르고 가꾸기 위해 늘 내 곁에 두어야 하는 사랑이 아니라 산 넘어 다시 그리워하고 물 건너 창밖으로 바라보는 사랑입니다. 언제나 잠시 있다가 지나가기 전에 허리춤에 묶인 쌈지를 얼른 풀어 다정히 베풀고 나누어 주어야 할 제 3자의 사랑입니다.

사랑도 꼭 그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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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자의 사랑! 오래 묵은 경험과 지혜로 어느덧 그 자리에 붙박이가 된 듯 굳이 찾아와 물으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지혜의 창고를 열어 알려주는 창고지기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듣고 다시 노래하는 뻐꾸기 소리가 내가 숲길을 걸으며 듣는 뻐꾸기 소리보다 내 가슴에 더욱 가득 아련하고 청아합니다. 언제나 느끼는 즐거운 기분이지만…… 시인이란 참! 신비로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깜빡

낮잠 깨어나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복숭아 꽃빛같이

아무 생각 없이

창호지에 우러나는 저 꽃빛만 같이

사랑도 꼭 그만큼쯤에서

그 빛깔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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